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먼지 같은 삶일지라도

우주의 먼지들이 그랬듯

졸업장을 받아든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메일 보내기. ‘안녕하세요, OO학과 조교입니다. 세계대학평가점수 상승을 위해…’ 말이 좋아 조교이지, 정확히는 행정직 인턴이다.

학부 땐 주야장천 기업의 고용 형태와 노동 착취를 비판했건만, 스스로 1년짜리 계약직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졸업은 했고 취직은 해야 하는데 당장 먹고살 돈이 땅에서 솟진 않더라. 나 같은 애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학교는 졸업생을 최저임금으로 마음껏 부려먹은 뒤 정규직 전환 없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는 일을 반복할 수 있었다.

평소 떠들어댔던 대로 행동하자면 고사했을 일이지만 그럴 수 없었다. 취준생의 흔한 농담 중엔 이런 말이 있다. “난 XX기업이 싫어. 악의 축이라고 생각해. 근데 합격시켜주면 출근할 때마다 삼보일배도 할 수 있어.”

시험 감독에 예산 편성에 정신없이 바빴던 어느 날, 한 학생이 시험 중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수업 자료로 추정되는 글을 보다가 교수님께 들켰단다. 학생은 카톡 내역을 보여주며 ‘일상적인 메시지를 확인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다가, 제발 F만은 피하게 해달라 호소했다고 한다.

전후 상황을 고려하여, 학생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를 받게 됐다. 낙제였다. “성적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교수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에 바로 공감을 표하기 어려웠다. 상대평가에다 일정 인원은 반드시 D 이하를 받아야 하는, 누굴 위한 것인지 모를 이상한 성적 제도를 알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열심히 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나가떨어지게끔 만드는 규칙.

사상 최악이라는 취업 시장에 내던져질 4학년 학생에게 학점은 무서운 굴레였을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려다 무리수를 둔 것이라 짐작한다. 물론 부정행위는 함께 시험을 보는 다른 학생들을 기만하고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는 짓이다.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그만큼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어야 맞다. 그 학생이 선택한 방법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해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시스템 안에서 ‘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생각하면서.

아노미.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그것뿐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목표는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그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 치우쳐 있을 때, 목적과 수단의 괴리에 끼어버린 이들은 일탈을 저지른다. 개인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개인‘만’의 잘못으로 단언할 수는 없다. 우리는 흐릿해지는 자기 자신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 써야 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어느 술자리, 입사 최종 면접에서 몇 번씩이나 탈락했던 오빠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같은 회사 지원한 친구가 떨어졌다고 하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그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힘겨운 한마디를 뱉었다. “아, 경쟁자 하나 제쳤다.” 친구를 위로해주면서 한편으로 안심하는 자신이 너무 밉다고,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언니도 속을 터놓았다. 최종 면접에서 성적으로 모욕적인 질문을 받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어. 근데 난 회사가 아니라 나에게 화를 내고 있더라. 내가 더 잘했으면 됐을 일이라고 자책했어.” 언니의 말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다들 힘들다. 노력이 부족한 자신을 채찍질하며 괴로워한다. 채찍을 던져버릴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한 채로. 단단히 지켜왔던 가치관은 통장 잔액 앞에 무너졌고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적이 되어 내 등에 칼을 꽂아 넣었다.

후배 기획안을 훔쳐 공모전에 참가한 선배, 취합하기로 약속한 상식 자료를 교묘하게 왜곡하며 잠재적 경쟁자들의 오답을 유도했던 누군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배웠던 도덕과 윤리는 덧없는 이상처럼 보이고 ‘착하면 손해’라는 말이 뼛속 깊이 새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하게 살아보려 한다. 살아감에 따라 나의 신념과 존재는 끊임없이 꺾이고 깎일 테지만, 거대한 풍파를 거치다 바스러져 한낱 부유하는 먼지가 될지언정 버텨보려고 한다. 그렇게 공중을 떠돌다 다른 먼지들을 만나면 후 불어버리는 대신, 꽉 안아줄 것이다.

서로가 무게를 싣고 꼭꼭 뭉쳐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혹시 알아, 우주의 먼지들이 그랬듯 커다란 행성으로 자라날지도.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열릴지도.

[829호 20's voice]

writer 임현경 hyunk1020@gmail.com 

그래도 미세먼지는 싫어요. 맘껏 숨 쉬고 싶어서요.

 
#20's voice#20대 칼럼#8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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