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인생 쪼렙들을 위한 잔기술] 4. 말장난 스킬

말주변 없는 이들을 위한 말장난의 기술

일차원적인 데다 참신한 드립을 고민한 노력도 없으면서 

웃음까지 강요하는 ‘아재 개그’랑 같은 급으로 묶지는 말아 달라. 


03 : 말주변 없는 이들을 위한 말장난의 기술


“아~ 아재 개그?”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이제 말장난은 아재 개그라고 불린다. 재미없는 개그에 억지로 웃어주면서 쌓인 불만이 말장난에 대한 적대감으로 발전했으리라.  

그러나 난 아재가 아닐 때부터 말장난을 좋아했다. 발음이나 생김새가 비슷한 단어들을 뒤섞는 게 재밌었다. 남들을 위한 농담이라기보다는 날 위한 놀이였다. 몇몇은 ‘기명균 개그’라고 부르며 조롱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말장난의 대명사로 인정받은 셈이니까.  

할배가 되어도 말장난은 계속 할 것이다. 웃어주면 고맙고, 실패했다면 패인을 분석해 더 좋은 말장난을 하면 될 일이다. ‘핵노잼’이라는 비판은 받아들일 수 있다. 일차원적인 데다 참신한 드립을 고민할 의지도 없으면서 웃음까지 강요하는 ‘아재 개그’랑 같이 묶지는 말아 달라. 부탁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달달 외운 ‘최신 유머’는 말장난이 아니다. 말장난은 참신함이 생명인데, 이미 누군가 했다면 그건 죽은 개그다.  

“미안해. 그러니 사과할게”라면서 사과 한 알을 내민다거나, 난 널 사랑할테니 넌 오랑 하라는 식의 일차원적인 말장난은 욕먹어도 싸다. 나처럼 말장난에 관대한 사람이야 앞으로 더 노력하라며 등을 두드려 주겠지만, 그렇잖아도 치를 떨던 사람들은 이런 썩은 농담 때문에 더더욱 말장난으로부터 멀어진다.  

『춘향전』의 “서방인지 남방인지~”를 ‘언어유희’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말장난은 일종의 지적 유희다. 머리를 써야 한다. 단어를 볼 때마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를 바꿔보고, 필요한 경우 비슷한 발음의 외국어까지 떠올리는 습관을 길러야 상황에 맞는 말장난을 할 수 있다. 마치 래퍼들이 라임에 맞춰 가사를 쓰기 위해 여러 단어를 적어놓고 고민하는 것처럼.  

위의 ‘사과’ 개그가 망하는 이유는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음이의어는 너무 뻔하다. 별 하나짜리, 하수들이 쓰는 무기다. 가는 길에 이것 좀 ‘사 가’, 내 얼굴이 좀 ‘삭았’지, 명작 게임 <포가튼 ‘사가’> 정도는 되어야 ‘얘 말장난 좀 하는데?’ 싶다.   비틀수록 신선해진다. 한때 온라인에서 유행한 ‘문명하셨습니다’는 사망했다는 뜻의 ‘운명하셨습니다’에서 자음 하나를 바꾼 말장난이다. 게임의 중독성이 확 와 닿는다.  

“넌 좀 별로… 내 마음 속 별로…”는 명사 ‘별(star)’과 조사 ‘-로’가 합쳐져 ‘좋지 않다’는 뜻의 부사 ‘별로’랑 섞였다. 모양은 유사한데 의미는 정반대라 반전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복잡하게 비틀면 못 알아듣는다. 모든 개그는 설명이 필요해지는 순간 끝이다. 너무 단순하지도, 복잡하지도 않게. 밸런스가 중요하다.   흔히 글쓰기의 기본을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 한다. 말장난도 비슷하다.    

첫째, 다독.
말이든 글이든 언어로 된 것이라면 무조건 많이 접할수록 좋다.『많아지면 달라진다』는 책 제목처럼 절대적인 단어의 양이 많아야 떠올릴 수 있는 말장난도 다양해진다.  

둘째, 다작. 끊임없이 말장난을 만들고 수시로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 말장난엔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처음엔 별로였던 사람도 자꾸 듣다 보면 웃게 되고, 심지어 한술 더 뜨게 된다.  

마지막으로, 다상량이 아니라 다상냥. 말장난을 하다 보면 많은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그럴수록 상냥해져야 한다. 야유를 해도 허허 웃어넘기고, 누가 재미없는 농담을 해도 위로해주고, 작은 말장난도 칭찬해주자. 같은 말장난이라도 좀 더 상냥한 사람 말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법이다.  

말장난은 특히 말주변 없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술자리에서 적절히 사용하면 ‘과묵하면서도 꽤 재밌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실감나는 연기력도, 유창한 말솜씨도 필요 없다. 아프리카TV 중계 창에 댓글 달 듯 한 마디씩 툭툭 던지면 된다. 윤종신은 이 ‘주워먹기’ 기술로 <라디오스타>에서 10년을 버텼다.  

실패할까봐 쫄 필요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타자도 열 번 중에 일곱 번 아웃된다. 3할만 치자는 마음으로 배트를 휘둘러라.


Photographer 김윤 Z studio
Writer 기명균 kikiki@univ.me 말장난을 좋아하는 기명균입니다. ‘어차피 아재 개그 아니냐’라는 모함에 맞서기 위해 이 원고를 쓰게 되었습니다. 말장난은 낱말퍼즐을 만들 때에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줍니다.
     
#말장난#대화#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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