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이 세상에 잘못된 몸 따위는 없다
내 몸은 당신의 보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살 찐 모습을 부끄러워해야 하나요?
“너는 진짜 한다면 하는 애구나. 대단하다!” 엄마마저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올해 초, 매달 옷을 새로 사야 할 만큼 빠르게 줄어드는 내 몸무게를 보고 한 말이었다. 전교 1등짜리 성적표에도 만족한 적 없었던 부모님이 나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다이어트 전, 153cm에 59kg이었던 내 몸무게는 생전 처음으로 자취와 해외 생활,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 얻은 훈장이었다. 그런데 이 훈장이 남들에게는 그다지 근사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금 과장해서 옆으로 두 배 늘어난 나를 가족이며 친구, 동네 주민들 가릴 것 없이 어찌나 안타까워하던지, 누가 봤다면 내가 유학에 실패하고 쫓겨 돌아온 줄 알았을 것이다.
논문을 쓰는 동안 나는 점심과 저녁을 십 분 안에 해치울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해결했다. 종내에는 머리를 감는 것마저 사치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바빴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설명해본들 ‘외모 관리를 포기할 정도로 학업이 바쁠 수가 있다’는 자체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 시절, 엄마는 하루에 적어도 두 번씩 꼬박꼬박 다이어트 한의원에라도 가자는 말을 하며 눈물까지 비쳤다. 그 압박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귀국 직후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실은 전혀 실행하고픈 의지가 없었다. 3년 동안 한국을 떠나 있으면서 그리웠던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데!
또 공부하다가 힘들 때면 단것을 먹던 습관도, 밤에 집중이 더 잘되기 때문에 늦게 자던 생활 패턴도 버릴 수 없었다.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이어트가 공부에 방해를 받으면서까지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매주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주사를 맞았지만 살은 1kg도 빠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다 드셨죠? 돌아오신 지 한 달도 넘었는데 드시고 싶은 거 이제 다 드셨잖아요.” 다이어트 한의원의 원장님은 매주 나를 야단쳤다. 성인인 나를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아이 대하듯 훈계하는 것이 기분 나빴다. 나는 결국 결제를 마친 주사도 포기하고 한의원에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얼마 전, 당시보다 훨씬 줄어든 몸으로 다시 그 한의원에 찾아갈 일이 있었다. 돌아온 탕아를 반겨주듯 한의원 직원들이 모두 나와서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아침 열심히 운동하고 외국어 공부하고, 밤늦게까지 글을 쓰던 내 모습에선 느끼지 못했던 대단함이 체중 감량에 성공한 것을 보고서는 느껴졌단 말인가? 살이 두 배 가까이 찌도록 공부만 할 수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또 그렇게 독하게 살을 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공부에 열중했다는 말을 하면 ‘핑계도 좋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그렇게 찐 살을 열심히 뺐다는 얘기까지 하면 하나같이 ‘정말 존경스러워요’라는 반응이 따라왔다.
기어이 얻어낸 ‘날씬함’은 다른 어떤 성취보다도 더욱 강렬하고 달콤하게 존중 받았다. 다이어트가 평생 내가 해 온 일 중 가장 대단한 일도 아니었건만.

# 체중 감량에도 기쁘지 않은 이유
어쨌든 당시 한의원을 그만둔 후, 혼자 운동을 계속해서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운동으로 몸무게는 줄어들었지만 근육량은 더 많아졌기 때문에 더 이상 기성복 매장에서 내 몸에 맞는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욕으로 쓰지….

옷에는 입이 없지만, 많은 말을 하지 않던가? 적어도 이게 사람들이 바라는 아름다움은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옷은 바뀌지 않으니, 몸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옷에 어울리는 몸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4개월 동안 혹독한 다이어트를 거쳐 16kg을 감량하는 데에 성공했다.
살을 빼고 난 후로는 확실히 왜들 그렇게 “다이어트, 다이어트”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엉덩이가 터질 것 같아서 못 입던 치마에 종아리가 끼어서 못 신던 부츠를 신게 되니 신이 났다. 하지만 다이어트가 가져다 준것은 만족감만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보이던 광고 모델들의 몸은 막상 따라하려고 보니 보통 마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씬하게 된 것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핏이 오히려 그들의 ‘우월한 유전자’만 실감하게 만들었다. 난 그들에 비하면 키도 작고, 몸통도 굵고, 다리도 너무 짧았다. 게다가 감량을 하면서 가슴도 엉덩이도 다 납작해졌다. 연예인들은 살을 빼도 S라인이던데…. 왜 아무도 나에게 이런 얘기는 해주지 않았을까?

‘노력하면 누구나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 산산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살을 빼고 나서 오히려 2% 부족하다는 느낌에 생전 처음으로 보톡스나 다른 미용 시술에 큰돈을 쓰게 됐다.
뚱뚱한 여자는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왜 그녀들이 남의 당첨 복권이나 되려고 열심히 살을 빼야 하는지 모르겠다. 노력은 결국 모욕을 듣는 사람의 몫이기에, 사람들은 공짜 복권을 긁는 기분으로 살을 빼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나 보다. 그런 잔소리는 뚱뚱한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버려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그렇게 해야만 일상적으로 듣는 몸매 평가에 무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의 결과를 좋게만 말하는 것은, 사람의 안이 아니라 겉만 보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내 주위의 사람들도 내가 그들이 던진 모진 말을 듣고 충격 받아 살을 뺐다면, 결국 나에게 ‘도움을 준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무책임한 생각이 어디 있지?
나는 남의 당첨 복권이나 되기 위해서 살아가기는 싫다. 노력하면 더 예뻐질 수 있다고 덕담의 탈을 쓴 강요를 하는 사람들을 앞으로도 보게 되겠지? 내 몸은 당신의 보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객관적으로 완벽한 몸매를 꿈꾸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잔인한 일인지 알아버렸다고. 그러니까 칼보다 위험한 줄자를 다른 사람에게 휘두르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이다.
[835호 - ㅇㄱㄹㅇ]
Intern 김영화 movie@univ.me Writer 도영원 i.youngwon.do@gmail.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젠더프리즘’이라는 코너에 글을 연재 중이신 도영원님의 글을 실었습니다.
#835호#835호 ㅇㄱㄹㅇ#835호 대학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