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봉준호 정주행] #2. 지적 영화 감상을 위한 봉준호 잡학사전 A to Z
그냥 지나쳤던 영화 속 장면이 새롭게 보일지도 모른다.
<플란다스의 개>부터 <옥자>까지, 주옥같은 영화 다섯 편을 만드는 동안 봉준호를 둘러싼 이야깃거리가 풍성하게 쌓였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기억할 만한 키워드를 뽑아 잡학사전을 만들었다. 이걸 읽고 나면 그냥 지나쳤던 영화 속 장면이 새롭게 보일지도 모른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 고정픽
<프로듀스 101>의 ‘최애’처럼 봉준호가 고정적으로 선택하는 배우.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 김뢰하, 고아성…. <마더>는 처음으로 변희봉, 김뢰하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였다. 변희봉은 <괴물> 다음 영화가 <마더>라고 했더니 “그럼 남편이 있겠네?”라며 출연을 기대했다. 주인공이 과부라고 하자 “좋다고 쫓아다니는 영감이 있지 않겠어?”라는 농담도 했다. 그래서 봉 감독은 변희봉과 김뢰하를 <마더> 시사회에 초대할 때 어색했다고 한다. 이에 김뢰하 왈, “그러게 인마 왜 그랬어.”
㉡ 넷플릭스
<옥자>의 배급사이자 투자자. 봉 감독이 넷플릭스를 택한 이유는 일단 500억이 넘는 제작비 때문이다. 한국영화산업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옥자>에 거액이 투자되면 다른 한국영화 10편이 스톱되는 셈이다. <설국열차> 때도 “민폐 말고 미국 가서 하라”는 농담 섞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넷플릭스는 거액을 투자하면서도 감독의 편집권을 보장해줬다. 그런데 CGV 등 3대 멀티플렉스는 <옥자>가 넷플릭스에 공개될 경우, 극장 상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관객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 노란문
봉준호가 대학 시절 몸담았던 영화동아리. 본인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 시기다. 시나리오, 연출, 비평 분과로 나눠 활동했는데 봉 감독은 역시 연출. “다음 주 주제는 ‘살인’이야” 그러면 수많은 영화들의 살인 장면을 모아 보면서 비교 분석하는 식이었다. <살인의 추억>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 다이빙벨
봉준호는 사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해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 벨>을 상영하지 말라고 한 조처는 평양냉면 집에 가서 육수 빼고 달라는 것과 같다”는 말을 비롯해서 여러 개가 있다. 미국이 사랑하는 감독이지만 국내에서는 ‘반미 감독’이라 불리기도.
㉢ 도쿄! 미셸 공드리, 레오스 카락스와 함께 만든 옴니버스 영화.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는 히키코모리가 피자 배달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이야기다. 혼자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모든 게 가능한 시대에 ‘서로를 만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 박지성
봉준호가 생각하는 자신의 라이벌. “잡생각 없이 자기 일 잘하는 것 같다. 인터뷰할 때 차분하게 경기를 돌아본 뒤 ‘인터뷰할 시간에 공이라도 한 번 더 차련다’라는 느낌으로 쿨하게 떠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고.
㉥ 봉테일
가장 널리 알려진 봉준호의 별명. 꼼꼼하고 집요하게 한 장면 한 장면의 디테일까지 포착해내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 때 류성희 미술감독은 봉준호가 스타킹에 들어가는 돌들의 크기나 형태를 일일이 하나하나 다 계산하고 있는 걸 보고 ‘혹시 실제로 이런 일을 벌여본 적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싫어한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뭔가 쪼잔한 사람 같은 느낌이라서. 둘째, 본인의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엉뚱한 지점이 있고 그걸로 평가 받고 싶은데 관객들이 ‘봉테일’에 집착하게 되면 얼마나 정교하게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가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 삑사리 <살인의 추억>에서는 논두렁에서 미끄러지고, <괴물>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화염병을 떨어뜨린다. 유독 봉준호 영화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삐끗하는 장면이 많다. 프랑스 영화잡지 「까이에 뒤 시네마」 기자들이 이것에 대해 묻자 봉준호는 농담 삼아 ‘삑사리’라 표현했다. 기자들은 ‘삑사리’를 그의 예술적 화두로 보고 ‘art of piksari’로 기사 제목을 뽑았다. 봉준호는 이걸 볼 때마다 민망하면서도 재밌어한다. 이것 역시 하나의 ‘삑사리’, 삑사리의 예술이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국어 시간에 ‘의식의 흐름’ 기법과 함께 배웠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기억하는가? 봉준호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그 ‘구보 씨’, 월북 작가 박태원이다. 아버지도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고, 어머니도 예술하신 분. 다들 잘났다.
