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환승 이별에 대한 변
너보다 따뜻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누군가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너에게 마음이 많이 떠났다는 걸. 넌 날 너무 춥게 했고, 가끔은 서럽게 했으며, 주변 사람들과 단절시켜 날 외톨이로 만들었다. 사실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나는 너의 한계를 깨달았고,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고대했다.
더 나쁘게 말해볼까. 나, 너 돈 때문에 선택했다. 그때 내게 가장 절실했던 건 돈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 포근함, 따뜻함, 그런 거 너는 모르지? 가끔 온화하게 날 품어줄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은 너무 찰나여서 불안했다. 얘가 언제 갑자기 돌변해서 냉기를 뿜어댈까.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달려가고 싶은데 그쪽도 정리해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하네. 그때까지만 네 품에 좀 더 있기로 한다. 몸은 너한테 있는데 마음은 온통 그쪽에 가 있는 거, 너도 알았으려나?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잘 해주려고 노력했는데,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순 없더라. 이제 너에겐 어떤 에너지도 쓸 마음이 들질 않는다.

네 속을 들여다보는 것, 널 돌보는 일 모두 다음 상대에게 떠넘기고 싶다. 나쁜 년이라고 욕해도 괜찮다. 지금 내 고민은 여기저기 자리한 내 흔적들을 어떻게 빠르고 효과적으로 치울까 오직 그것뿐인 걸. 그렇다. 이것은 집에 대한 이야기다. 조급한 성격의 소유자라 이사 한 달 반 전 새로운 집을 계약했다.
자비 없는 마포구의 집값 때문에 70년대에 지어진 ‘맨숀’에 들어가야 하나 억겁의 고뇌를 하던 중, ‘맨숀’과 가격은 비슷하지만 한일 월드컵 때 지어진 빌라를 만났다. 두둥!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한 명 또 보러 왔다는 말에 초조해져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구르다 다음 날 은행 영업 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계약금을 쐈다.


P.S. 아, 실제로 환승이별을 해보진 않았습니다.
[837호 - 독립일기]
illustrator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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