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이런 종류의 글은 믿지 마시오

찰스 부코우스키의 묘비명

자신의 분야에서 자그마하게라도 성취를 이루게 되면, 글로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줄 것을 요청받곤 합니다. 요청하는 쪽에서는 아마 특별한 기대를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꼭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면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차고 넘칠 테니까요. 그런 종류의 글이 워낙에 많다 보니 어차피 쉽게 잊혀질 것 역시 서로 알고 있을 겁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것 역시 그런 연유에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리고 항상 그 사실을 명심하려 합니다. 자- 20대들에게, 대학생들에게 어떤 훈계를 해볼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가장 먼저 거짓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지금 만화를 혹은 글을 지어 밥 벌어먹고 살고 있는 것은 실상 요행에 가까운 것이건만, ‘운이 좋아 이렇게 먹고삽니다’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본인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건 아니건, 모호하고 애매한 것보다 ‘반드시 ~할 수 있는’ 혹은 ‘내 성공 비법은 바로~’ 같은 명징한 해답을 원합니다. 그래야 불안이 사라집니다. 지금의 방황과 실패, 그에 따른 자기모멸감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 것만 같습니다.

 

고대인들이 번개가 왜 치는지 알 수 없어 두려워하던 마음이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서 만화가가 되고, 수필가가 되어 제법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을까요. 모릅니다. 반 정도는 운이었고, 나머지는 절대로 다시 일어날 일 없는 우연입니다. 애당초 의도해 생겨난 결과가 아닙니다. 짐짓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 양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저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거짓말만 커져갈 뿐입니다.

 

대학생 시절 저는,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았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건강기능식품을 팔았습니다. 살림에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돌아온 건 구청 보건소의 고발장이었습니다. 제조사에서 보내준 광고 문구를 그대로 인터넷에 올렸다 허위 광고로 고발당한 것입니다. 약식기소를 당해 벌금 200만원을 물게 되었습니다. 그 벌금을 갚기 위해 전 재산 100만원으로 주식을 했습니다.

 

운좋게 돈을 벌어 벌금을 냈지만, 결국 빈털털이가 되어 쇼핑몰은 폐업했습니다. 전업 투자가로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우연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나에게 숨겨진 투자자의 재능이?’라는 생각을 살짝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걸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뭐 하나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해본 것이 없습니다. 굴러다니는 돌처럼 살았습니다. 지금의 저 역시 구르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20대들에게, 대학생들에게 어떤 건방을 떨어볼까, 하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으면, 겁을 주고만 싶어집니다.

 

 

제가 겪은 몇 안 되는 시련들- 그나마도 대부분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기에 이렇게 팔자 좋게 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은 완전히 망각한 채 소소한 실패와 고통을, 자꾸만 실제보다 부풀려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저를 얕잡아 보지 않을 테고, 제 말에 귀 기울일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압니다. 그래 봤자 저에게 도움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제가 좀 더 잇속에 밝은 사람이라면 그런 구린 역학 관계를 이용해 글을 쓰고 책으로 만들어 팔 것입니다. 아마 잘 팔릴 겁니다. 실제로 잘 팔리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만들어 팔아 착실히 돈을 벌고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악하다고 말하기도 뭐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제공해주는 것이기에 서로서로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런 것은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버는 데는 물론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만, 죽기 전 인생을 되돌아볼 때 만족스럽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찰스 부코우스키는 여러모로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민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긴 세월 글을 썼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우체국 우편 분류원 일을 12년이나 하면서 버는 돈은 족족 술과 매춘에 쏟아부었습니다. 비관과 염세에 가득 차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한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게 됩니다.

 

편집자는 그에게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대가로 매달 100달러를 주는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우체국에서 미쳐가느니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다 굶어 죽겠다’며 그 계약을 받아들인 찰스 부코우스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우체부』 외에 수많은 소설을 썼고, 살아생전 부와 명성을 누린 작가로 살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번 돈 역시 방탕하게 써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자신과 같은 유명 작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떠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셰익스피어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독자가 “당신은 영향력 있는 작가이니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항의하자, “야, 난 톨스토이도 싫어해”라고 답했습니다.

 

그의 방탕한 삶을 선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긍정하고 있습니다. 멋대로 살다 멋대로 떠난 그의 묘비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Don’t try’ 시도하지 말아라. 노력하지 말아라. 애쓰지 말아라. 언젠가 저는 죽겠지요. 그 순간이 왔을 때 우연히 얻은 성과를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으로 무언가를 얻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의도하지 못한 결과를 마치 나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인 양 포장해, 스스로를 속이며 살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할 수 있다면, 살아 있는 내내 내키는 것을 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감당하며 무수히 실패하고 작은 성취를 이루는 것으로 삶을 채우고 싶습니다.

 

그렇게 쓰여진 글과, 그려진 그림이 그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작은 의미를 남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로지 ‘의미를 남기고 싶다’는 것에만 집착해 거짓 선지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교훈을 주지 않는다면 이 글을 쓰는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드리고 싶은 말은 찰스 부코우스키의 묘비명인 ‘Don’t try’입니다. 무엇을 시도하고, 애쓰지 말라는 것일까요. 살아 생전 늘 불친절했던 진성 아웃사이더인 그는 거기까진 적어놓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무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았는데, 내 상황과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거나, 정답을 알려주겠다는 책을 필사하며 명심하거나, 가능성을 수치화해 성공 확률을 계산하거나, 타인들의 반응을 보며 시행 여부를 결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하라는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저도 그것 외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런 글은 믿지 마시고.


[828호 – think]

Illustrator 키미앤일이 

writer 김보통 만화가,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저자

#828호#828호 think#828호 대학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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