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당신은 아직 힙스터를 모른다

『후 이즈 힙스터? + 힙스터 핸드북』저자 문희언

 


CHECK LIST

  1. 맥주는 수입 맥주만 마신다. 선택지가 없으면 카스다.
  2. 국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제주도이다.
  3. 춤을 추고 싶다면 을지로의 ‘신도시’로 간다.
  4.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노아 바움백 아니면 자비에 돌란이다. 웨스 앤더슨은 기본이다.
  5. 언리미티드 에디션 참가 경험이 있다.
  6. 말할 때 자주 ‘물성’, ‘소구하다’,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7. 주말 늦은 저녁 시간을 혼자 보내는 곳은 스타벅스이다.

위의 체크리스트 항목 중 몇 개에 해당되는가? 나는 2개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당신은 7개라고? 그래도 아직 안심하지 말라. 이 체크리스트만으로는 누가 힙스터인지, 힙스터가 대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없다. 웃자고 재미로 만든 거니까. 진정 힙스터에 대해 알고 싶다면, 『후 이즈 힙스터?/힙스터 핸드북』을 추천한다. 책 한 권을 다 읽을 자신이 없다면, 저자 문희언 씨를 인터뷰한 이 기사를 추천한다. 그에게 힙스터가 무엇인지 듣고 나니, 나도 힙스터가 되고 싶어졌다.

       

힙스터 체크리스트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많이 됐었어요. 체크리스트를 해본 결과, 애석하지만 저는 힙스터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힙스터는 이런 거 안 한다’는 반응도 많지만, 힙스터라는 말에 ‘잘나가는 젊은 애들’이라는 의미가 섞여 있기 때문에 본인이 속하는지도 궁금한 거거든요. 사실 이 체크리스트로는 힙스터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없어요. 일종의 짓궂은 농담이니까요. 체크리스트에 나오는 것처럼 한국에서 힙스터로 인정받으려면 자격 조건이 필요해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가봤어야 되고, 서핑은 양양에서 해야 되고, 멜론 TOP100보다는 인디 음악을 즐겨 듣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내 취향이라고 착각하는 거잖아요. 그걸 좀 비꼬고 싶었어요. 심각하게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좀 웃기게.

저자 소개글이 인상적이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너바나를 듣고, 다리아를 보며 ‘나는 남과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미국·일본 문화에 푹 빠져 살았어요. 지금의 나를 만든 것 중 80%는 무라카미 하루키이고, 20%는 일본 잡지 「멘즈 논노」, 「브루타스」라고 맨날 얘기하고 다니거든요. 저는 어릴 때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취향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책도 20대 분들이 읽기를 원했어요.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좀 더 좋은 것, 새로운 것을 봤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그래서 다음엔 ‘10대들을 위한 이상한 추천 리스트’ 같은 걸 만들어보려고 해요. 10대 때는 주위 어른들이 뭘 권해주느냐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요즘은 다들 공부하라는 말만 하잖아요. 이런 노래 들어봐라, 이 영화 참 좋으니 한번 봐라 그런 게 없으니까.

힙스터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 개념 자체가 90년대 미국에서 인디음악이 부흥할 때, 그 팬들을 부르던 말에서 유래했어요. 포틀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미드 <포틀랜디아>에도 힙스터 코드가 많이 나오고요. 그때만 해도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 같았죠. 근데 2010년대부터 성공한 힙스터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24살 때 잡지를 창간한 「킨포크」 편집장, ‘‘땡스북스’를 비롯한 합정동의 작고 예쁜 가게들. 그때부터 힙스터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요 몇 년간 미니멀리즘이 대세죠? 그것도 힙스터들이 추구하던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였어요.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문화가 아니라 소비 형태만 눈에 띄니까 욕을 먹죠.

그렇게 멋진 건데, 왜 힙스터가 되라고 격려하는 사람은 없을까요?
우리나라엔 이상한 문화가 있어요. 새로운 걸 좀 해보려고 하면 다들 하지 말래요. 심지어 글 쓰는 사람들도 그러잖아요. 이거 별로니까 다른 일 찾아보라고. 안 좋은 점이 있으면 그걸 자기가 고치든가, 아님 이 점에 유의해서 준비하라고 조언해줄 수 있는 건데 하지 말라니요. 똑똑한 척하는 건지, 부러워서 그러는지. 힙스터도 비슷한데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는 20대들을 비웃는 30대가 많아요. 일단 큰 회사 들어가서 돈 벌고, 좋은 건 취미로 하라고. 이렇게 인구가 많은데 왜 다들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힙스터를 말할 때 패션을 빼놓기 힘들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가장 직접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수단이잖아요.
힙스터 패션이라기보다는 홍대 패션, 이태원 패션이죠. 오리털 점퍼를 입으면 안 된다거나, 유니섹스 룩을 선호한다거나. 이게 결국 몇몇 유명인을 따라가는 거예요. 혁오 스타일이 유행했던 것처럼. 결국 유행에 따라 비슷비슷한 옷을 입는 거죠. 근데 외국에서 패션은 이미 의미가 없어요. 자기 입고 싶은 대로 입으면 그게 최고예요. 심지어 영화배우 에즈라 밀러는 환경을 위해 절대 옷을 사지 않고 대신 쓰레기통을 뒤져서 옷을 구한대요. 그 정도로 옷에는 돈을 안 쓰고, 친구가 만든 옷 정도만 사는 거죠.

