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내가 나를 생각하는 시간은 하루 중 몇 분일까

‘나와의 관계’가 건강해야 다른 관계도 건강할 수 있다
윤대현 정신의학과 교수
사람 만나는 걸 즐기는 사람도,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 관계를 필요로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을 꺼낼 필요 없이, SNS만 봐도 그렇다. 버튼 하나로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바로 알 수 있으니 SNS에 빠질 수밖에. 관계 맺기를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욕구다. 다만, 남과의 관계에만 매달리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윤대현 정신의학과 교수는 ‘나와의 관계’가 건강해야 다른 관계도 건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교수님 뵈면 꼭 묻고 싶은 고민이 있었어요. 전 해야 할 일이 많으면 꼭 딴짓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왜 이러는 걸까요?
불안 때문이에요. 시험을 잘 봐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시험을 못 봐요. 불안이 과도하면 그걸 처리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쓰게 되거든요. 지금 할 일이 많다는 부담감 때문에 그 부담감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거죠. 그래서 불안을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해요. 불안은 마음을 바쁘게 만들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다들 예전보다 더 불안을 느끼는 것 같아요.
『피로사회』라는 책도 있잖아요? 피로사회가 곧 불안사회예요. 그런데 이 불안은 과도하지만 않으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해요. 시험 볼 때도 적당한 긴장이 있어야 잘 볼 수 있잖아요. 불안은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는 거예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거죠. 너무 미래만 생각하다가 현재가 없어진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반대로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데에도 에너지를 많이 쏟아요.
미래에 대한 염려가 너무 클 때 생기는 건 불안이고요, 과거를 분석하는 데에만 매달리다 보면 우울이 찾아와요. 과거 때문에 불안하진 않잖아요. 그건 우울한 거지. 과거에 대한 후회든, 미래에 대한 걱정이든, 현재가 없어질 정도로 지나치면 안 좋아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요, 취업한 친구를 보면 배가 아픈 거죠.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가요?
취업한 친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은 게 아니에요. 부러워하는 자신을 보고도 웃을 수 있는 게 자존감이 높은 거죠. 자연스러운 감정이잖아요. 저도 아끼는 후배한테 책 한 권 내라고 조언한 적이 있는데, 저보다 많이 팔리니까 너무 밉더라고요.(웃음) 질투는 내가 더 나아지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에요. 요즘 자존감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보니, 조금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다 ‘자존감이 떨어져서 그런가?’ 걱정해요. 누가 나보다 잘되면 질투할 수도 있고, 연인이랑 헤어지면 속상할 수도 있잖아요.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런 날 품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자존감이 높은 거죠.

힘든 일이 있을 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또 우울해져요. 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싶어서.
그건 ‘행복 중독’이에요. 좋은 일이 있느냐 없느냐를 성공한 인생의 판정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면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해요. 종교인이건 철학자건 누가 그렇게 얘기해요? 다들 인생엔 굴곡이 있고, 힘들지만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말하잖아요. 사람들은 힘들 때 스스로를 한 번 더 죽이거든요. ‘난 이렇게 화만 내고 항상 우울할까….’ 힘들어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럴 수 있다고 토닥여줘야 돼요. 나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간단해 보이는데 쉽지가 않아요.
나를 사랑하는 거, 엄청 어려워요. 나를 사랑하려면 우선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잖아요. 근데 막상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몰라요. 2013년 통계를 보면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질문에 90%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대답해요. 취미가 없죠. 취미는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일종의 필살기인데, 이게 멸종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거절 못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남 신경 쓰느라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모르니까 거절을 못 하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과의 연애도 많이 해봐야 느는 것처럼, 나랑도 연애를 많이 해봐야 돼요.

책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쓰신 것도 그런 의미겠네요. 요즘 20대가 SNS에 올리는 글이나 사진도 ‘나만 생각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들은 적이 있어요. SNS 계정을 만들어서 여기에 글을 남기거나 셀카로 나를 표현했대요. 여기까진 나만 생각하는 시간이죠. 근데 반응이 좋으니까 더 멋있게 보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며칠 동안 한창 열심히 했는데, 문득 외롭더래요. 어느 틈에 ‘남만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에요. SNS 자체의 문제는 아니에요. SNS건 뭐건 항상 남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그런 거예요. 온전히 나에 집중할 시간이 없죠.

