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소개팅 주선자가 원망스러운 순간들 5
매번 이럴 거면 아예 소개시켜주질 말든가!
대학 시절 나의 소개팅 성공률은 0%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탓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야, 완전 니 스타일이야!"라고 하는 주선자로부터 내 스타일인 사람을 소개받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상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주선자들의 남다른 안목과 독특한 상황 대처법 덕에 소개팅은 만신창이가 됐고, 나는 울화통이 터졌다. 그들의 미덕은 자고로 '낄끼빠빠'지만, 과유불급으로 우리를 당황케 할 때가 있다. 에디터가 이런 주선자들의 만행을 전부 모아 봤다.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더니, 넌 날 잘 모르는구나?

소개팅을 받는 이유는 두 가지다. 당신이 간절해서(?) 주선자를 졸랐거나, 반대로 당신의 소개팅 상대가 주선자를 졸랐거나. 마음 맞는 외로운 영혼을 이어주는 게 이상적이지만, 이미 한쪽에게 부탁을 받은 이상 주선자는 괜찮은 사람을 찾기 시작할 거다.
자, 그리고 그 사람이 당신이다. "괜찮은 사람 있는데, 한 번 만나봐"라며 결혼적령기 남녀를 중매 서듯 당신을 살살 꼬드긴다. 이 때 단골 멘트는 다음과 같다. "너랑 엄청 잘 맞을 것 같다". 혹은 "누구랑도 성격이 잘 맞을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많은 경우 실패했다. 왜냐면 정말 누구랑도 잘 어울려서 나는 딱히 어울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야, 그냥 심심한 사람이었잖아. 주선자 단골 멘트인 '서로 잘 맞을 것 같다'는 거의 아무말 대잔치, 혹은 억지 명분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소개팅 장소에서 상대를 봤을 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나는 학벌을 안 보는데 명문대생이고, 키도 안 보는데 키가 배구선수 같았다.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귀여운 외모와 유머러스함은 집에 두고 시크함만 들고 왔다. 이럴 땐 주선자 놈도 나를 잘 모르는구나 싶은 확신이 든다. 그렇게 이상형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도 여지껏 모르다니!
난감한 주선자 대처법
1. 니가 나를 모르는데, 좋은 상대를 알겠느냐. 안 친한 친구가 제안하는 소개팅을 조심하라. 주선자가 당신과 안 친할수록 실패 가능성이 높고, 아마 소개팅 상대도 주선자랑 별로 안 친할 거다. 그냥 보이는 대로 이어주는 거다.
2. "너랑 진짜 잘 맞을 듯"이라고 장담한다면, 뭐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꼭 확인해라. 생각보다 당신을 잘못 생각하고 있을 때가 많다.
애프터까지 했는데 왜 어학연수를 가니

친구 얘기다. 외로움에 사무쳐 하루하루 살아가던 친구는 회사 동기에게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졸랐는데, 귀찮아 하던 동기녀석이 왠일로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의 번호를 넘겼다. 개성이 넘치지만 스타일리시하고 깔끔한 외모까지. 심지어 예술을 전공하고 유학을 간 해외파 출신이었다. 마음에 쏙 들었던 것.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는데, 소개팅 당일 만난 그 사람은 아직 미국 대학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이었다. 방학 기간을 빌려 잠시 모국에 놀러 나왔던 것.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리 쉽게 식던가. 첫 눈에 서로 푹 빠져버린 그들은 결국 사귄 지 3주 만에 장거리를 시작했다.
이렇게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대를 소개해 주는 몹쓸 주선자들이 있다. 사실 저 얘기 속 주선자는 나였다. 미안. 하지만 소개팅을 요청하는 친구들이 '외로우니 정말 아무나 해 달라'는 요구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사실 별 생각 없이 아무나 소개시켜 준다. 그 리스트엔 종종 휴가 나온 군인도 있었다.
어쨌든 답례로 나 역시 그 친구에게 소개팅을 받았다. 느낌이 좋아서 애프터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곧 어학연수를 가게 됐다"는 통보를 받고 무너지고 말았다. 복수였나... 음, 물론 정말 어학연수를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난감한 주선자 대처법
1. 책임질 수 있다면 만나고, 만나기 시작했다면 주선자를 원망하지 마라. 주변에서 '휴가 나온 군인(일병)'을 소개받아서 실제로 사귄 친구를 본 적 있는데, 결국 제대까지 참지 못하고 헤어졌다. 당연히 주선자를 원망할 수 있을리가...
2. '애인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사람'을 주의하라. 공허함을 채우려고 소개팅을 받는 경우가 많아 애프터까지 하고 썸까지 타 놓고 전 남친/여친에게 돌아가는 케이스 많이 봤다.
대체 너는 나에 대해 어디까지 얘기한거야

