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자기 앞의 외로움

외로움, 모두의 것이자 각자의 몫
이도 저도 아니게 그냥 살고 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데, 문득 하염없이 착잡하고 슬퍼질 때가 있다. 학교에선 사람들과 데면데면 인사한다. 친한 친구들은 진작 휴학했다. 1학년 후배가 지나가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응, 그래. 안녕.” 쟨 늘 밝고 쾌활하다. 나도 1학년 땐 별명이 비타500이었는데 말이지. 좋겠다.

에너지 넘치는 새내기를 보면 왠지 모르게 씁쓸해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재미는 없고, 걱정만 많아진다. 마냥 조급하고 불안하다. 주변 친구들은 다 제 갈 길을 찾아간 모양인지 점점 보기가 힘들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져야 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퇴근 시간과 맞물렸다.

끝없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나무토막처럼 오도카니 섰다. 그리고 흐르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열차에 타서 사람들을 본다. 총기 없는 눈빛을 가진 대학생, 등이 구부정한 직장인,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노인. 그들은 공간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아주 좁은 자리를 겨우 지켜내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내가 있었다. 무거운 가방에 어깨를 짓눌린 채. 열차는 앞으로 가고 있는데 왠지 내 몸은 아직 하강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창밖에 보이는 하늘에 먹혀버리고 싶었다. 하늘이 범람했으면 했다. 마구 쏟아져 내렸으면 좋겠다. 파고드는 우울감에 문득 나만 그런가 하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았다.

사람들은 앉아서 졸거나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그러다 이따금씩 킥킥 웃는다. 웃던 사람이 나랑 눈이 마주쳤다. 순간 머쓱한지 눈을 피한다. 괜찮나봐. 그냥 다 좋아 보여. 그러니까 그렇게 깔깔거리지. 답답해. 누구라도 빨리 나를 이 우울감에서 구원해주길 바랐다.

   

아빠와 동생이 늦게 온다고 해서 엄마랑 둘이 외식을 했다. 오랜만에 갖는 둘만의 시간이었다. 많은 말이 오가진 않았다. “학교에서 별일 없었어?”, “뭐, 있을 게 있나….”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 화제를 돌렸다. 재미없는 하루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예전부터 엄마는 내 대학 생활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학교에 다녀오면 꼭 재밌는 일 없었냐고 묻곤 했다.

죄송하게도 요즘은 해줄 얘기가 없다.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잠시 산책을 했다. 앞장서 걷던 엄마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한마디 툭 던지셨다. “아, 외로워.” 단순한 혼잣말이라기보다 꽉 찬 마음에서 뭔가가 살짝 흘러넘친 것 같았다. 엄마는 자신이 한 말에 놀란 듯 흠칫하시더니 이내 담담해졌다.

하지만 그 말은 들은 나는 여전히 놀란 상태였다. “엄마도?” 엄마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외로워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엄마는 외로운 감정을 느낄 리 없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힘들다, 지친다.’ 흔한 투정 한 번 하지 않았기에. 그저 언제나 묵묵하게 할 일을 하는 모습만 봐왔기에.

지하철에서 처음 본 사람들을 대하듯, ‘괜찮겠지’ 하고 무심하게 넘겨버렸다. 실은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그저 참아내고 있던 건데, 꾹 담아두고 있던 건데.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쳤던 남자가 떠올랐다. 그도 사실 허탈한 마음을 달래고자 시시한 영상을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본의 아니게 사랑하는 엄마의 고백을 들어버렸지만, 그날 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씩 웃으며, “엄마, 나도 그래.”라고 말한 게 다다. 애초에 외로움은 구원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잠해지다가도 차오르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떠오른다. 그건 존재와 필연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었다.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퍽 진정되었다. 여전히 나는 외롭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스치듯 지나친 사람들부터 옆자리에 있는 친구,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까지. 참 쓸쓸한 기분이야. 그래도 너무 우울해하진 말아요. 우리는 그저 제 몫의 외로움을 감내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냥 덤덤히 맞아주자고요. 익숙한 친구를 대할 때처럼. 너, 또 왔구나.

[846호 - 20's Voice]

WRITER 김혜원 ganwlrog@naver.com , 겁이 많은데, 용감합니다.

PHOTO 정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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