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아직도 우리에게 과분한 히어로
“원더우먼치고 가슴이 너무 작은 거 아냐?”

원더우먼
감독 패티 젠킨스 출연 갤 가돗, 크리스 파인, 데이빗 듈리스, 대니 휴스턴
다이애나(갤 가돗)는 여성들만 사는 아마존 왕국의 공주다. 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사가 되려 한다. 피나는 훈련을 받던 어느 날 바다에 불시착한 조종사 트레버 대위(크리스 파인)를 만난다. 태어나 처음 본 남자에 놀란 것도 잠시, 바다 건너에선 1차 세계대전이 벌어져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전쟁을 멈추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 다이애나는 트레버 대위와 함께 섬을 떠나기로 결심하는데….
히어로물은 대부분 남자판이다. 여성 캐릭터는 남성 히어로의 활약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보조 역할에 그치곤 한다. 여성 감독이 연출한 첫 여성 히어로물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운 이유다.
그런데 한 켠에선 여지없이 ‘후려치기’가 등장한다.
“원더우먼치고 가슴이 너무 작은 거 아냐?”
“슈퍼맨 없이 뭘 할 수 있겠어?”
.
물론 원더우먼은 들은 척도 안 할 것이다. 이미 예전부터 헛소리를 견뎌왔거든. 영화 속 대사처럼 원더우먼은
“그들에게 과분하다.”
시대를 앞서간 출생의 비밀


퀴즈! 원더우먼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스토리 속에서 정답을 찾자면 ‘없다’이다. 여자들만의 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윌리엄 마스턴’ 또한 정답이다. 그는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1910년대에 대학을 다닌 마스턴은 심리학을 전공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하라는 ‘서프러 제트’ 운동이 활발하던 때다. 변화는 문학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페미니즘 문학이 등장했다. 전쟁을 일삼는 남자들을 물리치고 평화롭게 무리를 이끄는 여자들이 주인공이 었다. 마스턴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시대 분위기는 30년 후 『원더우먼』의 밑바탕이 된다.
그럼, 원더우먼의 어머니는? 정답은 ‘히폴리테 여왕’이다. 그가 빚은 진흙 인형에 숨결을 불어넣어 원더우먼이 탄생했으니. 그런데 ‘세이디 할러웨이’ 또한 정답에 가깝다.
할러웨이는 14살 때 마스턴을 만나 평생을 함께 살며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는 여성들이 모든 면에서 남성과 평등하게 대우 받기를 꿈꿨고,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순간에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다만 할러웨이가 ‘어머니’라는 비유를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그에게 ‘모성’은 여성을 가정 안에 묶어두는 쇠사슬이다. 1910년대의 페미니즘은 여성이 출산 도구로 여겨지는 것을 경계했다. 영화에서도 이를 드러내는 장면이 짤막하게 나온다. 섹스를 하려면 남녀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트레버 대위의 말에 다이애나는 답한다. “아기를 낳으려면 남자가 필요하지만 쾌락을 위해서는 필요 없다던데?
더 크고 알록달록한 꿈을 꿀 수 있게


심리학자였던 마스턴이 뜬금없이 원더우먼의 아버지가 된 데에도 사연이 있다. 슈퍼맨, 배트맨 등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만화책은 194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누렸지만, 폭력을 정당화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공격도 받았다.
비판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마스턴은 ‘DC 출판사’에 자문 심리학자로 영입됐다. 그는 평소 만화 속 과도한 남성성이 독자를 불쾌하게 한다고 여겼다. 남자들의 룰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약자’라고 무시되어왔던 여성 캐릭터 대신 우월한 힘과 매력을 갖춘 ‘여성 히어로’가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원더우먼은 총을 쏘지 않고, 오히려 혐오한다. 그는 팔찌로 총알을 튕겨내며 외친다. “총알로 인류의 문제가 해결된 적은 없어!”
엄청난 신체 능력을 타고난 원더우먼에게도 약점이 있다. 팔찌에 쇠사슬이 걸리면 모든 힘을 잃는다. 남성 우위 사회에 억눌려 뜻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의 수많은 여성들처럼.
그러나 원더우먼은 결국 쇠사슬을 풀어내고, 거꾸로 황금 올가미로 적을 제압한다.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의 일자리 평등을 위한 보이콧·파업·정치 집회를 직접 조직하기도 했다. 이처럼 마스턴은 ‘강하고 자유롭고 용감한’ 여성의 새로 운 모델을 10대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머리 땋은 소녀가 『원더우먼』을 읽으며 어른이 되어 무슨 일을 할지 상상하는 광고는 마스턴의 소망 그대로였다. 좀 더 크고, 다양한 꿈을 꾸길 바라는.



