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불행
“거 봐, 난 안 될 거랬잖아.”


좋은 걸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의도치 않게 호들갑을 떨게 될 때가 있다. “꼭 가봐, 올해 먹었던 것 중에 거기가 제일 맛있었어!” 한껏 들떠 곧바로 식당 위치를 검색하는 친구를 보면, 갑자기 불안해진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하면 뭘 먹어도 실망할 텐데. 아차 싶어 뒤늦게 ‘밑밥’을 깐다. “근데 사실 쌀국수가 맛있어봤자 쌀국수이긴 하지….”
친구 입장에선 보라는(먹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리겠지만 내 마음은 한결 편하다. 누군가의 기대를 받는다는 건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호들갑은 무슨, 나에 대한 기대치를 높일 만한 말은 아예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대신 꾸준히 밑밥을 깐다. “난 안 될 거야, 아마.” “이번 생은 틀렸어.” 섣불리 기대하고, ‘실망했다’며 차갑게 돌아서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존감을 망가뜨리는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근거 없는 자신감’ 대신 ‘근거 없는 자기 비하’가 차라리 유용하다.

기대를 받았던 만큼, 승리를 꿈꿨던 만큼 패배는 더욱 아프다. 그런 빌리에게 피터(조나 힐)는 경기 녹화 비디오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거구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평소 안타를 친 뒤에도 천천히 달리던 타자다. 어차피 2루까지는 못 갈 테니까. 그런데 오늘은 안 하던 짓을 한다. 깊숙한 타구를 날린 뒤 2루까지 가야겠다는 마음에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2루에서 아웃될까 두려워 1루에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2루타, 3루타, 심지어 홈런을 쳤음에도 원래 내 자리인 것처럼 1루에만 머물렀다. 덕분에 크게 실망할 일은 없었지만, 관중들이 박수 쳐줄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이젠 내 배트와, 내 다리와, 내 운을 믿고 다음 베이스를 노려봐도 될 것 같다. 때론 뻥카가 현실이 되기도 하니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매트릭스 2>의 뻔뻔한 포스터 문구처럼.
[839호 - 영화 같은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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