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통학 잔혹사

학교를 다니면서 느는 것
아침 밥상에서, 손과 입은 밥을 먹고 있지만 눈은 휴대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밥 한 숟갈 떠먹고 실시간 버스 위치 어플 새로 고침, 또 밥 한 숟갈 떠먹고 새로 고침…. 다섯 번째 새로 고침 즈음에 ‘때’ 를 느끼면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향해 뛴다.  

전공 수업이 오전에 몰려 있는 학기에는 주4일 1교시를 피할 수가 없다. 이른 아침마다 지하철 풍경은 가히 이 시대의 문화유산이라 불릴 만하다. 이미 이전 역에서 사람을 가득 채워 온 지하철엔 발 디딜 틈이 없다. 문이 열려 있는데 왜 타질 못하니!  

10여 분 후, “들어갑시다!” 누군가의 기합과 함께 지하철 속으로 몸이 구겨지면 아침잠을 번쩍 깨우는 삶의 철학적인 고민들이 이어진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는 오늘도 여기에 있는가, 이들은 모두 어디로 향하는가, 이곳을 거쳐 향한 곳에서는 행복할 수 있는가….  
    
앞 사람의 땀, 지난밤의 술자리, 과한 향수 냄새들과 내 목에 닿는 뒷사람의 숨. 이 도시에서는 최소한의 안전거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지하철에서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눈을 감고 아침밥, 화장, 수면 중 무얼 포기했어야 10분 일찍 나올 수 있었을지 순위를 매겨본다. 전철에 덜컹덜컹 실려 가는 동안 집중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빠른 템포의 곡을 흘려보내 예민해진 신경을 마비시키는 수밖에.  

내릴 역이 가까워지면 다시 어플을 켠다. 지하철 위치를 확인한 후, 뛰거나 걷거나 둘 중 하나다. 대부분 뛴다. 이렇게 뛰고 나면 지하철 에서 내려서 강의실까지는 뛰지 않을 것 같지만, 역시 뛴다. 오늘의 운동은 이걸로 다 했다.  
    
약속에 늦는 사람은 치매에 일찍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 있다. 약속에 늦는 동안 일명 ‘똥줄’을 태우게 되는데, 그것이 치매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나. 나의 등굣길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갈까’ 동동거리는 ‘똥줄’의 연속인데 말이다. 벌써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진 몰랐지만, 나의 노후여,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일과를 마치고 가방을 둘러매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어떻게 가야 집에 빠르고 편하게 도착할지 머리를 굴린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다. 빠른 길은 많이 걸어야 하고, 편한 길은 오래 걸린다. 어리석은 나는 편한 길로 빨리 가보겠다며 또 어플을 켜고 환승 레이스에 몰두한다. 아무래도 학교를 다니면서 느는 것은 환승 실력과 달리기뿐인 것 같다.  

이 레이스는 막차 시간에 진가를 발휘한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면서도 막차 시간을 예의 주시하고, 자정이 멀었지만 경기도민의 감각으로 ‘때’를 감지하면 미련 없이 자리를 뜬다. 어김없이 어플을 보며 아슬아슬하게 막차에 몸을 싣고 나면 가족 대화방에 버스를 탔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도 나는 ‘막차의 귀재’로 불린다.


Illustrator 남미가  
#독립일기#비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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