누가 SNS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SNS에 중독됐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실마저 SNS에 또 올리고….
SNS는 곧 관계거든요. 관계에 대한 갈증은 인간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예요. 괜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겠어요. 사실 기술적으로는 훨씬 효과적인 관계망이죠. 중독되는 것도 당연해요. 쾌감이 있거든요. 전화에 중독된 사람이 있었나요? 없었잖아요. 그만큼 SNS가 주는 소통 경험을 좋아하는 거예요. 그만큼 반대급부로 안 좋은 영향도 미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죠. 그것 때문에 이 좋은 소통 수단을 안 쓸 필요는 없거든요.

 

수다를 떨면서 일시적으로나마 불안이 해소되는 것도 SNS와 비슷한 원리인가요?
그렇죠. 비즈니스 대화도 아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내 속내를 털어놓는 게 곧 수다니까. 우린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때 엄청 위로를 받거든요. 전 그래서 여성들이 10년 더 산다고 생각해요. ‘수다’라고 하면 말 많은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말의 양이 중요한 건 아니에요. 아무 말 없이 앉아 들어주는 친구한테 더 위로를 받기도 하니까요.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면 눈만 쳐다봐도 위로가 되죠.

한창 하소연을 하고 나면 걱정되기도 해요. 얘도 질리지 않을까?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고 느끼진 않을까?
질리죠. 누군가 중요한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을 때 친밀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계속 힘든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이것도 나눠야 돼요. 너무 내 얘기만 하지 말고 상대방 이야기도 들어주면서. 속내를 잘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기다려줄 줄도 알아야 돼요. 한쪽은 말만 하고 한쪽은 듣기만 하는 관계는 깨질 가능성이 많아요. 배려와 의존성의 균형이 잡혀야 그 관계가 오래 갈 수 있죠.

사는 게 너무 바빠져서인지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그럴 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할지, 뭐라도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어요.
번아웃이 왔을 때는 충전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충전이 되지는 않아요. 잠시 편했다가 금방 다시 권태가 찾아오고, 그럼 더 힘들어져요. 내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잘 즐겨줘야 충전이 돼요.

그래서 멀리 여행 가는 친구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바캉스’의 라틴어 어원이 ‘자유를 얻는다’거든요. 여행의 거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집 앞에 나가도 자유를 얻으면 충전이 되고, 남극을 가더라도 자유를 못 얻으면 충전이 안 돼요. 만약 요즘 대책 없이 멀리 가고 싶다면 오히려 그만큼 마음이 지친 것일 수 있어요. 마음이 지치면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고, 현재가 싫어지고, 그러니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거죠. 그건 멀리 가도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머리만 더 복잡해지고. 그럴 땐 오히려 가까운 국내 여행이나 기차 여행, 이런 게 더 좋을 수 있죠.

심리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상담 받는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던 인식도 바뀌고 있고, 또 그만큼 힘든 사람들이 많아졌나 싶기도 하고요.
무엇이 되었든 자기 마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게 나쁜 건 아니죠. 저는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할 만큼 마음이 무너졌다는 걸 알 수 있는 위험신호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기능이 떨어져요. 의욕도 없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그러니 공부도 안 되고. 아니면 대인 관계 능력이 예전에 비해 심하게 떨어진다든지. 그런 증상이 꽤 지속되면 전문가를 만나볼 필요가 있겠죠.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해요. 잠이 안 온다, 머리가 아프다, 소화가 안 된다 등등. 이게 마음 때문에 그럴 수도 있거든요.

마음을 돌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추천해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사람, 자연, 문화를 얘기해요. 근데 이게 오늘부터 내 마음을 돌봐야지, 해서 갑자기 되는 게 아니에요. 평소에 꾸준히 노력을 해야 돼요. 사람이라고 하면 오래 만난 친구가 더 좋을 것 같지만 때로는 새로 사귄 친구가 마음 터놓기에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자연을 즐기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고요. 자전거를 탈 수도 있고, 등산을 할 수도 있고, 조용히 혼자 낚시를 할 수도 있고. 문화도 마찬가지죠. 책 읽는 취미가 쉬울 것 같지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려요. 책뿐만 아니라 영화든 노래든 그림 그리기든 내 걸 찾아야죠.

그럼 거꾸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꼭 피해야 할 것이 있나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을 피해야 돼요. 목표가 잘못된 거죠. 마음의 평화는 유지가 안 돼요. 안 되는 걸 하려고 하니까 다 불행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항상 평정심을 가져야 성숙하고 좋은 거야, 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우린 계속 희로애락,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살죠. 인생 자체가 그러니까. 근데 거기서 나 혼자 마음을 편안히 먹고 살겠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예요. 마음의 기복을 서핑 타듯이 즐겨야지, 이런 생각이 훨씬 도움이 돼요.

[834호 - interview]

Photographer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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