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듣보잡 래퍼 우원재의 생존법

'쇼미더머니6'의 최대 수혜자이자 거품 논란의 주인공
그것은 불과 30초 만에 일어났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썹 아래까지 비니를 눌러 쓴 청년이 랩을 읊조리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곧 JK가 합격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일부는 탄식을 뱉었고, 일부는 탐탁잖은 표정을 지었다. 참가자와 시청자들의 뇌리에 랩네임도 아닌 '우원재'라는 이름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쇼미더머니 6>의 최대 수혜자는 역시 우원재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 화제성은 넉살, 더블케이, 주노플로같은 천상계 인물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혜성처럼 나타난 듣보잡 래퍼는 무려 세 번째 미션에서까지도 살아남았다. 내로라하는 강자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우원재의 생존법은 무엇이었을까.  

1화 - 잊지 못할 첫인상을 남겨라

"저 눈 한 번만 보고 해주시면..." "예술병? 난 예술 안 해 난 그냥 돈 버는 거야"
이번 쇼미에서 가장 주목받은 심사위원은 바로 타이거 JK. 수많은 래퍼가 그의 면전에서 심사를 보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앞에 서는 자는 누구든 위축된다'는 그 공포의 타이거JK가 우원재 앞에 선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 눈 한 번만 보고 해 주세요"(이때 자막이 '단 한 번만 보여드리고 싶어요'라고 잘못 나갔음)   그 전까지 JK는 "잘하던 사람들이 나를 만나자 긴장해 떨어졌다"는 말을 할 정도로 참가자들이 얼마나 자기를 부담스러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되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참가자의 눈을 피했다. 우원재는 그런 그가 모자를 고쳐 쓰게 만들었다. 그게 얼마나 굉장한 자신감이었는지는 JK가 더 잘 알고 있었을 거다. 그렇게 그는 첫인상을 각인시켰다.     만일 우원재가 다른 참가자들처럼 다짜고짜 랩부터 시작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영리한 요구였다. 분명 애매하다고 할 만한 랩 실력이었음에도 JK는 "준비한 다른 게 있으면 보여달라"며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잘 나간다 하는 래퍼들조차 감히 시도하지 못한 모험을 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JK는 "그 친구는 랩이 굉장히 사연이 있고 흡수력이 있어요"라며 극찬했다. '힙합의 제왕'에게 인정받은 황금같은 기회를 우원재는 놓치지 않았다.  

2화 - 자신만의 스타일로 분위기를 주도하라

"그럴 때 있잖아 내가 주인공이 되는 기분" "알약 두 봉지가 전부지, 알약 두 봉지가 설명해 내 삶을 내 하루는 전멸해 Ay!"
"퍼포먼스 같았는데 가장 집중하게 되는" - 재범 "이번 연도에 살인자 한 명 나온 거 같아요. 랩으로 사람 죽이는?" - 우희원   2차 예선은 JK에게 인정받은 능력을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보여주는 자리였다. 음울하게 깔린 비트 위에서 우원재의 랩은 더 빛났다. 마치 싸이코패스가 읊는 공포영화의 대사처럼, 그의 랩은 메소드 연기처럼 숨 막히게 귀를 파고들었다.   그를 돋보이게 한 건 화려한 스킬이 아닌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랩 실력 운운하는 일부 골수 힙합 팬들은 '부족한 실력을 숨기려는 컨셉질'이라며 비판했지만, 몇몇 리스너와 힙알못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라임과 플로우를 몰라도 괜찮았다. 다른 참가자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았다.     우원재의 우울한 랩에 열광한 사람들은 그의 신상을 털어(?)봤으나 얻어낸 신상은 평범했다. 홍익대학교 자율전공, 홍대 힙합 동아리 소속. 정신병도 없고 사연도 없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저는 평범한 22살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의 상징이 되어버린 '알약 두 봉지' 역시 일종의 콘셉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배신감을 느낀 일부 팬들이 등을 돌렸지만, 2차 예선에서 보여준 남다른 스타일은 많고 뻔한 강자들 사이에서 좋은 생존기가 되었다.   이후 이 2차 예선 영상은 우승 후보인 넉살 2차 예선 영상보다 무려 10만 명이 높은 56만 명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우원재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포털사이트에 뜨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예선 무대부터였다.  

