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완벽한 비극에 대하여

나보다 덜 임팩트 있는 가난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날 아빠가 떠났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는 엄마와 나를 버리고 스님이 되겠다고 했다. 지난 오십 년은 당신 뜻대로 되지 않았으나 앞으로의 오십 년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비장한 말을 남기고 갔다. 엄마는 아파서 일을 그만뒀다. 병원에선 입원은 몇 주면 되지만 한동안은 회복에만 전념해야 된댔다.

일련의 사건들이 가져다준 변화는 간단하고 명확해 보였다. 나는 알바를 하나 더 시작했고, 아빠의 차를 헐값에 팔아 등록금을 냈고, 엄마는 화를 더 자주 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쌓인 피로로 인해 수업 시간에 조는 일이 잦아지고, 결석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자 깨달았다. 나는 공부도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학업을 멈추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자취방 월세와 공과금, 식비, 두 마리 고양이의 사료 값, 핸드폰 요금을 내고 나면 모을 돈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헐레벌떡 막차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어딘가 잘못된 듯 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친구는 똑똑한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이 있다고 소개해주었다. 처음엔 지원을 망설였다. 그것은 천재적인 두뇌로 금방이라도 하늘로 비상할 학생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환경에 날개를 묶였을 때를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내 옷에는 눈에 띄는 구멍도 없고, 성적표에는 필요 이상으로 다양한 알파벳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찾아본 장학금 신청서의 질문들은 대강 두 가지의 내용을 요구하고 있었다. 너는 얼마나 열심이며, 얼마나 비참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한 가지씩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평생 동안 일을 쉬어본 적 없는 엄마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 하나 장만하지 못했고, 지금은 병이 들어 실직 상태이다. 아빠는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 가족 중 누구도 소득원이 없어 당장 내야 할 등록금을 위해 유일한 재산인 차를 헐값에 팔았다.

나는 항상 생활비를 벌어가며 학업을 병행하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랐다는 판단으로 휴학계를 내고 매일 일하고 있다. 여기까지 써 나가다 나는 나의 가난이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느껴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이모의 이야기도 쓰기로 했다.


이모는 세 번의 이혼 후 정신이상자로 진단을 받고,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어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개체로서 나와 엄마의 손에 떠맡겨졌다. 좀 더 적을 만한 것이 없나 생각하며 한 줄 한 줄 더하고 있는데 어느새 나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앞에 명확히 실존하는 묵직한 가난은 그 글에서 너무도 지루하고 뻔한 어조로 비참하게 서술되고 있었다.

그곳에는 예쁜 원피스 한 벌을 사기 위해 산책 삼아 버스비를 아끼고, 때로는 비싸고 맛있는 밥을 먹는 사치를 부리고, 친구들과 적은 돈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 갖가지 방법들을 연구하고, 빛 좋은 날에는 잠시 수업을 빠져나와 산책을 하는 내 모습이 없었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TV에서 흔히 보았던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은 아이들이 벌로써 받는 운명과 같은 이야기였다. 사실 나의 이모는 굉장히 활발한 사람이다. 그녀는 부지런하고 손이 야무져서 김치를 맛있게 담갔고, 집 안을 예쁘게 가꾸었으며 주변 사람들을 챙겼다.

나의 어머니는 어린 나이부터 노동 전선에 뛰어들어 가정을 책임져야 했음에도 세상에 대한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에 명확한 해답을 내놓을 줄 아는 지혜를 가졌으며,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심신을 건강하게 길러준 훌륭한 어머니였고, 당신은 받아보지도 못한 대학 교육까지 받도록 해주었다. 아버지는 일면 무책임하게 우리를 떠났지만, 성실하고 훌륭한 아버지였으며, 나는 같은 인간으로서 그를 응원할 수 있었다. 비극은 쉬웠다. 비극은 이야기 자체가 아닌 앵글에 있었다.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경쟁에서 젖혀진 나보다 덜 임팩트 있는 가난들에 대해 생각했다. 신청서 위에서 죽어버렸을 수많은 희망의 순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가난하기 이전에 한 명의 학생으로서 캠퍼스를 누비고 있을 나의 친구들을 생각했다.

[843호 - 20's voice]

WRITER 양다솔 moojusim@gmail.com 온수동에 살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에 온수가 나오진 않아   
#20대 에세이#20대보이스#8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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