㉦ 송강호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등 봉 감독의 장편영화 5편 중 3편에서 주연을 맡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둘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냥 알아서 한다. 서로를 믿고 지켜보면서, 마음 가는 대로 그들은 함께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봉준호는 야생마 같은 배우 송강호와 작업할 때 그가 마음껏 자기 연기를 펼칠 수 있게 풀어놓는다. 송강호는 봉준호와의 작업을 ‘오아시스’처럼 여긴다. 고수는 서로를 알아보는 법.
㉦ 슬레이트
어느 장면인지, 몇 번째 테이크인지 구분하기 위해 짝 소리를 내는 것. 주로 조연출의 몫이다. 봉준호가 1995년 처음 연출부로 합류했을 때, 슬레이트 치는 것을 집에서 수없이 연습했다. 그러나 생애 첫 슬레이트를 치는 감격적인 순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새끼손가락이 끼어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당시 녹음기사는 “너는 무슨 슬레이트 치는 것도 NG를 내냐”고 했단다. 가혹한 충무로 신고식이었다.
㉧ 안서현
<옥자>에서 주연 ‘미자’를 연기한 배우. 봉준호는 안서현에 대해 “상당 부분 준비된 배우였다. 스스로 작품을 철저히 분석해 와서 내가 덧붙이거나 따로 설명할 말이 없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국 「가디언」 역시 “에너제틱한 연기를 선보인 안서현이야말로 ‘<옥자>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라고 극찬했다.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등 해외 배우들도 안서현이 연기한 ‘미자’를 영화의 핵심으로 꼽았다. 아마도 봉준호의 ‘고정픽’에 한 명 더 추가될 듯.
㉧ 외로운 가로등 봉준호가 연출한 뮤직비디오. 2003년 발매된 한영애의 신보를 색다르게 홍보해보자는 생각에서 기획되었다. 마침 관계자와 봉 감독이 영화아카데미 선후배 사이라 거짓말처럼 성사된 케이스. 류승범과 강혜정이 출연했다. 누군가 한 명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의외로 ‘외로운 두 남녀가 만난다’가 스토리의 전부였다.
㉧ 우울한 편지
<살인의 추억>에 삽입된 노래. 노래 제목처럼 그는 주로 공포나 서스펜스처럼 어두운 장르를 좋아한다. 실생활에서도 긍정적인 음악이나 서로가 서로를 축하하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다고. 오히려 우울한 구석이 있을 때 마음이 편해진다.
㉨ 작명가
영화감독은 누구나 작명가가 된다. 캐릭터에 이름을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서울에서 온 형사 서태윤(김상경)은 서태지에서 따왔다. 최신 트렌드에 맞게 과학 수사를 주장하는 특징과 서태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직감을 믿는 아날로그 형사 박두만(송강호)은 ‘만두’를 거꾸로 한 이름이다. 문득 그가 아들 이름을 어떻게 지었을지 궁금해진다.
㉨ 지리멸렬
봉준호가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 남의 집 문 앞에 놓인 우유를 훔쳐 먹는 신문사 논설위원, 술 취해 몰래 노상방뇨를 하는 엘리트 검사, 야한 잡지를 보다가 여학생에게 들킬 뻔한 교수까지 세 사람이 TV 토론에 함께 출연해 사회문제에 대한 대담을 나누는 것이 스토리의 얼개다. 얄궂은 이 영화를 통해 박찬욱, 류승완, 임순례, 이준익 등과 면을 텄다.
