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비독립일기] -7화- 학교, 집, 알바 말고

언젠가는 독립일기가 아닌 자립일기를 쓸 수 있겠지.
주말이 되면 학교 갈 때 메는 가방을 그대로 들고 집을 나선다. 집을 떠나지 않으면 심신이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방 꼴이 이게 뭐니!”, “또 뭘 샀니!”, “가족끼리 왜 이리 데면데면하니!” 쉬는 날 가족들이 한집에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 주중에 밀린 말들을 듣게 되기 마련이다. 종종 언성이 높아지는 건 보너스. 그러므로 비독립인은 일단 집이 아닌 공간으로 몸을 피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 도착한 공간. 이곳에서는 날마다 다양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책을 읽으며 지적 허영을 부리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며, 그냥 과제를 하러 가는 날도 있다. 결정적으로 여름에는 에어컨과 시원한 물이 있고, 겨울에는 전기장판과 따뜻한 차가 있다. 뭐지, 이 지상 천국 같은 제3의 공간은?  

바로 청년협동조합이다. 생뚱맞게 웬 협동조합이냐고? 거창할 것 없다. 대학 진학과 상관없이 동네의 또래들이 모여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작된 공간이다. 함께 밥해 먹고, 떠들고, 책 읽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2년을 놀다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고, 몇 달 전에 청년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양을 갖추게 된 것 뿐이다.  

지금은 학교 안팎에서 만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잡지를 만들고 있다. 방학이면 각자가 가진 소소한 기술로 강좌를 열고, 지역의 필요한 곳에 일손을 보태기도 한다. 대선투표 날에는 개표 방송을 보며 파티를 벌였고, 성년의 날 의식을 기획하며 또 어떤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어본다.  
  
언젠가부터 ‘청년’이라는 키워드가 핫했다. 하지만 정작 내게 ‘청년’ 을 묻는다면 그저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청년인 당사자로서 내가 어떤 일을 꾸밀 수 있는지, 무엇을 얼마나 고민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고, 그 장이 이 청년협동조합이 되었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실행해볼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다음 달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그 이유는 아마 그 길이 나의 상상 이상이어서일 것이다.  

물론 이곳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돈을 벌지는 못한다. 노동 보다는 놀이에 가깝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조금씩 수익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학교와 사교 이외의 시간을 모두 돈 벌 수 있는 시간으로 환산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여러 조건들로 인해 당장의 독립은 힘들지 몰라도, 나는 조금씩 준비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든 공간에서, 재미있는 방식으로 독립을 넘어 자립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렇게 천천히 가다보면 언젠가는 독립일기가 아닌 자립일기를 쓸 수 있겠지.



Illustrator 남미가  
#독립일기#비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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