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음악 하는 남자는 좀 다를 것 같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니가 음악 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애 사실을 알렸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이랬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예술과는 거리가 아주 먼 지극히 평범한 닝겐이었으니.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음악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뮤지션들은 왠지 자유분방할 것 같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런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척 했지만, 내심 기대했다.

나와는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 내겐 없는 걸 가진 사람. 그런 그를 통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과 동경. 하지만 내 예상은 철저히 엇나갔다. 그는 자유롭다기보단 반복되는 일상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현관문을 잠그고 나왔는지 내내 걱정하는가 하면, 남들의 평가에 한없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한번은 ‘곡을 쓸 때 어디서 영감을 얻냐’고 물었는데(예술가스러운 답변을 기대하며), 돌아온 답은 이랬다. “음, 마감 기한?”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랑 비슷하네! 내가 보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영화 <루비 스팍스>의 주인공 캘빈이 딱 내 심정이었을까.

천재 작가인 그는 우연히 꿈에서 한 여자를 만난 후,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내려간다.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성격, 그리고 ‘루비’라는 이름까지. 그러던 중 루비가 마법처럼 그의 앞에 나타난다. “자기야”라고 부르면서. 자기 소설의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니 이 무슨 해괴한 판타지인가. 캘빈의 상상으로 만들어졌지만 ‘루비는 루비’였다. 나름의 욕구를 가진 한 사람.

   

그러자 캘빈은 관계에 균열을 느끼며 그녀를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그가 원하는 대로 달라지는 루비를 보면 꽤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이는 우리가 상대에게 가진 기대가 얼마나 허상에 불과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캘빈은 ‘루비’와 언젠간 이별을 해야할 것이다. 그건 실제가 아니니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어째서 이다지도 어려운 일일까. 내 연인이 특별할 거라 생각하고 사랑을 시작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려면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영화는 담담히 알려준다. 머릿속에서 아무리 정교하게 상대를 그려본다 해도, 그건 그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그에게서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되겠지. 나와 같은 질투심, 열등감, 심약함 같은 것들. 그때 이런 질문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지금이 혹시 내가 만들어놓은 ‘루비’와 이별해야 할 때는 아닐까?

- 애인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 

[835호 - Weekly culture]

intern 김영화 movie@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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