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세상은 진심의 힘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전 직장 동료를 만나서 참담한 ‘인사 사고’를 들었다. 지원부서에서 일하던 방송국의 모 씨가 승진해 뜬금없이 제작국 부서장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타인의 승진 소식이 왜 참담하느냐…, 하면 그가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회사원이 된 지 5년쯤 지나니 예전 직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인사 소식을 듣게 되곤 한다. 옮겨 다닌 직장이 세 손가락을 넘자 스쳐간 사람들도 늘어났고 ‘그 새끼 OO 됐다더라’ ‘그 사람 결국 OO 됐다더라’ 등등의 소식은 풍문처럼 돌고 돌아 이미 그곳을 떠난 내 귀에까지 타고 들어온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방송국의 모 씨의 악한 됨됨이를 설명하겠다. 신입인 나는 그에게 처음 인사를 하러 갔다. 소속 회사는 달랐지만 같은 콘텐츠로 협업하는 입장이었고, 나는 그보다 후배였기에 당연히 공손하게 90도 인사를 했다. 회사 로비 소파에 회장님처럼 몸을 파묻고 있었던 그는 예의로라도 일어나기는커녕 아래위로 눈을 ‘까딱’ 했다.
을인 너 따위의 인사를 내가 신경이나 쓰겠냐는 투였다. 그러고는 바 로 나와 동행한 대표에게 말했다.
“이번엔 얼굴 안 보고 뽑았나봐?”
첫인상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품성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그는 정말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나쁜 놈이었다. 초면인 나에게 외모 지적을 하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악인으로 분리한 것이 아니다.
그는 갑을 관계를 철저히 따졌으며 윗사람에게는 ‘딸랑딸랑’을 마다하지 않았고(회식 자리에서 진짜로 손을 귀 옆에 대고 딸랑딸랑하는 사람이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뜨악했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후배들을 부리고 공은 제 차지, 문제가 생기면 발을 빼고 동료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런 그가 방송국 사내 공고에 “저요 저요!” 부지런히 손을 들어 업무상 연결성도 전혀 없는 제작부서의 부장으로 보직을 옮겨 승진을 했다는 것이다. 회사의 불합리한 처사에 문제를 제기하여 단체로 해고된 직원들의 빈자리에 부리나케 지원했으니, 남의 불행을 발판 삼아 뜀틀을 뛴 것이다. 아, 강호에 도리란 사라진 것인가.
그가 그토록 나쁜 짓을 일삼을 때 그를 싫어하는 후배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었다. “어차피 저런 건 얼마 못 가, 실력이 없는데 롱런할 수 있겠어? 진심은 통하는 거 아니야?”이제야 알겠다. 악인은 악함 때문에 결국 망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아직까지 세상은 진심의 힘으로 굴러갈 거라고 믿었던 우리가 순진했다는 것도.
‘일 못하는 나쁜 놈이 성공했다’는 사례는 그 외에도 무수했다. 퇴사 후 들려오는 소식은 거의 이랬다. 성실히 일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애쓰던 사람보다는 ‘사장에게 보여주기’에 치중하고, 동료의 공을 가로채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포장하는 인물이 승진하거나 주요 보직에 올랐다.
‘그런 나쁜 새끼는 주변에 친구가 없거나 애인이 없을 거야’라고 정신승리해보았지만 웬걸, 다들 친구에게는 좋은 사람인지 주변에 사람도 많고 가정도 버젓이 잘만 꾸렸다. 다른 나쁜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들이 나쁜 놈으로 인식하고 있는 나쁜 놈은 그나마 깨끗하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려서 모든 이들에게 “그거 내가 안 그랬어, 나는 잘 몰라”로 일관하고, 자기 자리에서 필요한 결정과 희생이 요구될 때에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가며 팀원들을 이간질시키고 자기만 좋은 사람인 척하는 ‘가면 쓴 나쁜 놈’이 최악 오브 최악이다.
심지어 그런 악인들은 자기 객관화가 안 되어서 실제로도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까지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성공한 나쁜 놈들의 예는 해외에도 많다. 일례로 맥도널드 창업자 레이 크록도 절대 좋은 놈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놈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그린 실화 <파운더>는 아주 객관적으로 인물을 그렸고 심지어 실화보다 약간 좋게 그의 비즈니스 감각을 칭찬하지만 그래도 역시 레이 크록은 나쁜 놈이다.
‘맥도널드’의 시스템을 만들고 이름을 지은 맥도널드 형제에게서 상표권을 빼앗고 값을 제대로 지불하지도 않았으며 덕분에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그는 자기 목적(맥도널드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에만 충실했고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는 신경을 껐다.