㉬ 파파미 ‘파도 파도 미담’의 준말. 봉준호 감독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부랑자 역할로 배우 김뢰하를 캐스팅 했을 때, 봉 감독은 계속 미안해했다고 한다. 김뢰하는 “감독이 캐스팅 하면서 배우한테 미안해하는 거 처음 봤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송강호는 <모텔 선인장> 캐스팅 미팅 때 조감독이었던 봉준호를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캐스팅이 불발될 경우 연극배우들에게 통보전화 한 통 하지 않던 영화계 관행이 불만이었다. 그런데 봉준호만은 정성과 진심이 느껴지는 긴 녹음 메시지를 삐삐에 남겼다고. 송강호는 이후 <살인의 추억> 때 초짜 감독이었던 봉준호의 출연 제의를 단박에 수락했다.
㉭ 한양툰크
홍대 근처에 위치한 봉준호의 단골 만화 서점.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가는 곳이다. 우연히 이곳에서 만화 『설국열차』를 발견하고 선 채로 다 읽었다. 이것이 영화 <설국열차>의 시작이었다.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쓰다 막혔을 때도, 영국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다룬 만화 『프롬 헬』을 읽고 나서 실마리가 풀렸다고 한다. 그에게 만화는 힘들 때 숨통을 틔워주는 환기창. 대학 시절에 학보 「연세춘추」에 만평 ‘연돌이와 세순이’를 연재하기도 했다.
㉭ 홍경표
<마더>와 <설국열차>에 참여한 촬영감독. 둘 다 집착이 강해서 잘 맞는다. 촬영 현장에서는 감독과 촬영감독이 현장의 모든 것을 규정짓고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부 관계로 규정되곤 한다. 그런데 홍경표가 나홍진 감독과 <곡성>을 찍고 봉준호는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와 <옥자>를 찍었으니 지금은 별거 중이라 해야 할까.
ⓣ TV동물농장
봉준호 감독이 공중파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보는 TV 프로그램. 돼지가 주인공인 <옥자>를 만들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동물농장> 제작진을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오랫동안 일관된 방향과 관점을 갖고 다룬다”고 호평했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한 그는 지금도 ‘쭈니’라는 이름의 개와 함께 산다.
<프로듀스 101>의 ‘최애’처럼 봉준호가 고정적으로 선택하는 배우.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 김뢰하, 고아성…. <마더>는 처음으로 변희봉, 김뢰하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였다. 변희봉은 <괴물> 다음 영화가 <마더>라고 했더니 “그럼 남편이 있겠네?”라며 출연을 기대했다. 주인공이 과부라고 하자 “좋다고 쫓아다니는 영감이 있지 않겠어?”라는 농담도 했다. 그래서 봉 감독은 변희봉과 김뢰하를 <마더> 시사회에 초대할 때 어색했다고 한다. 이에 김뢰하 왈, “그러게 인마 왜 그랬어.”

㉡ 넷플릭스
<옥자>의 배급사이자 투자자. 봉 감독이 넷플릭스를 택한 이유는 일단 500억이 넘는 제작비 때문이다. 한국영화산업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옥자>에 거액이 투자되면 다른 한국영화 10편이 스톱되는 셈이다. <설국열차> 때도 “민폐 말고 미국 가서 하라”는 농담 섞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넷플릭스는 거액을 투자하면서도 감독의 편집권을 보장해줬다. 그런데 CGV 등 3대 멀티플렉스는 <옥자>가 넷플릭스에 공개될 경우, 극장 상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관객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 노란문
봉준호가 대학 시절 몸담았던 영화동아리. 본인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 시기다. 시나리오, 연출, 비평 분과로 나눠 활동했는데 봉 감독은 역시 연출. “다음 주 주제는 ‘살인’이야” 그러면 수많은 영화들의 살인 장면을 모아 보면서 비교 분석하는 식이었다. <살인의 추억>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 다이빙벨
봉준호는 사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해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 벨>을 상영하지 말라고 한 조처는 평양냉면 집에 가서 육수 빼고 달라는 것과 같다”는 말을 비롯해서 여러 개가 있다. 미국이 사랑하는 감독이지만 국내에서는 ‘반미 감독’이라 불리기도.
