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젊고 순수한 꼰대
님 몇 년 생인데 그러시는데요?
몇 년 전부터 '꼰대', '아재' 같은 키워드가 몹시 비호감인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자리잡았다. 이미지만 떠올리면 꼬장꼬장하고 나이 든 중년이 떠오르지만, 사실 젊은 20대 중에도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평소 꼰대질을 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 자아를 돌아봤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정말 어마어마한 꼰대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자아 성찰 및 반성의 시간을 가질 겸, 내가 가장 꼰대가 되는 몇 가지 순간을 꼽아 봤다. 방심하지 마라. 혹시 당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과거 얘기를 꺼내며 생색을 낼 때

나: 요즘 군대 내무반은 생활관이라고 한다며?
친구 1: 맞아요. 선배 때는 내무반이라고 불렀어요?
친구 2: 야, 말이라고 하냐? 그 때는 한 내무반에 30명씩 들어가 있었어.
나: 장난하냐 ㅋㅋ 짬밥도 안 되는 게.
나 때는 더 심했어. 에디터를 포함한 남성들이 주로 남자 후배나 동생에게 자주 하는 말. 공통적인 관심사 군대 얘기를 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한숨에 섞여 나오곤 한다. 물론 소속은 같고 연차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주 나오는 얘기다.
일종의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언어 습관이다. "내가 이렇게 고생했다는 걸 좀 알아 줘", "나는 지금 세대보다 훨씬 고생했어." 상대를 낮추어 보는 듯한 표현이 들어있는 이유는 그래야 비교대상인 내가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의 변화나 타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지 혹은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나 땐 안 그랬는데"라는 단순한 격세지감의 표현 혹은 차이의 표현이 아닌 "너는 나보다 고생을 덜 한다"는 비교의 의미가 담겨 있다면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하자.
필요 이상으로 예의를 차리거나 요구할 때

나: 엊그제 갑자기 동아리 후배가 전화로 "어머니 일 때문에 공연을 못 하겠다"라고 하는거야.
친구: 그래도 이틀 전에 펑크냈으니 다행이네
나: 그게 아니라, 진짜 미안한 마음에서라면 전화는 좀 아니지 않아? 그런 건 예의가 아니지. 동방예의지국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을 지키지 않은 경우, 나이를 막론하고 이런 말을 내뱉기 쉽다. 말 자체는 "예의 있는 행동을 하라"는 순수한 의미처럼 들리지만, 실은 '목표를 이루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손해는 감수했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불합리성에 문제점이 있다.
예컨대 이는 교수님께 대드는 후배를 질타한다든가, 웃어른에게 버릇없이 구는 손아랫사람을 훈계하는 잔소리와는 다르다. "이런 건 직접 찾아와서 얘기해야 하는 거 아냐?", "아무리 바빠도 선배가 말하면 대답은 해야지"라는 예시처럼 이를 꼰대처럼 사용하려면
1. 상식이 아닌 '자기 생각'을 벗어나면 화를 내며, 2. 자기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이 다소 비효율적일지라도, 3. 예의/도리를 지켜야 하며, 그 대상이 '나 자신'일 때 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특정 상황이나 관계에서 효율보다는 형식과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자주 쓴다. 조직의 상하관계를 철저하게 따지기 때문에 이런 발언이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쉬운 말로 사소한 걸로 부들부들 하기 때문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긴 그럴 수가 있어, 어쩌다 보니 그럴 수도 있는거지. 스스로 여유로움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나이만능주의로 모든 걸 해결하려 들 때