심리학자였던 마스턴이 뜬금없이 원더우먼의 아버지가 된 데에도 사연이 있다. 슈퍼맨, 배트맨 등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만화책은 194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누렸지만, 폭력을 정당화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공격도 받았다.
비판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마스턴은 ‘DC 출판사’에 자문 심리학자로 영입됐다. 그는 평소 만화 속 과도한 남성성이 독자를 불쾌하게 한다고 여겼다. 남자들의 룰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약자’라고 무시되어왔던 여성 캐릭터 대신 우월한 힘과 매력을 갖춘 ‘여성 히어로’가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원더우먼은 총을 쏘지 않고, 오히려 혐오한다. 그는 팔찌로 총알을 튕겨내며 외친다. “총알로 인류의 문제가 해결된 적은 없어!”
엄청난 신체 능력을 타고난 원더우먼에게도 약점이 있다. 팔찌에 쇠사슬이 걸리면 모든 힘을 잃는다. 남성 우위 사회에 억눌려 뜻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의 수많은 여성들처럼.
그러나 원더우먼은 결국 쇠사슬을 풀어내고, 거꾸로 황금 올가미로 적을 제압한다.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의 일자리 평등을 위한 보이콧·파업·정치 집회를 직접 조직하기도 했다. 이처럼 마스턴은 ‘강하고 자유롭고 용감한’ 여성의 새로 운 모델을 10대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머리 땋은 소녀가 『원더우먼』을 읽으며 어른이 되어 무슨 일을 할지 상상하는 광고는 마스턴의 소망 그대로였다. 좀 더 크고, 다양한 꿈을 꾸길 바라는.
원더우먼도 '후려치기'는 피하지 못했다


원더우먼은 가장 사랑받는 히어로 중 하나였다. 언제나 표지에 등장했고 매호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DC 코믹스의 히어로 연맹 ‘저스티스 소사 이어티’에 원더우먼이 가입하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히어로 조직의 비서로 임명 되었다는 사실이다. 남성 히어로들이 현장으로 떠날 때 원더우먼은 본부에 남아 “행운을 빌어요” 같은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했다. DC 코믹스의 또 다른 작가 가드너 폭스의 소행이었다.
‘원더우먼’이 남성 히어로들을 제치고 활약하는 걸 견디지 못해서일까. 보수적인 성향의 작가들은 어떻게든 이 여성 히어로를 가정에 묶어두려 했다. 당시 언론에 실린 ‘슈퍼맨의 아내’라는 제목의 사설 일부다.
“경쾌한 손놀림으로 아이들에게 교복을 입히고 온 집안을 윤이 나게 청소한 다음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는 일을 하러 시내로 출근 할 것이다. (…) 그녀를 아내로 둔 남자는 행운아다. 그런데, 남자가 이런 페이스를 견딜 수 있겠는 가?” 원더우먼마저도 “여자 능력이 너무 좋으면 남자가 힘들어”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니. ‘후려 치기’는 시공간을 넘나든다.
1947년 마스턴이 암으로 사망한 뒤에도 『원더우먼』은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마스턴의 ‘원더우먼’과는 많이 달랐다. 강인한 느낌의 레드 부츠 대신 앙증맞은 노란 슬리퍼를 신고 트레버 대위의 품에 안긴 채 멍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원더우먼의 유일한 꿈은 트레버와의 결혼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의 미국 여성들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 이젠 너희가 필요 없으니 남자들 기죽이지 말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곳은 언제쯤 원더우먼에게 어울리는 세상이 될까.



원더우먼은 가장 사랑받는 히어로 중 하나였다. 언제나 표지에 등장했고 매호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DC 코믹스의 히어로 연맹 ‘저스티스 소사 이어티’에 원더우먼이 가입하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히어로 조직의 비서로 임명 되었다는 사실이다. 남성 히어로들이 현장으로 떠날 때 원더우먼은 본부에 남아 “행운을 빌어요” 같은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했다. DC 코믹스의 또 다른 작가 가드너 폭스의 소행이었다.
‘원더우먼’이 남성 히어로들을 제치고 활약하는 걸 견디지 못해서일까. 보수적인 성향의 작가들은 어떻게든 이 여성 히어로를 가정에 묶어두려 했다. 당시 언론에 실린 ‘슈퍼맨의 아내’라는 제목의 사설 일부다.
“경쾌한 손놀림으로 아이들에게 교복을 입히고 온 집안을 윤이 나게 청소한 다음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는 일을 하러 시내로 출근 할 것이다. (…) 그녀를 아내로 둔 남자는 행운아다. 그런데, 남자가 이런 페이스를 견딜 수 있겠는 가?” 원더우먼마저도 “여자 능력이 너무 좋으면 남자가 힘들어”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니. ‘후려 치기’는 시공간을 넘나든다.
1947년 마스턴이 암으로 사망한 뒤에도 『원더우먼』은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마스턴의 ‘원더우먼’과는 많이 달랐다. 강인한 느낌의 레드 부츠 대신 앙증맞은 노란 슬리퍼를 신고 트레버 대위의 품에 안긴 채 멍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원더우먼의 유일한 꿈은 트레버와의 결혼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의 미국 여성들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 이젠 너희가 필요 없으니 남자들 기죽이지 말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곳은 언제쯤 원더우먼에게 어울리는 세상이 될까.
─참고한 책들『원더우먼 허스토리』, 질 르포어, 윌북, 2017.
#영화#원더우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