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결국 못하고 끝난 일
못 한다고 삶이 바닥을 기진 않는다.

뚝배기 바닥이 보일 때쯤 국물 안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내 것이 아닐까 해서 잘 보니, 나는 탈모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튼튼하고 긴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저기요,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는데요?
알바생이 다급하게 달려와 우물쭈물하다 뚝배기를 들고 간다. 이윽고 다시 돌아와서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한다. 그게 끝이다. 만일 한 수저 떴을 때 발견했거나, 음식이 반 이상 남았더라면 새 뚝배기를 들고 왔겠지. 내가 사장이라도 이미 다 먹어치운 음식에 대고 클레임을 거는 손놈에게 보상을 하기가 영 마뜩잖을 거다.

좀 더 고집을 부려 사장과 대면해보자. 이미 다 드셨는데 저희가 어떤 보상을 해드려야 할까요? 아니, 그러면 지금 머리카락 든 음식을 다 처먹었으니 그냥 꺼지라는 얘기입니까? 돈 안 받을 테니 그냥 가세요. 가. 이런 일이 벌어지면 금전적인 보상이라도 받겠지만, 나는 결국 탁자 위에 손가락을 닦듯이 뽑아낸 머리칼을 올려 두고 계산대로 간다.
사장은 시선을 TV에 고정한 채 말한다. 음식은 맛있으셨어요? 아, 네. 잘 먹었습니다. 라며 카드를 내민다. 감사합니다, 하는 사장의 인사가 귓등을 치고 문을 나서며 나는 패배감을 느낀다. 불편한 걸 남에게 잘 못 말하는 성격이다.
내가 불편한 것보다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게 더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30년 동안 할 말을 감추고 살아왔으니, 혼자 불편해하고 마는 게 익숙할 정도다. 속임수가 많은 세상에서 이렇게 살면 페널티가 크단다. 성공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할 말은 하고 살라던데, 그렇다고 당장 불편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팀장에게 달려가 저 PC가 너무 느리고 탕비실엔 우유가 떨어져서 불편해요, 라며 투덜대지 않고도 나는 여태껏 디스크 조각 모음을 하고, 우유 대신 두유를 먹으며 불편할 수도 있는 일상에 순응해 왔다. 하면 좀 더 편해질 걸 못 한다고 삶이 바닥을 기진 않는다.
문득 자괴감이 드는 건 혹시 나만 이런 게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 때문인데, 내가 못 하는 걸 남들은 다 한다고 속단할 필요 없다. 정말 그럴까 싶으면 이 책을 펼쳐 보자. 너도 그걸 못 해? 나는 심지어 이런 것도 못 해. 라며 자기가 못 하는 것 스물네 가지를 엮어 책을 만들었다. 맞아! 나도 못 해, 라며 공감하다 보면 일상에서 느낀 패배감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다.

[832호 - Weekly culture]
#832호#832호 weekly culture#832호 대학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