3화 - 나의 위치를 높이 끌어올려라

"나는 또 또 또 또 또 또 걸어, 걷다 보면 또 또 또 또 또 똑같어" "난 평범이 꿈이네, 넌 평범을 꾸며내. 그런 구조가 나는 훨씬 수월해"
"저 스타일리스트좀, 속옷을 갈아 입어야 할 것 같아서" - 지코 "우원재 씨는 악마 중의 악마고, 이그니토 형은 악마" - 러스트 크루거   콘셉트 설정과 위치선정에 있어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무대는 바로 3차전, 이그니토와의 일기토였다. 전체 래퍼들 중 무려 3위를 차지하며 상대 지목권을 얻은 우원재는 놀랍게도 이미 씬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실력파이자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이그니토를 지목했다.   훌륭한 전략이자 모험이었다. 사람들은 '악마와 사탄의 대결'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결이 성사된 시점에서 이미 우원재는 자신을 이그니토와 동일시했다. 이 전략을 취하며 우원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베테랑 래퍼 이그니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림, 그리고 콘셉트가 겹칠 라이벌을 탈락시킬 기회. 그리고 '역대급, 레전드 승부'라는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두 번의 승부를 치른 끝에 승리했다.     만약 우원재가 이때 다른 하위권 래퍼를 지목해 가볍게 승리했다면 '레전드'라 불릴 만큼의 명승부가 탄생하진 않았을 거다.(그 올티조차 2차 예선까지 통편집되었으니...) '모 아니면 도'였던 도박은 성공적이었고, 결국 승리를 쟁취하면서 우원재는 심사위원들과 대중들에게 '범상치 않은 신예'를 넘어 '실력자를 이긴 괴물'로 남았다.  

5화 - 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생존을 취하라

"다시 기회를 준다고 해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싸이퍼를" "아, 오늘 힘들겠다. 싶었어요"
"23점을 받은 4위 래퍼는 우원재 래퍼입니다" - 김진표 "우원재가 싸이퍼에서는 되게 아쉬웠던 것 같아요" - 주노플로   그런 우원재도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4차전 싸이퍼 미션, 시작부터 우원재는 평소와 다른 불안함을 비쳤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도 우원재는 '자신이 없다. 오늘 힘들 것 같다'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결국 마지막 조에 합류하게 된 우원재는 가장 마지막 순서로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는 뽑혀 있던 마이크를 다시 스탠드에 꽂고 다시 모자를 눌러쓴 채 다시 '알약 타령'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같은 비트 위에서 다른 래퍼들과 경쟁하기엔 우원재의 랩 스타일이 너무 튀었다. 결국 그는 6명 중 4위(공동 6위 2명)를 차지하며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결과를 놓고 사람들은 '밑천이 다 드러났다', '결국 순발력이 꽝'이라며 우원재의 실력을 의심했다. 쉽게 말해 거품이 빠졌다는 거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을 그대로 뱉어낸 것이 정말 악수였을까? 우원재는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꺼냈다. 다른 래퍼들처럼 스웩 넘치는 가사와 랩을 구사하지 않았다.   악수는 아니었다고 본다. 애써 쌓아 놓은 캐릭터를 버리고 남들과 같은 스타일을 구사하면 좋았을까? 어차피 못 하는 마당에 어설프게 색다른 시도를 했다면, 5위로 살아남기조차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악조건을 마주하고 약점을 보였지만, 다행히 그의 캐릭터는 무너지지 않았다.   사실 우원재의 싸이퍼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최악은 아니었다. 다만 6위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따로 노는 랩이었는데, 심사위원들이 그를 살려(?)준 것은 역시 캐릭터만은 확실한 그의 랩을 더 보고 싶은 이유에서였을 거다. 우원재 짱짱맨 하고 있는 나처럼.  

생존왕의 다음 미션은

  힙알못들은 그를 응원하고 있다. 나 역시 힙알못이라 색다른 우원재의 캐릭터에 열광하고, 시즌 5의 비와이만큼 그의 랩을 듣기 원한다. 거품이든 실력이든 중요치 않다. 쇼미 시청자로서 그의 캐릭터를 즐거운 마음으로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홍대생 우원재가 지금까지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 만으로 이번 시즌 <쇼미더머니>의 초반부 이슈는 성공적이었다. 다음 미션에서도 살아남아 프로듀서 팀에 합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확실한 건 그의 랩이 힙합이든 아니든 힙알못으로서 듣보잡 래퍼의 활약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거다.
#넉살#더블케이#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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