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귀여운 트랜스 게이 김한울씨

서강대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들어야 하는 필수 강의가 있어요. 2박 3일 숙박하며 듣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인데, 수강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 해요. 하지만 제겐 숙박이 어려운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는 주민번호가 2로 시작하는 트랜스젠더 남자니까요. 인성교육 센터에 전화를 걸어 교수님과 통화했어요.
“저는 트랜스 남성입니다. 호적상에는 여성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저의 외형과 정체성은 여자라고 보기 어려워요.” 이렇게 말했더니 교수님은 실소를 터뜨렸어요. 막 웃으면서 “호적상으론 여자란 말이지?”라고 말하고는 “호적상 여자면 여자 방에서 자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그때부터 화가 났어요. 하지만 상대는 교수님이고 앞으로 4년 동안 만나야 할 사람이니까 조금 더 얘기했죠. “제가 남자인데 여자 방에서 자는 게 이상하고, 호적상 여자가 남자 방에서 자는 것도 이상하니까 통학이나 다른 조 치가 가능한지 여쭤보는 겁니다.”
이렇게 실랑이가 오가다가 결국은 “알겠으니까 일단 수강신청부터 해라”라는 말로 끝났어요. 하지만 그랬다가 여자 숙소로 배정되면 어떻게 할지, 어떤 대책 마련도 없이 통화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직원 모두에게 저의 정체성을 알려야 할까요?
사실 말 안 하고 넘어가거나 조용히 무시하면 그만이에요. 그러나 학교 성소수자협의회에 알렸던 이유는, 이런 일을 누군가가 또 겪지 않았으면 해서였어요. 성 정체성 때문에 부당한 일을 혼자 참고 견디거나, 학업에 지장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결국 센터로부터 사과를 받았어요. 센터는 사과문을 올렸고, e-클래스 공지사항에 명시하기로 했죠. 성 정체성이나 장애로 인해 숙박이 곤란할 경우, 언제든지 센터로 문의 전화를 달라고요. 센터에선 직접 저를 만나 사과하고 싶다고 알려왔어요. 사과를 받았고, 또 이 사건 이후에 규정도 추가되어서 뿌듯했습니다.

저는 귀여운 트랜스 게이, 그리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저는 남자를 좋아해요. 스스로 ‘트랜스 게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녀요. 호르몬 투여를 받고 있고 얼마 전엔 가슴 수술도 받아서, 요즘은 노브라의 시원함(!)을 한껏 누리고 있어요. 더울 때 웃통을 벗고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있어도 아무런 간섭이 없네요.
여자일 때는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자주 불렸다면, 지금은 “자네”나 “학생” 으로 불리고 있죠. 이제 좀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요. 스무 살 때 사진 보여드릴까요? 얼굴은 지금과 똑같지만, 그땐 머리를 기르고 다녔어요.
2년 전, 다른 대학에 다닐 땐 여대생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남자애들이 저를 여자로 대하거나 좋아할 때 기분이 이상했어요. 이 사람에게 솔직해질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거든요. 이 사람이 보는 나는 진짜가 아니고, 진정한 나의 역사를 모를 테니까요. 그런 식으로 사랑 받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아요.
주위 사람들은 제가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을 거예요. 저도 저를 잘 몰랐고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굳이 성별에 관해 깊이 생각하며 살지 않았어요. 평소에 ‘난 여자야, 여자다!’ 이렇게 인식할 일이 별로 없었죠. 그런데 대학에 들어오니까 모두가 저를 대할 때 이성애자 이면서 여성이라는 사실에 집중하는 것 같았어요.
예를 들면 음악이나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얘기를 할 때, “여자애가 이런 것도 알아?”라고 말하는 거죠. 한번은 다 같이 밥을 먹는데, 자칭 페미니스트 남자 교수님이 저를 보며 “여자애가 콩나물 국밥도 먹어?” 라며 놀라기도 하고.
그리고 남자들이 자꾸 저를 지켜주려고 해요.(웃음) 환한 대낮인데도 집까지 데려다주려 하고요. 사실 자기나 나나 도긴개긴이잖아요. 만약 누가 덮치면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인데 왜 그러실까…?
내가 여성이어서 이런 대우를 하는 건가 싶었죠. 제가 느꼈던 불편함들은, 사실 이성애자 여성이어도 화날 일들이었어요. 결국 제가 저의 정체성을 깨달아가고 몸을 바꾸기로 결심했던 계기가 됐어요. 저는 남자일 때, 그리고 남자와 사랑을 주고받을 때 행복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전 귀여운 트랜스 게이 호모인 동시에, 여성의 고충도 잘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는 여전해요. 성소수자 대자보와 현수막을 교수가 찢고, 학교 커뮤니티에선 혐오할 권리를 말하고 있죠. 수업에서 마주칠지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니까 진짜 체감이 됐어요.
이번에 제가 겪은 사건은 기사로도 많이 떴기에 댓글을 쭉 봤는데, “달았으면 남자고 안 달았으면 여자”라는 댓글이 압도적이더라고요. 하지만 성기 수술을 한 다음부터 성별이 바뀐다는 생각이 웃기잖아요. 수술 직후 1분 뒤에는 성별이 바뀌게 되나요? 애초에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고, 우리나라에선 성소수자의 삶이 지워져왔구나 싶었어요.
예전엔 이 나라에서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에 영어공부를 진짜 빡세게 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모이는 지지 모임에 가봤어요. 그게 큰 힘이 되었죠.
트랜스젠더이기에 겪는 무형의 공포에 시달리고, 예측이 안 되는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암담했는데,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적이었어요. 저는 누가 뭐라든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끝까지 싸우면서 죽지 않고 잘 살아갈 거예요. ‘
귀여운 트랜스 게이’라고 밝힌 김한울씨와의 인터뷰를 옮겼습니다.
Illustrator 남미가 Interviewee 김한울
#트랜스게이#김한울#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