㉢ 도쿄! 미셸 공드리, 레오스 카락스와 함께 만든 옴니버스 영화.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는 히키코모리가 피자 배달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이야기다. 혼자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모든 게 가능한 시대에 ‘서로를 만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 박지성
봉준호가 생각하는 자신의 라이벌. “잡생각 없이 자기 일 잘하는 것 같다. 인터뷰할 때 차분하게 경기를 돌아본 뒤 ‘인터뷰할 시간에 공이라도 한 번 더 차련다’라는 느낌으로 쿨하게 떠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고.
㉥ 봉테일
가장 널리 알려진 봉준호의 별명. 꼼꼼하고 집요하게 한 장면 한 장면의 디테일까지 포착해내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 때 류성희 미술감독은 봉준호가 스타킹에 들어가는 돌들의 크기나 형태를 일일이 하나하나 다 계산하고 있는 걸 보고 ‘혹시 실제로 이런 일을 벌여본 적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싫어한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뭔가 쪼잔한 사람 같은 느낌이라서. 둘째, 본인의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엉뚱한 지점이 있고 그걸로 평가 받고 싶은데 관객들이 ‘봉테일’에 집착하게 되면 얼마나 정교하게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가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 삑사리 <살인의 추억>에서는 논두렁에서 미끄러지고, <괴물>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화염병을 떨어뜨린다. 유독 봉준호 영화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삐끗하는 장면이 많다. 프랑스 영화잡지 「까이에 뒤 시네마」 기자들이 이것에 대해 묻자 봉준호는 농담 삼아 ‘삑사리’라 표현했다. 기자들은 ‘삑사리’를 그의 예술적 화두로 보고 ‘art of piksari’로 기사 제목을 뽑았다. 봉준호는 이걸 볼 때마다 민망하면서도 재밌어한다. 이것 역시 하나의 ‘삑사리’, 삑사리의 예술이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국어 시간에 ‘의식의 흐름’ 기법과 함께 배웠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기억하는가? 봉준호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그 ‘구보 씨’, 월북 작가 박태원이다. 아버지도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고, 어머니도 예술하신 분. 다들 잘났다.

㉦ 송강호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등 봉 감독의 장편영화 5편 중 3편에서 주연을 맡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둘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냥 알아서 한다. 서로를 믿고 지켜보면서, 마음 가는 대로 그들은 함께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봉준호는 야생마 같은 배우 송강호와 작업할 때 그가 마음껏 자기 연기를 펼칠 수 있게 풀어놓는다. 송강호는 봉준호와의 작업을 ‘오아시스’처럼 여긴다. 고수는 서로를 알아보는 법.

㉦ 슬레이트
어느 장면인지, 몇 번째 테이크인지 구분하기 위해 짝 소리를 내는 것. 주로 조연출의 몫이다. 봉준호가 1995년 처음 연출부로 합류했을 때, 슬레이트 치는 것을 집에서 수없이 연습했다. 그러나 생애 첫 슬레이트를 치는 감격적인 순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새끼손가락이 끼어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당시 녹음기사는 “너는 무슨 슬레이트 치는 것도 NG를 내냐”고 했단다. 가혹한 충무로 신고식이었다.

㉧ 안서현
<옥자>에서 주연 ‘미자’를 연기한 배우. 봉준호는 안서현에 대해 “상당 부분 준비된 배우였다. 스스로 작품을 철저히 분석해 와서 내가 덧붙이거나 따로 설명할 말이 없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국 「가디언」 역시 “에너제틱한 연기를 선보인 안서현이야말로 ‘<옥자>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라고 극찬했다.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등 해외 배우들도 안서현이 연기한 ‘미자’를 영화의 핵심으로 꼽았다. 아마도 봉준호의 ‘고정픽’에 한 명 더 추가될 듯.
