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나의 거지 같은 기숙사 룸메.ssul

함께해서 더러웠고, 두 번 다시 마주치지 말자...
고등학생 때만 해도 대학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구열 불타는 대학생들,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친구들, 선배와의 썸, CC.... 그리고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가 될 것만 같은 기숙사 룸메이트!   

물론 대학생이 되자마자 깨달았지. 그 모든 것은 한낱 로망이었을 뿐이라고. 꿈꿔왔던 캠퍼스 낭만은 그렇다 치고, 기숙사 룸메와 소울메이트가 되려 했다니.... 생각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던 한 학기였지... 물론, 간혹 절친이 되는 룸메들도 있었어. 하지만 만약 기숙사에 발을 들이는 과거의 나를 본다면 전해주고 싶어.  

"겟 아웃... 겟 아웃...!!!"

 

1. 진정한 돼지우리를 보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만 해도 난 내가 제일 더러운 줄 알았어. 엄마가 틈만 나면 "방이 돼지우리냐, 돼지가 언니라 부르겠다"며 잔소리를 하셨으니까. 그런데 웬걸, 기숙사에 와서 비로소 진짜를 만났지 뭐야.  

알다시피 기숙사는 공간이 그리 넓지 않잖아. 그런데 룸메 한 명이 마치 방 전체를 제집처럼 사용하더라고. 여기저기 물건을 늘어놓고, 냉장고에는 한 모금 마시고 남은 음료들이 가득하고, 쓰레기를 한 곳에 두면 그곳이 그대로 랜드마크가 되어버리는 마법을 볼 수 있었지. 개강날부터 책상 위에 있던 커피 컵이 종강 할때까지 그대로 있더라니까.   

대박사건은 따로 있었어. 내가 살던 곳은 2층 침대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구조였거든. 어느 날 누워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야. 원인을 찾으려고 온 방을 살펴보다가 기절하는 줄. 글쎄 침대와 침대 틈 사이에 케케묵은 빨래가 수북이 쌓여있더라고.   

옷 정리도, 빨래도 그저 귀찮았던건지.... 옷을 벗고는 침대 틈으로 하나 하나 끼워놨던거야. 문제는 그사이에 일반 옷은 물론 속옷도 가득했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그 친구는 퇴실하는 그 순간까지도 빨래를 치우지 않았어...ㅎ  

2. 일찍 일어나는 룸메가 알람을 끈다


 
대학생이 된 후 가장 즐거웠던 것 중 하나를 꼽자면,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등교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짠 수업 시간에 맞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게 얼마나 꿈만 같던지. 아, 비로소 대학생이구나 실감할 수 있었지.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어.  

룸메 한 명이 유독 부지런한 친구였는지, 매일 오전 9시 수업을 신청했나 보더라고. 그래서 매일 아침 그 친구의 경쾌한 알람 소리를 들어야 했어. 문제는 그 알람이 새벽 6시 30분부터 시작됐다는 거지. 그것도 매.일. 설상가상으로 그 친구는 절대 알람을 먼저 끈 적이 없었어.  

상상해봐. 6시 30분부터 30분 텀, 20분 텀, 10분 텀... 나중엔 1분 텀으로 마룬파이브 노래가 방 안 전체에 울려 퍼져. 다른 룸메들은 다들 잠에서 깨는데 정작 휴대폰 주인은 누구보다 평온한 모습으로 잠에 빠져있었지. 흔들어 깨워도 다시 잠들고, 핸드폰을 쥐여줘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대로 끌어안고 잠들더라. 지금도 마룬파이브 음악이 들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  

3. 개념이요? 그런 거 없는데요?


 
기숙사는 엄연히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잖아. 여러 명이 한방을 쓰면 그만큼 예의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이 친구는 그 예의라는 걸 밥 말아 먹었는지 눈곱만큼도 없는 친구였어. 마치 우리가 그 친구 방에 세 들어 사는 기분이랄까? 처음엔 밝고 사교성 좋은 친구라 생각했는데, 그게 도가 지나치기 시작했지.  

우선 화장품, 생활용품, 욕실용품 등 방 안에 있는 모든 룸메의 것들을 제 물건처럼 사용하더라. 초반에 몇 번은 빌리겠다는 말이라도 했지, 시간이 지나니까 말도 없이 그냥 사용하더라고. 그것도 깨끗하게 사용하면 몰라, 자기 물건 아니라 그런건지 너무 막 쓰고 아무 데나 두니까 정작 물건 주인들은 제대로 쓰지도 못했어.  

나중엔 옷까지 맘대로 입더라? 하루는 강의 시간에 과 동기를 만났는데 걔가 그러는 거야. "어? 이거 어제 A가 입고 왔는데? 너네 옷도 같이 입어? 형제네 형제". 나는 룸메가 내 옷을 입은 줄도 몰랐는데. 그 자리에서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더라고.  

일일이 말하자면 입 아픈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큰 소리로 통화하지 않나, 기숙사에 자기 친구들을 데려와서 술판을 벌인 적도 있어.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내 침대에 누워 낄낄거리고 있는 꼴을 보고 돌아버릴 뻔했다니까. 그걸로 대판 싸우고는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다가 한 학기 끝나자마자 곧바로 기숙사 나와버렸어.  

4. 이 구역의 예민보스


 
음.... 대부분 너무 더럽거나, 개념이 없는 룸메와 함께해서 힘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어. 너무너무 예민한 룸메 언니 때문에 숨 막히는 기숙사 생활을 했거든. 4명이 함께 쓰는 방이었는데 가장 나이가 많은 언니가 한 명 있었고, 나머지는 다 동갑내기였어. 자연스럽게 언니가 대부분 결정권을 쥐고 있었지.  

언니는 신데렐라처럼 매일 밤 12시에 잠 잘 준비를 했는데, 그 이후 나는 모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어. 책 넘기는 소리만 들려도 "아~", "휴~"하며 한숨 쉬고, 펜이라도 떨어지면 곧바로 "조용히 좀 해줄래?"라며 쏘아붙이더라고.  

음식도 냄새나는 건 절대 안 되고, 과자 먹는 소리만 나도 "먹을 때 소리 나는 건 피해줬음 좋겠다"고 하더라. 청소 할 때도 다른 사람 책상까지 다 간섭하면서 이거 치워라 저거 치워라... 잔소리가 시어머니급이었다니까ㅠㅠ  

심지어 외박까지도 눈치 봐야 했어. 나는 미대라 야작이 많아서 외박계를 자주 썼는데, 하루는 날 붙잡고는 "미대라서 야작 많이 하나봐? 근데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니?"라고 하더라. 내가 내 외박계를 쓰는데 대체 왜 그것까지 참견인지 진짜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 예민하면 그냥 혼자 사는 게 낫지 않나...

Designer 백나영  
#기숙사#대학교 기숙사#대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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