대학내일

[축제대신 3일] 3. 축제 대신 걸어서 판문점

평화 통일을 위한 3일 간의 애국 여정
인류 통찰도, 타로 마스터도 흥미 밖이라고? 잘 찾아오셨다. 3일 동안 질리도록 평화 통일만 생각할 수 있는, 청와대에서 판문점까지의 도보 여정을 소개한다. 살면서 한번쯤은 꼭 가봐야 할 그곳, 대동강 맥주는 꼭 챙겨갈 것!

  0km - 18Km
국정원에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에겐 남몰래 즐기는 취미 생활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으로 #northkorea나 #pyongyang을 검색해 보는 것이다. 평양역 150m짜리 에스컬레이터라든지 해수욕장에서 수영복 입고 노는 사진은 친근하고 생경했다. 나는 북한 작가가 쓴 소설 『황진이』를 좋아하고, 최애 맥주는 ‘대동강 페일에일’이다.(물론 이건 우리나라 맥주지만.) 대동강을 바라보며 대동강 맥주를 마신다고 상상해보자. 정말 근사한 일이다.   그런데 내가 “북한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국정원에 끌려가고 싶어?”라며 불안한 눈빛 으로 주위를 살핀다. 마치 내가 “제 취미는 잠자는 고양이 꼬리에 불 붙이기예요” 라는 끔찍한 말이라도 한 것마냥 뜨악해 하면서 말이다.  
    
이런 현실이 개탄스러웠던 나는 ‘통일을 기원하며 판문점까지 도보 여행’을 결심했다. 출발지는 청와대, 도착지는 판문점이다. 북한산과 북악산 정기가 모이는 청와대는 반동강난 우리 역사에서 굵직한 결정들이 이뤄진 곳이다. 출발지로는 제격이다.  

판문점에는 남북이 마지막으로 포로를 주고받았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언젠가 통일이 오면 금강산부터 내가 모르는 아름다운 곳들을 모두 거니리라 생각하면서, 야심차게 도보 여행 짐을 꾸렸다. 물론 걸은 지 반나절 만에 불운의 여신이 선물한 세상 온갖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지만….  
    
4월 25일 아침. 탄핵으로 주인 잃은 청와대에 갔다. 거주자가 사라졌으니 경호원도 사라졌으리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경찰들이 가로 막아섰다. “어디 가시죠?” “청와대 구경 가요.” 쫄아버린 나는 한반도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속으로 통일을 기도했다. 걷고 걸어 해질녘쯤 경기도에 입성했다.

  19km - 60Km
무인도시 파주에선 차가 먼저다   

둘째 날 아침.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함흥냉면을 먹고 일찍 길을 나섰다. 이날은 ‘통일로’를 지나 ‘벽제역’을 거쳐 ‘필리핀참 전기념비’에서 묵념을 한 뒤 20km 정도 자전거도로를 걸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걸으면 걸을수록 이 길은 절대 걸어서는 안 된다 는 절망적인 예감이 들었다. 웅장한 덤프트럭들이 굉음을 일으키는 큰 도로를 지나야만 했는데, 당장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변신해서 중저음으로 내게 ‘닝겐은 저리 꺼져’라고 말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은 큰 차들 뿐이었다.  

때마침 트럭 한 대가 지나가면서 튀어 오른 돌멩이가 내 팔뚝에 꽂혔다. 저 멀리 공동묘지가 보였다. 순간 ‘통일이고 나발이고…’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북한 동요 ‘대흥단 감자’를 황급히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했다. “감자 감자 왕감자, 참말 참말 좋아요, 흰쌀보다 맛있는 대흥단 감자….”  

왕감자도 좋지만, 저 차에 깔리면 롤링 오징어가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건 꿈일 거야…. 눈을 감았다 떴지만 이불 속이 아니라 인도가 끊긴 차도였다. 까끌까끌한 모래바람이 목구멍에 훅 들어왔다. 300m 전후방에 사람이라고는 나뿐인 이 거리를 계속 걷는 건 옳지 않았다.  
    
길을 되돌아 전철을 탄 다음, 운정역에 내려서 문산역까지 16km를 걷기로 했다. 그러나 그 길 역시 걸을수록 인도가 끊기는 횟수가 늘어났다. 3시간 동안 사람을 못 만나다가 차도 옆에서 밭 가는 아저씨를 처음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저기요오오! 문산역 어떻게 가요?”라고 소리를 질렀고 아저씨도 일어나서 화답했지만 차 소리에 모든 소리가 먹혀 버렸다.  

아저씨와 나는 몇 번이고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렀으나 차도의 굉음 때문에 서로의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아저씨는 다시 밭을 갈았고, 나는 가던 길을 걸었다. 1시간 뒤쯤 길을 잃은 나는 어느 친절한 언니를 만났다. “여긴 못 걸어요.” 언니가 태워준 차를 타고 5분 만에 전철역에 도착했다.

  61km - 70Km
북한 땅 보며 마시는 대동강 맥주의 맛   

마지막 날 아침까지 불운의 여신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판문점은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차역에서 알아버렸다…. 하지만 역무원 언니는 나를 바보라고 놀리는 대신에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목소리로 알려줬다. “도라산역 가는 기차를 타면 민통선에 들어갈 수 있어요. 북한이 파놓은 제3땅굴도 볼 수 있고요. 판문점은 못 가더라도 거기에선 북한 개성시가 바로 보여요.”  
    
하루 한 번 다닌다는 DMZ 열차를 타고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신분증은 꼭 챙겨야 한다. 역에 내리자 시끄러운 노래 소리가 들리기에 노래자랑이 열린 줄 알았다. 아, 파주 사람들 흥이 많구나! 덤프트럭만 다니는 무인도시인 줄 알았는데 오해해서 죄송!  

그런데 노래가 흘러나오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돗자리를 펴 놓고 막걸리를 마시는 주민들 대신에 녹슨 철조망이 있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쪽 스피커에선 김형중의 ‘좋은 사람’ 이, 철조망 저쪽 스피커에선 ‘내 나라 제 일로 좋아’가 나오고 있었다. 속았다…. 가방을 내던졌다.  

이젠 정말이지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이렇게 걸어다닌다고 통일이 될까? 맨날 도라산역에 오는 저 할아버지가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을까? 기도한다고 해서 끊어진 임진강 철교가 샤샤샥 붙는 것도 아니고 대체 이게 뭐람.  
    
콧물에서 흙이 나오는 내 여정은 하찮아보이기만 했다. 이젠 진짜 마지막이다, 굿바이 임진강이라는 마음으로 전망대에 올라갔을 때 저 멀리 북한 개성이 보였다. 광활하게 텅 비어버린 비무장지대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 순간을 위해 챙겨온 대동강 페일에일을 꺼냈다. 미지근한 그 맛은 진짜 일품이었다.
#평화#통일#판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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