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난 왜 착한 사람 병에 걸렸을까?
애들아 사실 나 안 착해…
친구와 이야기하다 ‘넌 너무 착해'라는 말을 들었다. 의외였다. 내가 착하다고? 난 원래 착한 애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렸을 땐 못됐다는 말을 듣곤 했다. 하기 싫은 일은 ‘싫다’고 안 했고, 억울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는 소리 지르며 따졌다. 그런데 커가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참는 게 이기는 거’라고 배웠다. 실제로 내가 참으면 주변 모두가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착한 아이로 자랐다. 그런데 요즘 난 좀 답답하다. 해야 할 말도, 거절도 못 하는 게 바보 같아서 속상하다. 왜 자신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착한 척을 하는 걸까? 나만 이런 걸까?
그래서 평소에 착하다고 소문난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떤 마음으로 사니?
그래서 평소에 착하다고 소문난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떤 마음으로 사니?
1. 노트필기 빌려주기 싫다고 왜 말을 못 해

사람들은 시험 기간만 되면 날 찾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노트필기를 찾지. 얼굴만 아는 동기, 딱 한 번 말 섞어본 선배, 심지어 내 옆자리에 앉았던 타과생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축제를 하나 몸살이 나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악착같이 정리한 필기를 그들은 단 한마디로 가져가. ‘미안한데, 0월 00일 필기 좀 보여줄 수 있어? 그날 나 자느라고 수업 못 가서.” 심지어 시험공부를 위해 요점정리 해 놓은 페이퍼를 복사해달라는 놈도 있어.
솔직히 까놓고 말해 주기 싫어. 하지만 이기적인 애처럼 보일까 봐, 치사한 애로 보일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빌려주는 거지. 그렇게 주기 싫으면 말을 하지 그랬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 전에 곤란한 부탁은 하지 않는 게 예의 아닌가.
-숙명여자대학교 K
2. 내 기분 따위 개나 줘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조별과제 팀장을 맡았어. 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우리 팀원님들은 꼭 회의 직전에 급한 일이 생기시더라. 바쁜 와중에 열심히 회의 준비해서 가고 있으면 갑자기 카톡이 막 와. ‘죄송한데 오늘 가족 행사가 잡혀서’, ‘어제 응급실에 갔다 와서’.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아프다는데, 일이 생길 줄 몰랐다는데 뭐라고 해. 괜찮다고 몸조리 잘하시라고 했어. 날짜는 다시 잡자고. 나는 매번 이런 식이야. 늘 내 기분이나 상황보다는 상대가 먼저. 착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야. 저렇게 말해 놓고 속으로는 욕 엄청 하거든.
-홍익대학교 Y
3. 출석까지 대신해줘야 하나

지난 학기에 지루하기로 소문난 수업을 들었어. 아침 수업이라 다들 힘들어했는데, 어느 날 같이 듣는 친구가 대리출석을 부탁하는 거야. 몸이 안 좋다고.
일단 알겠다고는 했는데, 막상 너무 떨리고 무서웠어. 옳지 않은 행동이니까 하고 나서도 마음이 불편했고.
근데 걔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에 또 부탁하더라. 진짜 한 번만 부탁한다고, 이번에 출석 안 되면 자기 F라고. 결국, 해 주면 안 되는 일인 건 알지만 해줬어. 거절 못 하는 것도 정말 병이야 병.
-홍익대학교 M
4. 궂은일은 왜 나만 하는 거 같지?

친한 친구랑 카페 알바를 같이 한 적이 있어. 내가 먼저 일하다가 친구를 꽂아 줬지. 처음에는 친구랑 같이 일하니까 재밌고 좋았는데, 나중엔 후회했어.
아무래도 먼저 일한 내가 손이 빠르니까, 친구가 할 일을 대신 해주고 그랬었거든. 쓰레기통 비우고, 설거지하고 그런 거. 근데 얘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야. 여유가 있어도 절대 궂은 일은 안 해. 언젠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도 쓰레기통 안 비우고 버텼는데, 걔가 나한테 쓰레기통은 언제 비우냐고 물어보더라고.
정말 화났는데, 친한 사이고 당분간은 알바 하면서 t매일 얼굴 봐야 하니까 그냥 참았어. 솔직히 너희도이럴 때 있지 않아? 걔가 너무 얄미운데 그걸 지적하면 나만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게 되는 거.
-한국외국어대학교 J
5. 난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 친구가 있었어. 걔가 전화를 자주 하더라고. 좀 의아하긴 했지만, 나도 피할 게 없으니 자주 통화 했지. 근데 통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빈도가 심하게 잦아지는 거야. 내용도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어. 집안 문제, 애인과의 갈등. 어릴 적 트라우마 등등.
처음에는 좋았어. '나한테 속마음도 털어놓는구나' 싶어서. 근데 내가 아무리 달래 줘도 끝이 없는 거야. 그리고 내 얘긴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해. 잘 안 들어주면 서운하다면서 삐지고. 어떤 날에는 나한테 화풀이까지 하더라고. 그때 느꼈어. 얜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걔한테 얘기했냐고?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걔랑 멀어질까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 했어. 덕분에 한동안 나도 덩달아 우울증에 시달렸었지.
-서울여자대학교 L
6. 돈 이야기하기 너무 어려워

친구랑 있을 땐 웬만한 건 그냥 내가 내는 편이야. 계산할 때 서로 눈치 보는 것도 불편하고, 나중에 다 돌아오겠지 싶어서. 근데 요즘엔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어. 친구 하나가 나랑 있을 땐 돈을 절대 안 쓰는 거야. 처음엔 그냥 기분 좋게 냈는데, 만날 때마다 내가 계산한다는 걸 인식하니까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 어느 날은 나도 생활비가 부족해서 장난스럽게 “오늘은 네가 사라”고 했는데 정색을 하더라? 자기는 나한테 계산해달라고 한 적 없대. 맨날 네가 사길래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라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뭐라고 대답도 못 하고 그냥 미안하다고 했어. 그 이후로는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친구들한테 돈 얘기를 못 하겠어. 누가 돈을 빌려도 갚으라고도 못 하겠고. 고작 그 돈 가지고 유세 떤다고 생각할까 봐.
- 한양여자대학교 P
7. 먹기 싫지만 말을 못 하겠다

대학 와서 제일 힘들었던 게 다 같이 밥 먹는 거였어. 근데 나는 장이 약해서 음식을 조심해야 하거든. 근데 단체로 있으면 보통 메뉴를 통일하잖아. 거기서 집에서 하던 대로 음식을 가려 먹으면 괜히 까탈 부리는 것 같고. 그래서 다 잘 먹는 척하다가 탈이 자주 났어.
반대로 가끔 나도 주도해서 뭔가 먹으러 가자고 하고 싶은데, 그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말을 못 하겠어. 매번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 억지로 먹으러 가고,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돈은 똑같이 나누어내야 하니까. 솔직히 좀 아까워. 그치만 원만한 친구 관계를 위해 참아야겠지.
–성균관대학교 H
Director 김혜원
#고민#대학생활#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