소개팅 건으로 주선자를 가운데에 두고 초반 줄다리기를 할 때가 있다. 바로 상대에게 자기 정보를 전달하는 시기다. 키가 몇이라든가, 사는 곳이 어디라든가. 하는 사소한 정보들을 주고받는 시기.
그런데 가끔 실제로 만났더니 상대가 생각보다 예쁘고, 생각보다 성격도 좋고, 생각보다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놀랄 때가 있다. 다짜고짜 "3년 사귄 여자친구분이랑 올 3월 쯤 헤어지셨다면서요?"라고 얘기를 하더라고. 누가 얘기했냐. 누구긴 누구야 주선자지...
아무리 상대가 호감을 갖고 나를 대할지언정, 과거사나 단점을 오픈하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만약 눈이 맞아 사귀게 되더라도 이런 과거사들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 입으로 말한 것도 아닌데 주선자가 대신 떠벌린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주는 것이 주선자의 미덕이거늘, "그 사람 모쏠은 아니지?" 라고 묻는 소개팅녀의 말에 "아니야. 고등학교 때 내가 아는 애만 해도 이미 6명은 만났어" 라고 사족을 붙이는 눈치 없는 친구들이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그냥 눈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막상 소개팅 자리에서 별여 별 얘기를 다 들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이럴 때 서먹한 분위기를 정화한답시고 아무 얘기나 하다 더 치명적인 얘기를 자기 입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침착하도록.
난감한 주선자 대처법
1. 자리에 주선자놈이 같이 나올 예정이라면 더 위험하다. 위험 발언이 라이브 실황으로 빵빵 터진다. 그러니 반드시 사전에 입막음을 하도록.
2. 적절한 개인정보 노출은 호감을 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당신이 생각했을 때 '반전 매력'이라 어필할 만한 사생활(실은 밴드 보컬, 실은 재벌...)은 노출해도 괜찮다. 다만 과거 연애사 공개는 절대 비추한다.
나만 모르는 얘기는 나 없는데서 하면 안 될까?

낯을 많이 가리는 소개팅 상대의 요청으로 주선자가 함께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느 순간부터 대화에 잘 섞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알고 보니 언제부턴가 수업 얘기, 학교 얘기, 교수님 얘기만 주구장창 하고 있었기 때문.
주선자 위주로 분위기가 돌아가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인데, 소개팅 상대 혹은 당신을 배려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주선자의 의도 때문이거나, 그냥 주선자 지가 심심해서혼자 신났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그래도 여기 말 걸었다 저기 말 걸었다 하며 대화의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라도 하는데, 후자는 답이 없다. 술 얻어먹고 집에 가는 게 목표. 반대로 이런 분위기는 소개팅 상대의 심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개팅 상대는 나인데 정작 그 혹은 그녀가 주선자랑만 떠들고 있다면 당신에 대한 호감이 낮아서 딱히 얘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망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다.
가끔 주선자가 2인 이상일 때, 내 쪽 주선자가 소개팅 상대를 채가는 망할 경우도 있다고 한다. 즉, 내 동성 친구의 이성 친구가 소개시켜주는 '다리 건너 소개팅'일 경우, 주선자가 소개팅녀에게 반해 나를 버려 두고 혼자 열심히 떠들었다는 매우 네X트 판 스러운 경험담도 있었다.
난감한 주선자 대처법
1. 당신 밥그릇은 당신이 챙겨라. 사실 소개팅 주선자가 대화까지 이끌어 주길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다. 반대로 당신이 제대로 못 챙기고 있기 때문에 주선자가 남아있다고 생각해라.
2. 다대 다, 혹은 주선자가 함께 있는 정신없는 자리에서도 소개팅 상대를 챙겨라. 나머지는 어차피 들러ㄹ...아니 언제든 만날 사람들이고, 알아서 분위기 주도를 잘 하면 주선자도 타이밍 보고 빠진다.
지금 님 연애게임 하시나요?

주선 단계에서 서로 잘 안 맞는 사람을 소개해 시작부터 실패를 부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성공할 뻔한 소개팅도 망하게 하는 게 주선자의 능력이다. 마치 중매쟁이처럼 어떻게든 엮으려고 하는 오지라퍼형 주선자 얘기다.
크게 주선자 독단으로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있고, 어느 한 쪽의 사주로 균형을 잃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 두 남녀가 딱히 서로 마음에 없음에도 주선자에 의해 '더 만나볼 것'을 강요받는다. 어떤 심리인지 알 수 없으나, '얘는 쟤랑 꼭 이어졌으면 좋겠어'라는 자기 만족에 가깝다. 나중에 '듀O'나 '가O' 같은 결혼정보회사에 취직하는 게 적성에 맞을 듯. 순정만화를 보면서 커플링을 기대하는 심리랄까.
후자는 "나 저 사람이 마음에 드니까 소개팅을 시켜 달라"고 한 쪽이 부탁해서 주선자 역할을 했는데, 그 정도가 선을 넘은 경우다. 왠지 모를 사명감에 불타 너무 티 나게 커플링을 주도한다. 이렇게 정도가 심하다 보면 부담이 커져 될 것도 잘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전에 고학번 선배에게 관심 있는 신입생 후배를 소개해 달라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다짜고짜 그 친구에게 더블 데이트를 하자고 하질 않나, 이 친구(나)같은 헤어스타일이 니 스타일 아니냐, 너가 잘 모르지만 이 친구에겐 터지는 매력이 있다며 온갖 티를 내는 바람에 되려 어색해진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 친구에게 솔직한 얘기를 들었더니 너무 부담스러워서 내게 갖고 있던 좋은 감정마저도 식었다고. 연애는 우리가 할 테니까 그냥 적절히 빠져 주시지 그랬어요...
난감한 주선자 대처법
1. 소개팅 이후에는 주도권을 뺏어 와라. 아마 주선자는 끝까지 둘 사이에 어떤 감정이 오가는지 체크를 하며 오지랖을 떨 거다. 잘 되면 자기 덕, 안 되면 너네 탓이니 그냥 주선자를 제외하고 둘이 알아서 해라.
2. 애매하게 굴지 마라. 상대에 대한 호불호가 애매해서 주선자가 더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영 아니다 싶으면 "죄송하지만 그 분은 제 스타일이 아니예요"라고 돌직구를 던져 주자. 더 이상 귀찮게 못 할 거다.
#낄끼빠빠#대학생#미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