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한복을 입으면 내가 좋아져

즐거우면 진짜로 얼굴이 변하는구나 실감했어요.
“일본 오사카에서 한복 입어볼래?”    22살이었던 2014년, 학교 선배 언니가 살고 있는 일본에 놀러 가게 됐어요. 저의 첫 해외여행이었죠. 그런데 언니가 한복을 입고 다니자는 거예요. 일본 오사카에서 한복이라니, 처음엔 유별나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까봐 걱정스러웠고, 혐한 시위가 종종 일어난다는데 돌 맞을까봐 무섭기도 했고요.  

게다가 한복이 그렇잖아요. 명절 때만, 그것도 아주 어릴 때만 입었던 전통 옷인데 막상 다른 나라에서 입으려니 좀 새삼스러웠어요. 어쨌든 언니는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일본 사람들은 명절이 아니어도 기모노를 입으니까, 우리도 편하게 한복을 입으면 된다고요. “마츠리(일본 전통 축제) 때도 한복을 입었는데 괜찮았어.” 언니가 말했죠.  
    
그런데 여행 중 한복을 입은 첫날,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 거예요. 외국인 관광객들은 신기하다면서 길가다가 멈춰 서기도 했고요. 지나가던 일본인들도 관심을 보이며 제 옷을 만져보기도 했죠. 같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물론 우리의 대화는 곧 한국 가수와 아이돌 얘기로 이어지긴 했지만, 한복 덕분에 외국인 친구를 더 쉽게 사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라시야마’(일본 교토의 관광지)에서 만난 고마운 할아버지도 기억나요. 그 할아버지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잘 해주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예전에 부산에 왔다가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셨대요.   마침 그날은 장맛비가 쏟아져서 원두막에 앉아 비 그치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덕분에 현지인들이 다니는 거리와 조용한 숲속 풍경을 소개 받을 수 있었어요. 한복을 입고 있어서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셨대요.  
    
하지만 여행하던 중에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어요. 오사카 거리를 걷고 있는데 “왜 나대?”라는 소리가 들려온 거예요.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여러 번 들으니까 알겠더라고요. 한국 관광객들이 지나가면서 우리에게 하는 말이었죠.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니까 속상했어요.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민폐였을까? 고민스러웠어요. 다 그만두고 일찍 돌아가야 하나? 플래시몹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 외국 관광객도 일본인도 예쁘다며 관심을 보이는 한복이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욕을 먹을 줄은 생각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한복을 계속 입고 다녀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일본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기모노를 입고 다녀요. 한복도 그렇게 일상에서 편하게 입는다면 좋을 것 같았어요. 사실 저는 한복이 정말 좋거든요. 꼭 우리나라 옷이어서만이 아니라 착용감도 편하고 예쁘잖아요. 평상시에 한복을 못 입을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일본에 놀러 갈 때마다 꼭 한복을 챙겨 갔죠. 오사카에서 돌아온 뒤 오이타와 후쿠오카에 놀러 갔을 때도 한복을 입고서 돌아다녔어요. 우리나라 부산에 놀러 갔을 땐 깡통시장과 영도에서 한복을 입고 다녔고요.  

한복 여행이 제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해요. 저는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낯가림이 아주 심했거든요.  

버스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아예 앉지도 않거나, 누군가가 “저기요!”라고 부르면 소스라치게 놀랐었죠. 누군가가 말 걸어오기 전까지는 먼저 말을 안 했고, 친해지고 싶어도 말을 못 걸었어요. 누가 사진 찍자고 하면 “네?” 하면서 피했던 저였는데 신기하게도 한복을 입고 여행을 할 때만큼은 깨방정도 부리면서 정말 행복하게 웃는 거예요.  

사람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교복 같은 옷만 입고 다녔었는데, 이젠 색색의 예쁜 한복을 입고 여행하면서 사람들이랑 웃으며 대화하고 사진을 찍어요.  

예전에 누군가가 해줬던 말, “좋아하는 일에 힘을 쏟아라.” 라는 말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돼요. 저는 한복을 좋아하고 ‘한복 여행’ 도 정말 좋아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얼굴 표정이 달라져요. 사실 한복을 입기 전 제 사진을 보면 표정이 조금 어색했거든요. 웃을 듯 말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머뭇거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복을 입고 찍은 요즘 사진들을 보면 제가 정말 편안하게 웃고 있어요. 즐거우면 진짜로 얼굴이 변하는구나, 실감했어요.  

머뭇거리는 태도도 많이 사라졌어요. 겁이 없어졌죠. ‘이게 될까?’ 싶었던 한복 여행을 해보고 나니까 못할 일이 없겠더라고요. 그 대신에 ‘어차피 할 일이라면 제대로 해보자’ 마음먹게 됐어요. 무턱대고 외국계 회사에 원서를 내보기도 하고, 대외활동에 지원해서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어요.  

예전엔 ‘이렇게 웃으면 얼굴이 부어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면, 이제는 ‘부어 보이든 말든 내가 행복해 보이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한복 덕분에 더 자유로워졌어요. 두려움이 없어졌으니까요. 예쁜 한복들을 보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기 위해. 한복을 사서 입고 즐겁게 여행 다니기 위해!


한복 입고 곳곳을 여행하는 대학생 임진희씨와의 인터뷰를 옮겼습니다.
Interviewee 임진희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12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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