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사랑에 빠진 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생각했다. X됐다…….
사랑에, 빠졌다. 덜컥. 전기장판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생각했다. X됐다……. 그렇다. 내 사랑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한다. X됐다. 계주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총성은 시합의 시작에 울리지만, 내 경우엔 이미 조금 달린 후에 울린다는 거다.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X됐다.
나는 그걸 언제 깨달았을까? 관심, 미묘한 호감, 약간의 애정, 그리고 사랑. 혈기 넘치는 20대에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관심의 대상이다. 미묘한 호감을 가지는 데는 적당한 계기가 필요하다. 가령 취향이 잘 맞는다든가. 거기서 충분한 시간과 운이 주어진다면 약간의 애정 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다. 여기까지 보통 나는 진행 단계를 자각한다.
대충 이쯤 왔구나. 그런데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은 언제나 헛디딘 발처럼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알게 ‘된다’. 발은 이미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고 바지에도 흙탕물이 튀었다. 나는 질척거리는 웅덩이에 한쪽 발을 담그고 그저 난감할 뿐이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번 깨달음은 그 사람의 가장 못생긴 얼굴에서 왔다. 시험 기간에 맞은편에서 회색 후드를 덮어쓰고 쩍 하품을 하는데…… 어쩜 저렇게 못생겼을까? 현타가 올 정도의 못생김이었다. 머리는 감지 않아 떡지고, 충분히 자지 못해 피부는 거칠고. 모르긴 몰라도 가까이 가면 냄새도 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귀엽더라는 거다. 으 못생겼어, 가 아니라 어유 못생기기도 했지, 라는 거다.
나는 어느새 그의 못생김을 경멸이 아니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 저는 세상에 못생겨도 귀여운 건 고양이만 가능한 줄 알았답니다. 사랑에 빠진다. 얼마나 유치 찬란한 표현인가. 어린애 같고 평소 나의 철학과도 한참 거리가 있는 표현이다.
무릇 사랑에 대해 지적이고 이성적이며 알랭 드 보통과 에리히 프롬을 섭렵했다면 사랑이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려야 하는 법. 사랑에 ‘빠지는’ 건 일시적이다. 어차피 호르몬 분비는 몇 개월 이내로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기타 등등.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설파한 성숙한 사랑에 대한 이론들. 그리고 그 못생긴 하품 앞에서, 사랑에 대한 지성적 철학 탑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는 황홀했다. 물론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 그 이후의 사랑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사랑은 다른 모든 감정들처럼 운명보다는 서로의 노력과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게다가 흔히 우리는 사랑이 무엇보다도 특별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균열도 크게 보며 이 관계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두려워한다. 따라서 엄격하게 따지자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사랑에서 아주 미미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는 건 얼마나 달콤한지. 솔직히, 너무 달콤해서 빠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경계해도 피할 수 없는 함정처럼.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한심한 꼴이 되게 하고, 상대방의 가장 못난 모습을 보면서도 하루 종일 바보처럼 웃게 할 것이 분명한데도. 그동안 수없이 되새긴 다짐들과 교양서 그리고 사랑에 대한 논쟁들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임에도 불구하고. X됐다…… 뒤엔 언제나 ‘에라, 모르겠다’는 체념이 따라온다.
나는 그걸 언제 깨달았을까? 관심, 미묘한 호감, 약간의 애정, 그리고 사랑. 혈기 넘치는 20대에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관심의 대상이다. 미묘한 호감을 가지는 데는 적당한 계기가 필요하다. 가령 취향이 잘 맞는다든가. 거기서 충분한 시간과 운이 주어진다면 약간의 애정 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다. 여기까지 보통 나는 진행 단계를 자각한다.
대충 이쯤 왔구나. 그런데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은 언제나 헛디딘 발처럼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알게 ‘된다’. 발은 이미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고 바지에도 흙탕물이 튀었다. 나는 질척거리는 웅덩이에 한쪽 발을 담그고 그저 난감할 뿐이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번 깨달음은 그 사람의 가장 못생긴 얼굴에서 왔다. 시험 기간에 맞은편에서 회색 후드를 덮어쓰고 쩍 하품을 하는데…… 어쩜 저렇게 못생겼을까? 현타가 올 정도의 못생김이었다. 머리는 감지 않아 떡지고, 충분히 자지 못해 피부는 거칠고. 모르긴 몰라도 가까이 가면 냄새도 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귀엽더라는 거다. 으 못생겼어, 가 아니라 어유 못생기기도 했지, 라는 거다.
나는 어느새 그의 못생김을 경멸이 아니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 저는 세상에 못생겨도 귀여운 건 고양이만 가능한 줄 알았답니다. 사랑에 빠진다. 얼마나 유치 찬란한 표현인가. 어린애 같고 평소 나의 철학과도 한참 거리가 있는 표현이다.

무릇 사랑에 대해 지적이고 이성적이며 알랭 드 보통과 에리히 프롬을 섭렵했다면 사랑이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려야 하는 법. 사랑에 ‘빠지는’ 건 일시적이다. 어차피 호르몬 분비는 몇 개월 이내로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기타 등등.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설파한 성숙한 사랑에 대한 이론들. 그리고 그 못생긴 하품 앞에서, 사랑에 대한 지성적 철학 탑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는 황홀했다. 물론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 그 이후의 사랑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사랑은 다른 모든 감정들처럼 운명보다는 서로의 노력과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게다가 흔히 우리는 사랑이 무엇보다도 특별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균열도 크게 보며 이 관계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두려워한다. 따라서 엄격하게 따지자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사랑에서 아주 미미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는 건 얼마나 달콤한지. 솔직히, 너무 달콤해서 빠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경계해도 피할 수 없는 함정처럼.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한심한 꼴이 되게 하고, 상대방의 가장 못난 모습을 보면서도 하루 종일 바보처럼 웃게 할 것이 분명한데도. 그동안 수없이 되새긴 다짐들과 교양서 그리고 사랑에 대한 논쟁들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임에도 불구하고. X됐다…… 뒤엔 언제나 ‘에라, 모르겠다’는 체념이 따라온다.
[834호 - 20's voice]
writer 송영희 syh95914@naver.com농담과 산책을 가장 좋아합니다.
#20's voice#834호#834호 20's vo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