그럼 최근 몇 년간 ‘복고’가 힙스터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간단해요. 미국, 일본에서 복고 붐이 일었기 때문이에요. 미국은 60년대 히피 문화, 일본은 80년대 버블 경제를 추억할 수밖에 없어요. 그때가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웠으니까요. 근데 우리나라는 추억할 시기가 없어요. 전쟁 났을 때? 독재가 판칠 때? <응답하라> 시리즈만 해도 90년대까지는 시청자들이 공감했지만 80년대로 넘어가니까 10대, 20대는 왜 그런 시절을 그리워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마구잡이가 되어버렸어요. 요즘 빈티지 카페가 유행하고 있지만, 맥락 없이 뒤섞여 있어요. 가구들은 다 로코코 풍인데 그 사이에 자개장이 끼어 있고 막. 그냥 따라 하는 거죠.

이것저것 따라 해보면서 취향을 확장해 나갈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럼요. 사람들이 뭔가를 좋아한다면, 다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기 취향이 점점 만들어지는 건데. 다만 다 따라 하면서 안 그런 척하는 게 문제예요. ‘내가 어디서 봤는데 좋더라’가 아니라 ‘이것 봐, 좋지?’라면서 마치 자기가 시작인 것처럼 말해요. 그래놓고 막상 대중이 좋아하기 시작하면 비웃으면서 또 다른 거 들이밀고. “넌 아직도 혁오 듣냐?” 같은 거죠.(웃음)

 

왜 한국 힙스터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자주 눈에 띌까요?
힙스터는 자기 성향이지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닌데, 외모 지상주의가 워낙 심하잖아요. 본인의 외모를 드러내지 않고도 매력적일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을 택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힙스터들은 모두 트위터를 하죠. 관심을 받는 동시에 나를 숨길 수 있으니까. 오프라인에 비해 타인의 관심을 끌기도 훨씬 쉽고요.

책에 “지금 현재 여러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활 혁명’에서 힙이라는 요소를 제거할 수 없다”는 대목이 나와요. 『힙한 생활 혁명』이라는 일본어 책도 번역하셨고요. 국내에서도 ‘생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홍대 주변의 작은 서점들을 보면, 직장 다니다 그만두고 시작한 분들이 많아요. 본인들이 정말 원했던 일을 하는 거죠. 저 같은 경우도 계속 출판사에 다니다가 1인 출판사를 차린 거거든요? 자기만의 일을 하는 게 중요해요. 경험을 쌓으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은 다음 혼자 힘으로 시작하는, 그런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요. 물론 아직 크게 성공한 경우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대박을 터뜨린 유어마인드 정도밖에 없지만요. 안타깝게도 문화 시장 자체가 너무 작아요.

‘킨포크’라는 키워드가 쇼핑몰 홍보에 이용되고, 혁오나 10cm가 TV 예능에 나오면서 대중적인 가수가 됐어요. 힙스터가 자본에 잠식될 위험은 없을까요?
대기업이 끼어들기엔 문화 판 자체가 너무 작아요. 그들도 얻는 게 있어야 달려들죠. 미국이나 일본에선 문화가 돈이 되지만 한국은 아니거든요. 사실 한국의 힙스터들은 자본이 달려들어주길 원하죠. 간절히 원해요. 자본이 들어와야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과 즐길 수 있어요. 이제 혁오 좋아하면 힙스터가 아니라고 사람들이 비웃지만, 혁오야말로 가장 중요해요. 홍대 마이너 문화를 대중에게 알렸잖아요. 이젠 밴드 음악이 멋있다는 걸 10대-20대도 알잖아요. 게다가 일본, 중국으로 진출해서 지금 엄청 인기 많아요. 힙스터는 자본에 잠식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자본을 이용해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요. 홍대 작은 카페에서 시작했던 언리미티드 에디션도 이젠 큰 미술관에서 하잖아요. 힙스터는 오히려 좀 더 확산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자본도 필요하죠.

 

힙스터들은 개인주의자처럼 보이는 한편,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아요.
미국에서 2000년대 말부터 힙스터 문화가 굉장히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이 오바마였다는 거예요. 힙스터들이 기상천외한 기획을 내도 정부가 허가해주고 지원해줬거든요. 하고 싶은 말을 해도 안 잡아가고.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그게 안 됐죠. 특히 한국 사회는 더더욱 얽혀 있기 때문에 나만 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힙스터들은 그걸 아니까 협동조합도 만들고, 자주 뭉치면서 다 같이 잘 살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혼자 잘 살 수 없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됐을까요?
힙스터들은 대부분 뭔가를 만들어요. 근데 뭐든 만들려면 내가 아무리 천재라도 절대 나 혼자서는 못 해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죠. 고시공부는 나 혼자 열심히 하면 결과물이 돌아오지만, 유기농 채소를 키운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이 중요하잖아요. 누군가 또 채소를 사줘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것 같아요.

힙스터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언제까지고 계속 고시공부나 취업에 매달리진 않을 거예요. 지금의 20대는 해외도 자주 나가고, 거꾸로 교환학생으로 건너오는 외국인 학생들도 많으니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기회가 많잖아요. 그러다 보면 좀 바뀌지 않을까. 저는 매체에서 힙스터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많이 다뤘으면 좋겠어요. 최근 <효리네 민박>이 대박 났는데, 이효리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힙스터예요. 다들 그렇게 살길 바란단 말이에요. 힙스터 라이프스타일이 원래 그렇게 좋은 거예요. 근데 꼭 이런 말이 따라붙죠. “이효리는 돈이 많으니까 저렇게 할 수 있지.” 근데 돈 많다고 다 이효리처럼 사나요? 아니거든요. 물론 커다란 민박집이야 없겠지만, 찾아보면 돈 없어도 이효리처럼 사는 사람 많아요. TV에 안 나올 뿐이지. 대학 나와서 취업하고, 때 되면 결혼하고, 애 낳고, 이렇게 다 똑같이 살 필요 없잖아요. 한번 힙스터처럼 살아보면 너무 좋거든요. 사람처럼 사는 것 같고.

[830호 - Interview]

Photographer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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