㉧ 외로운 가로등 봉준호가 연출한 뮤직비디오. 2003년 발매된 한영애의 신보를 색다르게 홍보해보자는 생각에서 기획되었다. 마침 관계자와 봉 감독이 영화아카데미 선후배 사이라 거짓말처럼 성사된 케이스. 류승범과 강혜정이 출연했다. 누군가 한 명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의외로 ‘외로운 두 남녀가 만난다’가 스토리의 전부였다.

<살인의 추억>에 삽입된 노래. 노래 제목처럼 그는 주로 공포나 서스펜스처럼 어두운 장르를 좋아한다. 실생활에서도 긍정적인 음악이나 서로가 서로를 축하하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다고. 오히려 우울한 구석이 있을 때 마음이 편해진다.
㉨ 작명가
영화감독은 누구나 작명가가 된다. 캐릭터에 이름을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서울에서 온 형사 서태윤(김상경)은 서태지에서 따왔다. 최신 트렌드에 맞게 과학 수사를 주장하는 특징과 서태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직감을 믿는 아날로그 형사 박두만(송강호)은 ‘만두’를 거꾸로 한 이름이다. 문득 그가 아들 이름을 어떻게 지었을지 궁금해진다.

㉨ 지리멸렬
봉준호가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 남의 집 문 앞에 놓인 우유를 훔쳐 먹는 신문사 논설위원, 술 취해 몰래 노상방뇨를 하는 엘리트 검사, 야한 잡지를 보다가 여학생에게 들킬 뻔한 교수까지 세 사람이 TV 토론에 함께 출연해 사회문제에 대한 대담을 나누는 것이 스토리의 얼개다. 얄궂은 이 영화를 통해 박찬욱, 류승완, 임순례, 이준익 등과 면을 텄다.
㉬ 파파미 ‘파도 파도 미담’의 준말. 봉준호 감독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부랑자 역할로 배우 김뢰하를 캐스팅 했을 때, 봉 감독은 계속 미안해했다고 한다. 김뢰하는 “감독이 캐스팅 하면서 배우한테 미안해하는 거 처음 봤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송강호는 <모텔 선인장> 캐스팅 미팅 때 조감독이었던 봉준호를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캐스팅이 불발될 경우 연극배우들에게 통보전화 한 통 하지 않던 영화계 관행이 불만이었다. 그런데 봉준호만은 정성과 진심이 느껴지는 긴 녹음 메시지를 삐삐에 남겼다고. 송강호는 이후 <살인의 추억> 때 초짜 감독이었던 봉준호의 출연 제의를 단박에 수락했다.
㉭ 한양툰크
홍대 근처에 위치한 봉준호의 단골 만화 서점.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가는 곳이다. 우연히 이곳에서 만화 『설국열차』를 발견하고 선 채로 다 읽었다. 이것이 영화 <설국열차>의 시작이었다.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쓰다 막혔을 때도, 영국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다룬 만화 『프롬 헬』을 읽고 나서 실마리가 풀렸다고 한다. 그에게 만화는 힘들 때 숨통을 틔워주는 환기창. 대학 시절에 학보 「연세춘추」에 만평 ‘연돌이와 세순이’를 연재하기도 했다.
㉭ 홍경표
<마더>와 <설국열차>에 참여한 촬영감독. 둘 다 집착이 강해서 잘 맞는다. 촬영 현장에서는 감독과 촬영감독이 현장의 모든 것을 규정짓고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부 관계로 규정되곤 한다. 그런데 홍경표가 나홍진 감독과 <곡성>을 찍고 봉준호는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와 <옥자>를 찍었으니 지금은 별거 중이라 해야 할까.

ⓣ TV동물농장
봉준호 감독이 공중파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보는 TV 프로그램. 돼지가 주인공인 <옥자>를 만들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동물농장> 제작진을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오랫동안 일관된 방향과 관점을 갖고 다룬다”고 호평했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한 그는 지금도 ‘쭈니’라는 이름의 개와 함께 산다.
17년간 봉준호가 구축해온 세계를 한 장으로 압축!
기억이 새록새록 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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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호 - issue]
Illustrator 송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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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호#봉준호#송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