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취업 했어? 그 말 말고 다른 말이 듣고 싶어
우리도 다른 인사 좀 듣고 싶단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라면 이런 질문 한 번쯤 받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취업 준비 하고 있어? 어디 회사 지원할 거야? 어디 취업했어? 등등.
“밥 먹었어?”라고 안부를 묻는 말처럼, 졸업을 앞둔 4학년(혹은 5학년, 6학년…)은 자신의 현재 처지를 폭로함과 동시에 상대에게 취업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를 알려야 한다.
문제는 질문을 하는 상대방은 단순한 궁금증이나 안부차 던진 말이겠지만, 막상 질문을 받는 우리는 어젯밤 겨우 덮어 두었던 불안감을 다시 한 번 들추게 된다. 심지어 이제는 같이 졸업을 앞둔 친구에게도 이런 질문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내 궁금증 해소하자고 행여나 친구의 불안을 다시 불러내거나 압박감을 줄까 걱정되어서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졸업을 한다’는 말은 단순히 학교를 떠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회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딛고 축하 받는 것이라고 아름답게만 보이면 좋겠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실에서 졸업이란 곧 ‘이제 취업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통한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라면 취업을 했거나 혹은 취업 준비를 충분히 해놓았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에 속해야만 상대로부터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걱정해주거나 이상하게 보는 눈길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왜 졸업을 하면 반드시 취업을 할 것이라 생각할까? 남들 따라 뭣도 모르고 대학에 들어왔다가 방황을 겪었다. 그리고, 졸업을 하게 된 이제야 겨우 사회가 밀어 넣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 의지대로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줄 알았건만, 나는 더 큰 압력을 마주하게 된다. ‘졸업=취업’이란 공식은 나 자신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숨통을 조이는 장본인이다.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에 있는 동안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28살에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던 친구를 만났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들은 많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 친구는 자신이 이 나이에도 여전히 학교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했다. 주변 친구들도 이를 이상하게 보거나 왜 아직도 학교에 있냐는 걱정스러운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만약 이 친구와 같은 처지 였다면 늦게까지 학교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했을 테고,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나이의 흐름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내가 그 친구의 상황이라면 당당하지 못할 것이라 느낀 건 나의 개인적 시각의 문제만이 아니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미취업자를, 취업하지 않은 졸업자를 마치 탈선한 기차처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졸업 예정자, 졸업자에게 묻는 각종 취업 질문을 혐오한다. 졸업 이후의 삶을 왜 취업이라는 길 하나로 한정 지으려 할까? 길은 다양하다.
내가 미래에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찾아나갈 수도 있고 굳이 취업이 아니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학교생활과 별개로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람들 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은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졸업 이후의 삶을 취업으로만 한정 짓는 각종 취업 질문을 잠시 내려놔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 대신 ‘앞으로 뭘 하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어떨까. 우리도 다른 인사 좀 듣고 싶단 말입니다!
“밥 먹었어?”라고 안부를 묻는 말처럼, 졸업을 앞둔 4학년(혹은 5학년, 6학년…)은 자신의 현재 처지를 폭로함과 동시에 상대에게 취업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를 알려야 한다.
문제는 질문을 하는 상대방은 단순한 궁금증이나 안부차 던진 말이겠지만, 막상 질문을 받는 우리는 어젯밤 겨우 덮어 두었던 불안감을 다시 한 번 들추게 된다. 심지어 이제는 같이 졸업을 앞둔 친구에게도 이런 질문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내 궁금증 해소하자고 행여나 친구의 불안을 다시 불러내거나 압박감을 줄까 걱정되어서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졸업을 한다’는 말은 단순히 학교를 떠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회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딛고 축하 받는 것이라고 아름답게만 보이면 좋겠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실에서 졸업이란 곧 ‘이제 취업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통한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라면 취업을 했거나 혹은 취업 준비를 충분히 해놓았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에 속해야만 상대로부터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걱정해주거나 이상하게 보는 눈길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왜 졸업을 하면 반드시 취업을 할 것이라 생각할까? 남들 따라 뭣도 모르고 대학에 들어왔다가 방황을 겪었다. 그리고, 졸업을 하게 된 이제야 겨우 사회가 밀어 넣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 의지대로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줄 알았건만, 나는 더 큰 압력을 마주하게 된다. ‘졸업=취업’이란 공식은 나 자신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숨통을 조이는 장본인이다.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에 있는 동안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28살에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던 친구를 만났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들은 많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 친구는 자신이 이 나이에도 여전히 학교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했다. 주변 친구들도 이를 이상하게 보거나 왜 아직도 학교에 있냐는 걱정스러운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만약 이 친구와 같은 처지 였다면 늦게까지 학교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했을 테고,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나이의 흐름에 따라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내가 그 친구의 상황이라면 당당하지 못할 것이라 느낀 건 나의 개인적 시각의 문제만이 아니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미취업자를, 취업하지 않은 졸업자를 마치 탈선한 기차처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졸업 예정자, 졸업자에게 묻는 각종 취업 질문을 혐오한다. 졸업 이후의 삶을 왜 취업이라는 길 하나로 한정 지으려 할까? 길은 다양하다.
내가 미래에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찾아나갈 수도 있고 굳이 취업이 아니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학교생활과 별개로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람들 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은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졸업 이후의 삶을 취업으로만 한정 짓는 각종 취업 질문을 잠시 내려놔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 대신 ‘앞으로 뭘 하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어떨까. 우리도 다른 인사 좀 듣고 싶단 말입니다!
Writer 김다희 dahee2828@naver.com 졸업예정자와 졸업자에게 묻는 각종 질문을 혐오합니다.
#20's voice#취업#커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