나: 내가 재수했다고 하는 말은 아닌데, 확실히 재수를 해 본 사람이 인생을 알아.
동기: 뭔 소리야 ㅋㅋ 재수하면 연애나 하고 펑펑 놀다가 장수생의 길로 접어들지.
나: 뭐? 니가 재수를 해 봤어? 너 몇 년 생이냐?
초면부터 나이가 궁금할 수는 있다. 민증에도 이름 다음엔 생년월일이 표기되어 있으니까. 단순히 "아, 성함이 조웅재 씨? 실례지만 나이는 어떻게..." 라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의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 내가 이런 말을 쓸 땐, 정말 상대가 몇 살인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꼰대들은 정황상 나이를 물어볼 타이밍이 아님에도 나이를 묻고, 묻는 이유 역시 "대드는 게 불편하고, 참다 못해서"다. 즉, "너 몇 살인데 감히 그런 얘기를 하니?"라는 뜻.
나와 다른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이로 모든 것을 판단하며, 나와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주된 이유가 나이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꼰대'라며 무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 심한 경우 나이를 확인한 이후에 "음 내가 형/누나니까 말 편하게 할 게"라며 상대의 의사는 묻지 않고 말을 놓아버릴 때도 있다.(학생 에디터들 미안) 나일리지가 쌓여 경험자로서 대우를 받는 건 부당한 일이 아니지만, 만사에 나이를 앞세우며 남 위에 올라서려 하는 건 결코 좋은 습관이 아니다.
내 말이 곧 진리일 때

친구 1: 여자친구랑 권태기가 온 건가 싶어. 요즘 재미가 없네...
나: 1년 만났으면 슬슬 헤어질 때도 됐지.
친구 2: 그걸 위로라고 하냐. 애 울겠다.
나: 진짜야. 니네가 뭘 잘 모르나 본데, 원래 CC는 1년이 유통기한이야.
본인이 마치 백과사전인 듯 모든 걸 독단적으로 판단하는 전형적인 폐쇄형 꼰대. 의외로 이게 말버릇이나 관용어구 같은 거라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사람들도 자주 지르는 꼰대형 대사다. 그래서 나도 종종 사용한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이유는 "본인의 나이 혹은 오랜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그렇다"라는 근거 때문인데, 부모님 연세 쯤 되는 어르신들이 이런 식의 화법을 자주 구사하는 걸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정작 이 화법이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두루 쓰인다는 것. 100세 노인이 이런 얘기를 해도 꼰대소리를 듣는 마당에... 꼰대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소통 가능 여부'인데, 이 발언은 매우 자기중심적, 권위적인 사고가 깔려 있는 말이다. 자기 말이 절대적이라는 전제 하에 던지듯 내뱉는 말이며, 그렇다고 딱히 근거가 될 만한 이유를 대지도 않는다. 대부분 이런 꼰대스러운 발언을 하는 원인은 경험을 가장한 편견 때문이다. 내가 겪은 게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
불가능이란 없다며 고집부릴 때

나: 야, 오랜만에 다 모였는데 빨리 나와, 빼지 말고 좀.
친구: 뭔 소리야, 새벽 1시에 인천에서 종로를 어떻게 가?
나: 우리도 다 지방 사는데 여기 왔어. 거 뭐 여기서 얼마나 된다고!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라는 군대식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있다. 본심이야 힘들다는 걸 알지만, '나도 A했으니 너도 A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이렇게 떼 쓰면 못 이겨서 나올 테지'라는 마음에 생각 없이 지르는 무논리형 꼰대질.
이런 사람들은 주로 '우리 모두가 A 했으니, A하지 않는 사람은 배신자'라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다. 같은 소속에 있는 사람에게 잔소리를 할 때 주로 이런 얘기를 하는데, 흔히 같은 과 동기나 선배, 동아리 멤버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들에게 개인주의는 나쁘고 이기적인 행동이며, 사생활보단 단체생활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만 보면 군대가 체질인 사람 같다.
역으로 이런 꼰대질은 가장 욕 먹기 좋은 행동이다. 큰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 멤버들 사이에서 이런 짓을 했다간 '사회성 없고, 친구도 없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소속감을 찾는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될 수 있다. 억지도 정도껏 부려야 의리로 봐 줄수 있는 법. 그러니 '의리' 강요하다 친구 잃지 않도록 주의하자.
Illustrator 김지현
#20대#과#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