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내가 찾던 너의 이름은
“저어! 신문 좀 찾네만!”
지난해 겨울, 우리 대학 도서관 자료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아침에 들어오는 신문들을 정리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책을 대출· 반납해주는 일이었다. 자료실 중에서도 외국 자료들을 다루는 탓에 이용자가 많지 않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
그날도 소리 한 점 없이 고요했다. 균형 상태를 깬 것은 우렁우렁한 목소리였다. “저어! 신문 좀 찾네만!”
나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응대용 미소를 띠고 되물었다. “어르신, 어떤 신문 찾으세요?” 더럽게 귀찮은 일이 시작되었다. 어르신이기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도서관임에도 소리치듯이 말씀하시는 통에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애써 참고 있던 도서관 이용자들도 울상이 되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진땀이 났다. 내가 아무리 속삭여도, 노인은 더 큰 목소리로 단어들을 내뱉었다. 학보, 소설, 개교 50주년, 문창과, 조병옥. 내던져지는 단어들을 정신없이 받아 적으며 물었다. “어르신 성함이 조, 병자, 옥자 되세요? 그러니까 학교 개교 50주년으로 나온 학보 찾으시는 거죠?” 슬쩍 고개를 들어 바라본 노인의 입은 방금까지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앙 다물어져 있었다.
‘그럼 그렇지, 첫 등장부터 비범하셨지’라고 생각하며 보존실로 향했다. 개교 50주년이니 55년도의 학보일 것이며, 아마 60학번 문창과 조병옥씨의 소설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제 연식을 뽐내는 양 부옇게 피어오르는 먼지들을 손으로 밀어내며 조병옥씨를 찾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쯤 찾았을까,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침을 막을 수가 없어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 때 예의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찾았소?”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어르신,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되세요!” 하고 소 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나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억지로나마 짓던 미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이용자를 밖으로 끌어내야 했다. 손바닥을 절도 있게 펴서 어르신을 밖으로 안내했다. 무어라 크게 떠드셨지만 듣지 않았다. 단호하게 도리질을 하며 문을 열어드렸다. 확실하게 어르신은 자료실의 평화를 갉아먹고 있었다.
땀까지 흘려가며 학보를 정리하고 자리로 돌아오니, 어르신이 서 계셨다. 맥이 풀릴 정도로 말간 얼굴이었다. 애써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 앉자, 어르신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책임자를 불러오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며 받아 든 종이에는 수려한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가 귀가 잘 안 들립니다. 흠결이 자랑이 못 되니 감추기 급급해집디다. 조병옥은 내 안사람입니다. 안사람이 문창과 다닐 때 쓴 소설이 상을 탔어요. 아내가 그 얘기를 자주 하는 게, 요즘 그 시절로 자꾸 돌아가는 것 같어요. 근데 자기가 쓴 글 내용을 기억 못 해서 우울해하고 무안해합디다. 더 늦으면 끝끝내 못 보여줄 것 같아서 이렇게 늙은이가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립니다.”
종이와 함께 내민 명함에는 ‘진도 미술관 관장 조병옥’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고, 멋진 박물관 사진이 박혀 있었다. 황망하게 보존실로 들어가, 애써 정리한 학보들을 다시 우르르 꺼내 펼쳤다. 이번엔 명함에 기재된 한자 이름 덕분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어르신에게 달려가 학보를 건넸다. 어르신은 소설 옆에 실린 조병옥씨의 사진을 쓸며 가만히 웃음지었다. 학보 속의 조병옥씨는 내 또래 정도였을 것 같았다. 학보를 몇 번이고 쓸어보던 어르신은 우렁차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이 다시 날 쳐다봤지만, 이번에는 진땀이 나지 않았다. 대신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어르신과 학보 속 조병옥씨는 맑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날도 소리 한 점 없이 고요했다. 균형 상태를 깬 것은 우렁우렁한 목소리였다. “저어! 신문 좀 찾네만!”
나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응대용 미소를 띠고 되물었다. “어르신, 어떤 신문 찾으세요?” 더럽게 귀찮은 일이 시작되었다. 어르신이기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도서관임에도 소리치듯이 말씀하시는 통에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애써 참고 있던 도서관 이용자들도 울상이 되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진땀이 났다. 내가 아무리 속삭여도, 노인은 더 큰 목소리로 단어들을 내뱉었다. 학보, 소설, 개교 50주년, 문창과, 조병옥. 내던져지는 단어들을 정신없이 받아 적으며 물었다. “어르신 성함이 조, 병자, 옥자 되세요? 그러니까 학교 개교 50주년으로 나온 학보 찾으시는 거죠?” 슬쩍 고개를 들어 바라본 노인의 입은 방금까지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앙 다물어져 있었다.
‘그럼 그렇지, 첫 등장부터 비범하셨지’라고 생각하며 보존실로 향했다. 개교 50주년이니 55년도의 학보일 것이며, 아마 60학번 문창과 조병옥씨의 소설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제 연식을 뽐내는 양 부옇게 피어오르는 먼지들을 손으로 밀어내며 조병옥씨를 찾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쯤 찾았을까,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침을 막을 수가 없어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 때 예의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찾았소?”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어르신,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되세요!” 하고 소 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나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억지로나마 짓던 미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이용자를 밖으로 끌어내야 했다. 손바닥을 절도 있게 펴서 어르신을 밖으로 안내했다. 무어라 크게 떠드셨지만 듣지 않았다. 단호하게 도리질을 하며 문을 열어드렸다. 확실하게 어르신은 자료실의 평화를 갉아먹고 있었다.
땀까지 흘려가며 학보를 정리하고 자리로 돌아오니, 어르신이 서 계셨다. 맥이 풀릴 정도로 말간 얼굴이었다. 애써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 앉자, 어르신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책임자를 불러오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며 받아 든 종이에는 수려한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가 귀가 잘 안 들립니다. 흠결이 자랑이 못 되니 감추기 급급해집디다. 조병옥은 내 안사람입니다. 안사람이 문창과 다닐 때 쓴 소설이 상을 탔어요. 아내가 그 얘기를 자주 하는 게, 요즘 그 시절로 자꾸 돌아가는 것 같어요. 근데 자기가 쓴 글 내용을 기억 못 해서 우울해하고 무안해합디다. 더 늦으면 끝끝내 못 보여줄 것 같아서 이렇게 늙은이가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립니다.”
종이와 함께 내민 명함에는 ‘진도 미술관 관장 조병옥’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고, 멋진 박물관 사진이 박혀 있었다. 황망하게 보존실로 들어가, 애써 정리한 학보들을 다시 우르르 꺼내 펼쳤다. 이번엔 명함에 기재된 한자 이름 덕분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어르신에게 달려가 학보를 건넸다. 어르신은 소설 옆에 실린 조병옥씨의 사진을 쓸며 가만히 웃음지었다. 학보 속의 조병옥씨는 내 또래 정도였을 것 같았다. 학보를 몇 번이고 쓸어보던 어르신은 우렁차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이 다시 날 쳐다봤지만, 이번에는 진땀이 나지 않았다. 대신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어르신과 학보 속 조병옥씨는 맑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Writer 이진영 coin5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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