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다정한 그림처럼 산다는 것 , 일러스트레이터 키미앤일이
그림처럼 살아가는 부부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터 키미앤일이(KIMI&12)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생각했다. ‘저 그림 속 사람들처럼 다정하게 살고 싶다.’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을 주로 그리는 그들은 과감한 색상 표현과 이국적인 그림체로 많은 팬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부부 일러스트레이터다. ‘키미앤일이’의 ‘키미’는 그림을 그리는 아내 김희은에서 따온 이름이고 ‘일이’는 디자인을 하는 남편 김대일에서 따왔다. 생기 넘치는 그림에 끌려 작품을 찾아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남해에 살고 있고, 『바게트 호텔』이라는 그림책을 냈으며 최근 그림책 속 호텔의 모습을 구현한 콘셉트 숍을 열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그림대로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고 싶어 날 좋던 가을에 남해로 갔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비결
남해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서울과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죠.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신 거예요?
남해에 오기 전엔 부산에서 저희 둘이 함께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부산에 있을 때 너무 많은 일을 하고, 그 많은 일들이 한 번에 몰리다 보니까 영혼이 피폐해지는 거예요. 감성의 에너지가 100이 있다면 그것들이 점차 줄어들어 0이 된 상태에서 계속 작업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죠. 에너지가 많이 떨어지다 보니 더 이상 여행을 가거나 좋은 전시를 보는 걸로는 충전이 안되는 지경에 도달했어요. 고민을 하다가 예전부터 동경하던 시골의 삶을 살아보자는 결론에 도달했고 남해라는 조용한 곳으로 이주를 결심했어요.
남해에 와서는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도시에서의 생활보다 한결 심플해졌어요. 도시보다 누릴 것이 많이 없다 보니 삶이 굉장히 단순해졌습니다. 눈과 귀를 자극하는 것들이 많이 없어지면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신기하게도 이 편이 훨씬 더 좋은 것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남해에 와서 여유를 가지고 일하는 모습이 도시의 현대인들에게는 낯설어 편견이 생기거든요. <효리네 민박> 속 이효리처럼 돈이 아주 많아서 가능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희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어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지원금이나 대출 제도를 잘 활용할 뿐 돈이 많아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에요. 다만 저희가 다른 점이 있다면, 고민을 오래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실현시킬 방법만 찾는 거지 다른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아요.

존중하고 존중 받는 마음
『바게트 호텔’』라는 그림책을 현재 2권까지 내고, 최근 8월에 그림책 속 공간을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한 숍을 여셨어요. 오픈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운영을 해보니 어떠세요?
이곳은 저희가 생각한 가상 공간인 ‘바게트 호텔’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호텔의 로비가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만든 콘셉트 숍이에요. 오신 분들이 그림책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 같다며 즐거워하길 바랐는데, 의도대로 그런 분도 많이 계시지만 대다수에게는 일반적인 카페처럼 인식이 되어 조금 아쉬운 마음이에요. 그래서 10월 말 이후에는 이 공간을 책 읽는 공간으로 바꾸려고 해요.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는 분들이 이 공간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숍에서 팔고 있는 굿즈가 독특하더라고요. ‘남해’라는 글자가 적힌 굿즈도 있고요. 책 속 ‘바게트 호텔’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호텔 콘셉트에 나온 것들을 모티브로 제작을 했어요. 책이 나올 때마다 굿즈도 계속 추가되겠죠. ‘바게트 호텔’의 호텔 용품 외에도 키미앤일이에서 제작한 포스터 등 여러 굿즈들도 준비해뒀어요. 남해만의 기념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남해 관련 제품들도 만들었습니다.

그림책 『바게트 호텔』은 어떻게 그리게 된 건가요?
오래전부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종이에 메모해 왔어요. 다양한 감정을 가진 여러 인물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장소로는 ‘호텔’이 제격이었죠. 저희가 워낙 호텔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장기 투숙을 하며 조식을 먹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호텔을 배경으로 한 뒤에는, 호텔 이름은 좀 의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바게트 호텔 같은 건 어떨까 하면서 메모한 그대로 이름을 정해버렸네요.
내신 책 『바게트 호텔』을 보면 투숙객인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관찰만 할 뿐, 그 사람의 속내나 행동의 계기를 알려주진 않거든요. 왜 그렇게 그리셨나요?
사람들은 타인의 어떤 행동을 볼 때 이건 이래서 그런 걸 거야, 하고 짐작을 해버리잖아요. 그렇게 넘겨짚는 행위를 책에서라도 빼고 싶었어요. 저 또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 의도를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걸 스스로도 너무 싫어해요. 나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저 사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텐데 넘겨짚지 말자고 생각하거든요. 상대방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궁금해하지 않는 게, 무관심이 아니라 존중에서 나오는 거라는 걸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서
두 분이 함께 작업을 하게 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디자인을 업으로 하다 보니 답답한 게 많았어요. 독자적으로 기획을 하는 게 아니고 클라이언트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죠. 그런 과정을 겪다 보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돈을 아무리 많이 벌고 대우를 잘 받더라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았죠. 당시 키미는 부산에서 혼자 그림 작업을 하고 있었고 일이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 하며 편지로 연락하고 있었는데 그때 즈음 함께 작업을 해볼까, 하고 말을 꺼냈다가 자연스럽게 같이하게 됐어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스튜디오의 슬로건이 ‘in search of lost joy’ 잖아요.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잃어버린 기쁨을 찾길 소망한다고 쓴 글을 봤는데 그런 마음이 작품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나요?
저희 둘 다 술을 못 마셔요. 클럽 같은 곳도 좋아하지 않고요. 텔레비전도 잘 안 봐요. 아침에 일어나면 차 마시고 멍 때리고 드라이브 가서 바닷가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고 그런 잔잔한 순간의 연속이거든요. 보드 타고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구경하고 이런 일상이 너무 좋아요. 그런 잔잔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이 우리 그림으로도 다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또 40~60년대 작품의 색감과 느낌을 좋아하는데 그런 오래된 것들 특유의 분위기도 작품에 묻어나는 것 같고요.

궁극적으로 키미앤일이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닿길 바라세요?
기본적으로 저희는 ‘착한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거든요. 요즘 일러스트나 그림들을 보면 굉장히 자극적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자극적이란 말은 억눌린 것이 많다는 뜻이잖아요. 저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향후 목표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사람들의 책장에 우리가 만든 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조만간 운영하게 될 독서클럽에서는 회원들에게 정성을 다할 거예요. 예를 들어 저희 숍에서 제품을 사시면 저희가 하나하나 일일이 손으로 포장을 해드리거든요. 그건 우리만의 감사 표현인 거예요.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히 대하고 싶은 저희 마음을 그들도 느끼게 하고 싶어요.

[832호 -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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