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인생 쪼렙들을 위한 잔기술] 2. 정신승리

자잘한 불운에 지지 않는 기술

자, 이제 페이스북에 

내가 겪은 불운을 병신미를 가미해 기록해보자.


02 : 자잘한 불운에 지지 않는 기술


‘자잘한 불운에 지지 않는 기술’을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데, 영화에서 운명과도 같이 이런 대사를 만났다.    

“인생에서 불행은 안 끊기고 쭉 이어지는데, 행복은 아주 가끔?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하거든.”(<꿈의 제인> 중에서) 
   

우와! 대사만 갖다 써도 한 단락은 채울 수 있겠다! 바로 이런 게 드문드문 만나는 행운이다. 반면 크고 작은 불운들은 곳곳에 지뢰처럼 포진해 있다가 ‘요 녀석 맛 좀 봐 라!’ 하면서 툭툭 불거져 나온다.  

친구들은 나에게 “그림 배워서 일상툰 연재해. 왜 그런 일은 너한테만 생겨? 니 인생 시트콤 같다”라고 하는데 물론 그 시트콤의 장르는 <프렌즈>보다는 김병욱 감독 시트콤에 가깝다. 최다니엘이나 윤시윤과의 로맨스는 일절 없고 ‘우당탕탕’ ‘꽈당’ 소리만 반복되지만.  

사실 내가 겪는 불운들은 미스테리하면서 짜증 나는 일들이다. 보통 사람들이 겪는 불운이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쳐서 지각을 하는 정도라면, 나는 버스를 놓치지도 않았는데 기사님이 교회에 버스를 주차하더니 “기도 좀 하고 올 게요” 하면서 예배당으로 사라지신다. 화장실이 급하신 거겠지? 싶었지만 웬걸 버스 기사님은 10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대변을 보셨거나 통성기도를 하신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탈모에 좋다는 각종 잡곡을 섞어 15인분 밥을 했는데(냉동해 놓을 계획) 하필 거기에 실리카겔이 들어가서 밥을 다 버려야 했다. 남긴 밥은 지옥 가서 먹는다던데, 남들이 지옥에서 음식물쓰레기 먹을 때 나는 몸에 좋은 실리카겔 귀리밥을 먹게 될 것이다.  

좀 더 큰 불행을 말해야 독자들도 나를 가엾이 여기실 테니 5년 전 불행을 고백하겠다. 당시 나는 뭐에 홀렸는지 빚까지 내서 ‘돼지 영농펀드’에 투자했다. 순이익이 무려 21%였다. 물론 사기였다. 은행 대출을 여태 갚고 있는데 펀드 사기꾼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알고 보니 대표 변호사가 우병우였다(맞다, 그 우병우). 덕분에 이 사건이 최근 <썰전>에도 나오고 뉴스에도 나와서 온 가족의 비웃음을 샀다.  

인생은 당연히 내 기대대로 풀리지 않는다. 행운을 기대하면 불운이 더 크게 느껴지고 자주 닥쳐온다. 공평하게 불행 50, 행복 50 정도의 비율이라면 그래도 낫겠는데 체감하기로는 불행이 100이고 행복이란 맥주 첫 모금을 마실 때 정도밖에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불운에 지지 않고 “너 왜케 재미 있게 살아?” “니 인생 시트콤 같아”라는 칭찬을 듣는 방법은 무엇일까. 비록 내가 인스타스타도 아니고 페이스북도 팔로워보다 팔로잉 수가 많지만 그래도 나만의 정신승리 SNS 운영법을 알려주겠다.  

1. 페이스북에 가입하자.  
인스타그램은 본인이 예쁘거나, 예쁜 집에 사는 주부의 승률이 높으므로 불운한 가난뱅이에게는 페이스북이 더 유리하다.  

2.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하자.  
특히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이 일단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3. 내가 겪은 짜증 나는 일이라도 ‘내’가 아닌 타인이 겪은 것처럼 객관화하자.  
“엉엉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라고 감정이입하는 순간 이건 그냥 불행 배틀이 돼버린다. 우리는 이 슬픔을 꺼내 보고 울기 위해 기록하는 게 아니다.  

4. 모든 사건의 옆구리에는 유머가 내장되어 있다.  
그런 ‘병신미’를 발견하면 불운한 일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자취집 싱크대 배수대가 터져서 부엌이 물바다가 되었다. 소심한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 밑에는 수건을 몇 겹이나 깔고 살았고, 습기 때문에 곰팡이까지 피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요소가 무엇일까. 두 달 만에 나타난 집주인 할아버지는 공구통 대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카치테이프였다. 다이소 스카치테이프를 들고 “수리공 필요 없다”며 야심차게 싱크대 밑에 들어가 낑낑대는 할아버지. 화가 나지만 웃기지 않나.  

5. 자, 이제 페이스북에 내가 겪은 불운을 병신미를 가미해 기록해보자.  
사건의 우화적 요소를 기록하면 기억까지 각색된다. 일기장이 아니라 SNS에 쓴다는 게 의미가 있다. 나만 보는 게 아니라 남이 볼 가능성을 염두하기 때문에 적정선을 지켜서 쓰게 된다. 그럼 나에게 닥쳐온 불행과 그것에 맞서는 나의 기분이 완화되고 ‘나만의 병신 같은 페이스북’이 완성! 물론 예쁜 인스타그램처럼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지만.  

번외. 알다시피 SNS 때문에 인생 망치는 사람들도 있다. SNS에 절대 올리지 말아야 할 것이 ‘남 이야기’다. 특히 선배나 동료 험담은 금물. 변영주 감독이 페이스북에 쓴 조언을 옮긴다.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느낄 땐 SNS를 멈추세요. 저는 그런 기분으로 술을 마실 때에는 모든 SNS앱을 지웁니다. 그러고 나면 다음 날 그 대상과 논쟁할 때 사과로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Photographer 김윤 Z studio
Writer 김송희 grimgle@naver.com 불행을 팔아먹을 수 있는 글쓰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글 쓰고 돈 되는 일 대환영입니다. 많이 찾아주세요
     
#잔기술#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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