윤리적 감각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갖는 순간부터 부호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슬프게도 많은 나쁜 놈들에게 데었던 내가 <파운더>를 보고 느낀 교훈은 이것이었다.
그나마 레이 크록은 일이라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나쁜 놈들이 열심히 하는 거라곤 자랑질과 횡령밖에 없었는데, 도대체 그들의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 혹시 주말마다 사장님 댁에 찾아가 세차를 해주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워 주기라도 하는 것인가. 혹은 남모르는 영업 실적을 내서 회사를 먹여 살리고 있는 능력자인가?
아니다. 단지 그들은 비위가 강하고 염치가 없으며 자기 포장에 능했다. 대학생 여러분, 염치를 버리세요, 친구를 짓밟으세요, 팀 과제에서는 최대한 일은 적게 하고 내가 다 한 척 생색냅시다, 그것이 바로 성공의 길입니다.
물론 이런 결론을 내리려고 길고 긴 ‘나쁜 놈 연대기’를 읊은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됨됨이는 기실 유불리의 관계에 놓여야만 확인된다. 악인들 때문에 피해를 입을 때,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잃을 게 많아서, 힘 있는 악인에게 찍히기 싫어서 묵묵히 피해자 역할만을 수행해왔다. 그랬더니 그들은 더, 더, 더 강해졌고, 몇 년 후 ‘성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도 그들의 성공에 일조한 셈이다.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사안을 준비하는 악인들에 맞서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결국 질질 울면서 회사를 그만둔 적도 있었다. 내가 고민하며 잠을 설칠 때 나쁜 놈들은 쿨쿨 잘만 잤을 것이다.
잘 살기 위해서 내가 나쁜 놈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세상이, 학교가, 사회가 삶의 선택을 요구할 때 악한에 대처해 현명해질 필요는 있다.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치밀하고 결단력 있게 우리가 먼저 악한의 발을 채어 넘어트려야 한다.
다음엔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고 입을 앙다문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저런 새끼가 잘 되나, 쯧쯧’ 혀만 차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강해져야겠다고. 그리고 그들은 절대 모를, 쓸데없는 행복들을 더, 더, 더 늘려가겠다고.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다짐해본다.
타인의 승진 소식이 왜 참담하느냐…, 하면 그가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회사원이 된 지 5년쯤 지나니 예전 직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인사 소식을 듣게 되곤 한다. 옮겨 다닌 직장이 세 손가락을 넘자 스쳐간 사람들도 늘어났고 ‘그 새끼 OO 됐다더라’ ‘그 사람 결국 OO 됐다더라’ 등등의 소식은 풍문처럼 돌고 돌아 이미 그곳을 떠난 내 귀에까지 타고 들어온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방송국의 모 씨의 악한 됨됨이를 설명하겠다. 신입인 나는 그에게 처음 인사를 하러 갔다. 소속 회사는 달랐지만 같은 콘텐츠로 협업하는 입장이었고, 나는 그보다 후배였기에 당연히 공손하게 90도 인사를 했다. 회사 로비 소파에 회장님처럼 몸을 파묻고 있었던 그는 예의로라도 일어나기는커녕 아래위로 눈을 ‘까딱’ 했다.
을인 너 따위의 인사를 내가 신경이나 쓰겠냐는 투였다. 그러고는 바 로 나와 동행한 대표에게 말했다.
“이번엔 얼굴 안 보고 뽑았나봐?”
첫인상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품성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그는 정말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나쁜 놈이었다. 초면인 나에게 외모 지적을 하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악인으로 분리한 것이 아니다.
그는 갑을 관계를 철저히 따졌으며 윗사람에게는 ‘딸랑딸랑’을 마다하지 않았고(회식 자리에서 진짜로 손을 귀 옆에 대고 딸랑딸랑하는 사람이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뜨악했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후배들을 부리고 공은 제 차지, 문제가 생기면 발을 빼고 동료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런 그가 방송국 사내 공고에 “저요 저요!” 부지런히 손을 들어 업무상 연결성도 전혀 없는 제작부서의 부장으로 보직을 옮겨 승진을 했다는 것이다. 회사의 불합리한 처사에 문제를 제기하여 단체로 해고된 직원들의 빈자리에 부리나케 지원했으니, 남의 불행을 발판 삼아 뜀틀을 뛴 것이다. 아, 강호에 도리란 사라진 것인가.
그가 그토록 나쁜 짓을 일삼을 때 그를 싫어하는 후배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었다. “어차피 저런 건 얼마 못 가, 실력이 없는데 롱런할 수 있겠어? 진심은 통하는 거 아니야?”이제야 알겠다. 악인은 악함 때문에 결국 망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아직까지 세상은 진심의 힘으로 굴러갈 거라고 믿었던 우리가 순진했다는 것도.

