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덕업 일치를 포기할 용기
내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용기다
한때, 나는 꿈도 취미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생 땐 ‘취미 = 공부 이외에 시간을 쏟는 행위’라는 강박이 심해서 책도 잘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가진 취미는 ‘영화 보기’였다. 영화를 정말 좋아했던 나는 70일 남짓의 방학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영화만 100편을 보기도 했다.
보다 보다 지쳐서 이젠 만들어봐야겠다, 싶은 생각에 영화를 만드는 동아리에 들어가 촬영과 편집도 배웠다. 언젠가부터 ‘영화감독’은 자연스레 내 꿈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가 마냥 좋아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되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영화감독이 되려니 꽤 많은 문제가 있었다. 난 사무실에서 앉아 일하기보단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써주지 않았다. 왜?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지인덕을 볼까 싶어서, 얼굴은 모르지만 건너 건너 아는 동아리 선배가 일하는 프로덕션에 지원해도 ‘미안하다, 고된 일이라 여자는 힘들다’는 말뿐이었다. 꽤 많은 거절을 마주한 나는 점점 영화계란 ‘배우가 아닌 이상 여자는 일할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일할 기회가 있어야 경력도 쌓고 인맥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첫 스텝부터 꼬인 것이다. 꿈을 포기한 결정적인 계기는 영화계에 만연한 성폭행 때문이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기 전에도 사실 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성차별에 둔감한 제작 환경, 남자 스태프의 성희롱, 그리고 끔찍한 성폭력. 업계 사람이 되기도 전에 정이 떨어졌다.
비겁할지 몰라도 나는 어떤 꿈이든 그런 환경에선 이루고 싶지 않았다. 맞서 싸워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왜? 나는 투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일을 하고 싶은 것인데? 그 이후엔 ‘영화’라는 끈을 놓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섰다.

영화 기자, 영화 배급사 직원 등 영화 현장에서 일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꿈꿔본 직업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그땐 몰랐다. 취미를 내 업의 전부 또는 일부로 삼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는 걸.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게 왜 불행이냐고? 다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지 않느냐고? 물론 그런 삶이 잘 맞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유명 영화 잡지 공채 준비를 위해, 현직 기자의 수업을 들으면서 영화가 내 업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분명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에 대해 글 쓰는 것도 즐겁고, 영화 콘텐츠를 읽고 보는 것도 참 행복하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취미가 ‘업’이 되니 혼란스러웠다. 내 유일한 취미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취미 시간은 곧 업무 시간이 됐다. 예를 들어, 영화를 그냥 볼 수가 없다.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는 영화관에서도 대사나 매력적인 장면을 메모해야 하고, 영화 리뷰를 봐도 그냥 넘길 수가 없으니 에버노트에 저장해놓기 바빴다. 아무리 좋은 영화여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이걸 소재로 쓰면 되겠다’라는 생각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영화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영화가 업이 되니 나머지 인생은 텅 비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대학 생활 4년 내내 나의 숙명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영화’를 포기할 용기를 냈다. 영화를 좋아했던 내 마음이 꿈을 꾸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나를 책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인생에서 더없이 중요한 걸 배운 것이었다.
나는 덕업 일치가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걸. 안 되는 걸 포기하면 편해진다는 걸. 누군가가 말했다. 포기도 용기라고.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아까워서 포기하지 않는 것보다 내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용기라는 말일 테다. 그러니 나처럼 꿈을 포기할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더 도전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번엔 포기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포기 또한 박수 받을 만한 선택이니까.
보다 보다 지쳐서 이젠 만들어봐야겠다, 싶은 생각에 영화를 만드는 동아리에 들어가 촬영과 편집도 배웠다. 언젠가부터 ‘영화감독’은 자연스레 내 꿈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가 마냥 좋아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되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영화감독이 되려니 꽤 많은 문제가 있었다. 난 사무실에서 앉아 일하기보단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써주지 않았다. 왜?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지인덕을 볼까 싶어서, 얼굴은 모르지만 건너 건너 아는 동아리 선배가 일하는 프로덕션에 지원해도 ‘미안하다, 고된 일이라 여자는 힘들다’는 말뿐이었다. 꽤 많은 거절을 마주한 나는 점점 영화계란 ‘배우가 아닌 이상 여자는 일할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일할 기회가 있어야 경력도 쌓고 인맥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첫 스텝부터 꼬인 것이다. 꿈을 포기한 결정적인 계기는 영화계에 만연한 성폭행 때문이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기 전에도 사실 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성차별에 둔감한 제작 환경, 남자 스태프의 성희롱, 그리고 끔찍한 성폭력. 업계 사람이 되기도 전에 정이 떨어졌다.
비겁할지 몰라도 나는 어떤 꿈이든 그런 환경에선 이루고 싶지 않았다. 맞서 싸워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왜? 나는 투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일을 하고 싶은 것인데? 그 이후엔 ‘영화’라는 끈을 놓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나는 유명 영화 잡지 공채 준비를 위해, 현직 기자의 수업을 들으면서 영화가 내 업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분명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에 대해 글 쓰는 것도 즐겁고, 영화 콘텐츠를 읽고 보는 것도 참 행복하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취미가 ‘업’이 되니 혼란스러웠다. 내 유일한 취미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취미 시간은 곧 업무 시간이 됐다. 예를 들어, 영화를 그냥 볼 수가 없다.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는 영화관에서도 대사나 매력적인 장면을 메모해야 하고, 영화 리뷰를 봐도 그냥 넘길 수가 없으니 에버노트에 저장해놓기 바빴다. 아무리 좋은 영화여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이걸 소재로 쓰면 되겠다’라는 생각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영화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영화가 업이 되니 나머지 인생은 텅 비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대학 생활 4년 내내 나의 숙명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영화’를 포기할 용기를 냈다. 영화를 좋아했던 내 마음이 꿈을 꾸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나를 책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인생에서 더없이 중요한 걸 배운 것이었다.
나는 덕업 일치가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걸. 안 되는 걸 포기하면 편해진다는 걸. 누군가가 말했다. 포기도 용기라고.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아까워서 포기하지 않는 것보다 내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용기라는 말일 테다. 그러니 나처럼 꿈을 포기할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더 도전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번엔 포기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포기 또한 박수 받을 만한 선택이니까.
[850호 - 20's voice]
WRITER 문소정 moonsojeong@naver.com 영화를 취미로만 즐겨서 세상 행복한 영화 덕후
#20's voice#20대#20대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