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옳은 생각과 옳은 대답
선생님, ‘메갈’이 뭐예요?
모파상의 『목걸이』라는 소설을 수업에서 다룬 적이 있어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한 하급 공무원과 결혼한 여자 주인공이 무도회에 가기 위해 친구에게 값비싼 목걸이를 빌려요. 하지만 그걸 잃어버리게 되고, 빚을 갚기 위해 10년 동안 고생을 하게 되죠.

 

후에 친구를 다시 만나 이 사실을 고백하는데, 그 잃어버린 목걸이는 사실 모조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끝이 나요. 소설을 다 읽자마자 한 남학생이 그러더라고요. “에이, 주인공이 김치녀라 그래요!” 저는 현재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임 1년 차, 다소 정제되지 않은 학생들의 발언 때문에 생각보다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요. 한번은 성평등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어떤 남학생이 대뜸 ‘김치냉장고’라는 단어를 쓰더라고요. 여성가족부를 의미하는 거였어요. 그 외에도 ‘앙기모띠’, ‘메갈년’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누군가를 놀릴 때 ‘게이’,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쓰기도 해요.

아이들이 자주 보는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데에서 성과 젠더 문제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인 탓이 큰 듯해요. 저는 교실에 떠도는 차별과 혐오의 말들을 만날 때마다 일일이 정정해주고 있어요. 소설 『목걸이』에 대해서도 다시 이야기해요.

“당시 사회적 배경을 한번 생각해보자. 여성이 직업을 맘대로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을까? 직접 돈을 벌 수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지도 몰라.” 왜 남자가 가지고 싶은 걸 가지면 당연한 게 되고, 여자가 하고 싶은 걸 하면 ‘김치녀’가 되는지 생각해보도록 하는 거죠.

 

“너희들이 그런 말을 쓰면 옆에 있는 여학생 친구들이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행동에 제약을 받게 돼.” 그러면 학생들도 이해를 해요. ‘아, 누군가한테 상처가 될 수 있구나’ 하고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고 쓰인 제 열쇠고리를 보더니 반 학생이 이게 무슨 말인지 묻더라고요.

“누구나 자기의 성에 상관없이 생각을 말하고, 그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야. 페미니스트는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야.” 그랬더니 “저도 이거 가지고 싶어요!”라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미디어를 통해 성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먼저 받아들이게 된다는 거예요. 당장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니까요.

하지만 막상 문제에 대해 차분히 설명을 해주면 생각보다 잘 받아들여요. 이해가 되거든요. 학부 시절, 총여학생회에서 여러 활동을 하며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여실히 깨달았어요. 교수로부터 들은 언어 성폭력 발언을 모아 자료집을 만들고, 여학우들에게 무상 생리대를 지급하기도 했어요.

남성 중심적인 체육대회에 문제의식을 느껴 여학우들을 위한 체육대회를 열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죠. 대학 생활 동안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분노하고, 문제 제기를 하면서 열심히 싸웠어요. 하지만 학교 측으로부터 예산을 인준 받을 때도, 사람들에게 문제에 관해 설득할 때도 매번 커다란 벽을 마주한 느낌이었어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교실을 위해서
 

그때부터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거부감이 드나? 성평등주의라고 하면 반감이 없어지나? 하지만 관련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부딪칠수록 이 사람들이 단순히 명칭 때문에 반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싫은 사람은 어떻게든 트집을 잡을 테니까요. 이런저런 비난에 매몰돼 지향하는 바와 목표를 잃으면 안 되겠다고 오히려 생각하게 됐죠. 그때 했던 고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요. 학생들에게 어떻게 바른 젠더 의식을 전달할 수 있을지 매번 생각해요.

한번은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는데, 학생들이 가장 재밌게 참여했던 시간이었어요. 남성적인 건 우렁찬 목소리와 근육질을, 여성적인 건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속성을 얘기하더라고요. 사실은 그런 것들이 다 편견인데 언뜻 자연스러워 보이잖아요.

 

“그럼 마른 남자는 남자가 아니고, 뚱뚱한 여자는 여자가 아닐까? 여자는 왜 말라야 해?” 아이들이 좀 더 남성·여성에 대한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평소에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식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는 한 학생이 그동안 이런 말에 왜 기분이 나빴는지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학교가 더 이상 성차별적인 편견을 키우는 장소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교사를 대상으로 한 젠더 교육도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어요. 한번은 다른 선생님이 진행하는 성교육 시간에 학생이 ‘왜 학교에서 화투나 카드를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질문했는데, “화투나 카드는 편의점에서 누구한테나 팔지만 너희가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약국에서 콘돔도 팔지만, 너희가 사라고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고 하더라고요. 학생의 질문에 교사가 옳은 생각과 옳은 대답을 전달할 수 없다면, 더 왜곡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젠더 교육을 두고 아이들을 걱정하면 누구는 그래요. “중학생 때는 다 그래.”

그런데 대학에서도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서 음란한 말을 주고받으면서 “너넨 몰라도 돼” 하고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리는 걸 여러 번 봤거든요. 지금 교실에서 차별적인 발언을 내뱉는 남학생들이 그대로 큰다면 똑같이 될 것 같은 거예요.

 

'제가 대학에서 본 남학생들 역시 성인이 될 때까지 그게 잘못됐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채로 여성을 쉽게 대상화하고, 농담이라며 성희롱을 할 수 있는 거고요. 차별을 겪는 여학생들도 움츠러들지 말고 교실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해요.

어려서, 뭘 몰라서 ‘원래 다 그러려니’ 하는 식으로 넘어가게 되면 성인이 된 후엔 태도를 바꾸기가 더 힘들어지거든요. 누군가로부터 ‘그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한 마디라도 듣는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를 인지하는 데서부터 해결은 시작되니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더 많은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829호 - 20's ㅇㄱㄹㅇ]

Intern 김영화 movie@univ.me Interviewee 은강(가명) 현재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페미니스트 교사 은강씨(가명)와의 인터뷰를 옮겨 적었습니다.  
#829호#829호 대학내일#ㅇㄱ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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