‘일 못하는 나쁜 놈이 성공했다’는 사례는 그 외에도 무수했다. 퇴사 후 들려오는 소식은 거의 이랬다. 성실히 일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애쓰던 사람보다는 ‘사장에게 보여주기’에 치중하고, 동료의 공을 가로채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포장하는 인물이 승진하거나 주요 보직에 올랐다.
‘그런 나쁜 새끼는 주변에 친구가 없거나 애인이 없을 거야’라고 정신승리해보았지만 웬걸, 다들 친구에게는 좋은 사람인지 주변에 사람도 많고 가정도 버젓이 잘만 꾸렸다. 다른 나쁜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들이 나쁜 놈으로 인식하고 있는 나쁜 놈은 그나마 깨끗하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려서 모든 이들에게 “그거 내가 안 그랬어, 나는 잘 몰라”로 일관하고, 자기 자리에서 필요한 결정과 희생이 요구될 때에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가며 팀원들을 이간질시키고 자기만 좋은 사람인 척하는 ‘가면 쓴 나쁜 놈’이 최악 오브 최악이다.
심지어 그런 악인들은 자기 객관화가 안 되어서 실제로도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까지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성공한 나쁜 놈들의 예는 해외에도 많다. 일례로 맥도널드 창업자 레이 크록도 절대 좋은 놈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놈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그린 실화 <파운더>는 아주 객관적으로 인물을 그렸고 심지어 실화보다 약간 좋게 그의 비즈니스 감각을 칭찬하지만 그래도 역시 레이 크록은 나쁜 놈이다.
‘맥도널드’의 시스템을 만들고 이름을 지은 맥도널드 형제에게서 상표권을 빼앗고 값을 제대로 지불하지도 않았으며 덕분에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그는 자기 목적(맥도널드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에만 충실했고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는 신경을 껐다.
윤리적 감각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갖는 순간부터 부호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슬프게도 많은 나쁜 놈들에게 데었던 내가 <파운더>를 보고 느낀 교훈은 이것이었다.
그나마 레이 크록은 일이라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내가 만났던 나쁜 놈들이 열심히 하는 거라곤 자랑질과 횡령밖에 없었는데, 도대체 그들의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 혹시 주말마다 사장님 댁에 찾아가 세차를 해주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워 주기라도 하는 것인가. 혹은 남모르는 영업 실적을 내서 회사를 먹여 살리고 있는 능력자인가?
아니다. 단지 그들은 비위가 강하고 염치가 없으며 자기 포장에 능했다. 대학생 여러분, 염치를 버리세요, 친구를 짓밟으세요, 팀 과제에서는 최대한 일은 적게 하고 내가 다 한 척 생색냅시다, 그것이 바로 성공의 길입니다.
물론 이런 결론을 내리려고 길고 긴 ‘나쁜 놈 연대기’를 읊은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됨됨이는 기실 유불리의 관계에 놓여야만 확인된다. 악인들 때문에 피해를 입을 때,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잃을 게 많아서, 힘 있는 악인에게 찍히기 싫어서 묵묵히 피해자 역할만을 수행해왔다. 그랬더니 그들은 더, 더, 더 강해졌고, 몇 년 후 ‘성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도 그들의 성공에 일조한 셈이다.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사안을 준비하는 악인들에 맞서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결국 질질 울면서 회사를 그만둔 적도 있었다. 내가 고민하며 잠을 설칠 때 나쁜 놈들은 쿨쿨 잘만 잤을 것이다.
잘 살기 위해서 내가 나쁜 놈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세상이, 학교가, 사회가 삶의 선택을 요구할 때 악한에 대처해 현명해질 필요는 있다.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치밀하고 결단력 있게 우리가 먼저 악한의 발을 채어 넘어트려야 한다.
다음엔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고 입을 앙다문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저런 새끼가 잘 되나, 쯧쯧’ 혀만 차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강해져야겠다고. 그리고 그들은 절대 모를, 쓸데없는 행복들을 더, 더, 더 늘려가겠다고.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다짐해본다.
Illustrator 키미앤일이
Writer 김송희, 『미운 청년 새끼』 저자 grimgle@naver.com
*제목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에서 따왔다. 지금 봐도 이 제목은 진짜 잘 지었다. 구로사와 감독님은 ‘일잘’이셨을 거라고 믿는다.
Writer 김송희, 『미운 청년 새끼』 저자 grimgle@naver.com
*제목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에서 따왔다. 지금 봐도 이 제목은 진짜 잘 지었다. 구로사와 감독님은 ‘일잘’이셨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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