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비독립일기] -5화- 오래된 반려인의 기록

우리 식구는 다섯이다.
   
우리 식구는 다섯이다. 네 명의 사람, 그리고 한 마리의 강아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성견이었지만 꿈처럼 작고 하얘서 강아지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아이.  

강아지를 돌보는 일은 주로 예뻐하는 자와 궂은일을 하는 자의 구도로 나뉘었다. 제1배변 처리 담당 아빠, 맛있는 것 주기 담당 엄마, 밤늦게 집에 와서 자고 있는 애 쓰다듬기 담당 형제.   그리고 나머지 제2배변 처리, 미용, 목욕, 눈곱 떼기, 귀 청소, 이 닦기, 빗질, 산책, 약 복용, 병원 데려가기 등 자질구레한 일들의 담당은 나였다. 건강과 직결된 일들을 챙기는 것은 나인데 죄다 반려견이 싫어하는 일들이어서 갈수록 친밀도 꼴찌, 서열 꼴찌의 닝겐으로 포지 셔닝됐다. 억울하다. 억울해!  
    
결국 반려견과 함께 산 지 16년이 되던 해에 가족들을 앉혀놓고 업무 과중을 토로했다(진짜 오래 참았다).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학교에 다니고 과제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므로 반려견을 꼼꼼히 돌볼 시간이 자주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험 끝나면 할 일’의 1순위는 늘 푸들 스웨그를 뽐내며 덥수룩이 자란 털을 미용해주는 것이었다. 미용사인 내가 바쁜 학기 중엔 털이 부숭부숭 쪄 있는 상태로 둘 수밖에 없었다. 나의 문제 제기를 듣던 가족들은 충격적인 말을 쏟아냈다.  

“30분이면 털 다 깎지 않아?” “발톱은 1년에 한 번 깎나?” 아무도 미용, 귀 청소, 이 닦기, 발톱 깎기를 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 늘 내가 해왔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었다나. 나 혼자만 얘랑 지지고 볶았던 거야?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왠지 앞으로도 내가 쭉 담당해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도 덩달아….  
    
16년째 “몇 개월 됐냐”는 말을 듣는 동안 미모의 강아지지만, 한 집에서 살다 보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예년처럼 반 년 치의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사서 복용 날짜를 적던 중, 다음 해의 날짜를 쓰며 순간 등이 서늘해졌다. 우리가 그때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그런 노파심이 여행이나 자취를 의식적으로 미뤘는지도 모르겠다. 이별은 언제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고, 후회를 덜하는 방법은 지금 당장 같이 있는 것밖에 없으니까.  

지난겨울이 끝나기 전, 나의 10대와 20대의 절반을 함께한 작은 친구는 개의 몸을 벗어두고 떠나갔다. 앞으로는 그 친구가 없는 일상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자연스러워지겠지. 그 사실이 슬프고 야속해서 한참을 울었다.  

울다가 고개를 드니 눈물을 훔치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내게는 썩 불공평했던 분담이었을지 몰라도,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누구도 반려견과 함께 한 시간이 더 많거나 적지 않았고, 그 시간이 모여서 반려견의 생의 수많은 장면들을 만들었다.  

그 장면을 함께 만들어 나갔던 사람들이 둘러 앉아 반려견과 인사를 나누고, 같이 한 세월을 곱씹으며 먹먹함을 달랬다. 며칠을 함께 울고 나서야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Illustrator 남미가  
#독립일기#비독립일기#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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