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내성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에게
나는 그렇게 나의 내향성을 부끄러워하며 자랐다.
자, 본론부터 이야기하자. 나는 내성적이고, 비관적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려 40년을 내성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으로 살아왔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우물쭈물하고 새로운 장소를 무서워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두려워한다. 내가 하는 일이 잘될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즐거운 기대는 늘 무참히 깨질 거라 믿으며, 내가 탄 비행기는 추락 확률이 80% 이상이다.
세상의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이 당장 뜯어고치고 싶어 할 인간의 표본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그런 나를 걱정했다. 내가 낯선 이들 앞에서 얼어붙으면 엄마는 늘 사죄라도 하듯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애가 내성적이라서….” 그 말투, 그 시선, 그 분위기. 나는 그렇게 나의 내향성을 부끄러워하며 자랐다.
그래서 나는 이런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언제나 큰 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가는 아이들을. 누구에게든 주눅 들지 않고 말을 건네는 아이들을. 언제나 가운데에 서서 활기차게 무리를 이끄는 아이들을.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새로운 일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을. 무리 안에 있는 아이들을.
나는 아니었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데는 언제나 다리 하나를 세우는 것만큼의 시간과 공이 들었고, 어떤 무리에 끼건 나는 원의 바깥에 있는 것만 같았다. 유치원 시절부터 이어진 기나긴 단체 생활 내내 그랬다. 동시에 나는 걱정이 많았고 어떤 일이건 잘 되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긴장해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는 남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싫어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일들도 많았는데 그건 아마도 세상이 내게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부정과 거부와 비관은 잡아먹힐 것만 같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방편이니까. 나는 그런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세상의 규칙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 많이, 아주 많이 부족한 사람. 사춘기 소녀에게 그런 감정은 절대로 긍정적일 수가 없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노력하는 시간은 파도를 거슬러 노를 젓는 일처럼 힘겹기만 했다. 그런 감정,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기 자신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되는 감정은 내내 지속되다가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희석되었던 것 같다.

아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보았던 때가. 그 영화의 한 장면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영화감독인 남편을 따라 도쿄에 와서는 호텔에 처박혀 무료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여자가 있다. 어느 날 남편과 친한 유명 여배우가 영화 홍보를 하러 도쿄에 오고, 그들 부부는 그녀와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된다.
그런데 저녁식사 내내 여배우는 머리 모양이나 화장법에 대해 끊이지 않는 수다를 떤다. 열심히 들어주며 맞장구를 치는 남편과 달리 여자는 그 자리에서 겉도는 느낌을 받으며 불편해한다. 그 장면은, 그때 여주인공이 지었던 애매한 표정은, 주눅 들어 살아왔던 내 지난날을 보상해주고도 남았다. 그건 바로 내 모습이었으니까.
소피아 코폴라가 나를 보고 그 장면을 만든 것은 아닐 테고, 아마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리라. 남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런 것이 불편하고 어색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외향적인 사람도 꼴 사나울 수 있고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어디 가서 남들을 불편하게만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게다가 나의 비관성이 내 인생에 나쁜 영향만 끼친 것도 아니었다. 지금껏 나는 나의 비관성을 원동력 삼아 일해 왔다.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열심히 했고, 잘릴까봐 걱정이 되어 더 열심히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잘될 리가 없다고 생각해 멀쩡한 다리도 백 번씩 두드리며 건넜다. 남편은 나와는 달리 매우 낙천적인 성격인데, 그래서 그는 중요한 시험 날짜를 착각하고,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일을 하다 보면 늘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다.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세상에 내 남편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다리란 다리는 다 무너졌을 것이다.
반대로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다리를 세우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양쪽 모두가 필요하다. 가만 보면 세상에 완벽히 내성적인 사람도, 완벽히 외향적인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완벽하게 외향적이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외향적이어야 할 때 외향적이고 내성적이어야 할 때 내성적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타인들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을 열어 보일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외향성이다. 혼자 있을 때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을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내향성이다. 아무튼 이렇게 이상한 성격으로도 배짱을 부리며 살 수 있게 된 것도 내가 나이 들며 배운 일 중의 하나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도 썩 괜찮은 일 같다.
세상의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이 당장 뜯어고치고 싶어 할 인간의 표본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그런 나를 걱정했다. 내가 낯선 이들 앞에서 얼어붙으면 엄마는 늘 사죄라도 하듯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애가 내성적이라서….” 그 말투, 그 시선, 그 분위기. 나는 그렇게 나의 내향성을 부끄러워하며 자랐다.
그래서 나는 이런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언제나 큰 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가는 아이들을. 누구에게든 주눅 들지 않고 말을 건네는 아이들을. 언제나 가운데에 서서 활기차게 무리를 이끄는 아이들을.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새로운 일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을. 무리 안에 있는 아이들을.
나는 아니었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데는 언제나 다리 하나를 세우는 것만큼의 시간과 공이 들었고, 어떤 무리에 끼건 나는 원의 바깥에 있는 것만 같았다. 유치원 시절부터 이어진 기나긴 단체 생활 내내 그랬다. 동시에 나는 걱정이 많았고 어떤 일이건 잘 되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긴장해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는 남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싫어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일들도 많았는데 그건 아마도 세상이 내게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부정과 거부와 비관은 잡아먹힐 것만 같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방편이니까. 나는 그런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세상의 규칙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 많이, 아주 많이 부족한 사람. 사춘기 소녀에게 그런 감정은 절대로 긍정적일 수가 없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노력하는 시간은 파도를 거슬러 노를 젓는 일처럼 힘겹기만 했다. 그런 감정,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기 자신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되는 감정은 내내 지속되다가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희석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저녁식사 내내 여배우는 머리 모양이나 화장법에 대해 끊이지 않는 수다를 떤다. 열심히 들어주며 맞장구를 치는 남편과 달리 여자는 그 자리에서 겉도는 느낌을 받으며 불편해한다. 그 장면은, 그때 여주인공이 지었던 애매한 표정은, 주눅 들어 살아왔던 내 지난날을 보상해주고도 남았다. 그건 바로 내 모습이었으니까.
소피아 코폴라가 나를 보고 그 장면을 만든 것은 아닐 테고, 아마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리라. 남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런 것이 불편하고 어색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외향적인 사람도 꼴 사나울 수 있고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어디 가서 남들을 불편하게만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게다가 나의 비관성이 내 인생에 나쁜 영향만 끼친 것도 아니었다. 지금껏 나는 나의 비관성을 원동력 삼아 일해 왔다.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열심히 했고, 잘릴까봐 걱정이 되어 더 열심히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잘될 리가 없다고 생각해 멀쩡한 다리도 백 번씩 두드리며 건넜다. 남편은 나와는 달리 매우 낙천적인 성격인데, 그래서 그는 중요한 시험 날짜를 착각하고,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일을 하다 보면 늘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다.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세상에 내 남편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다리란 다리는 다 무너졌을 것이다.
반대로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다리를 세우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양쪽 모두가 필요하다. 가만 보면 세상에 완벽히 내성적인 사람도, 완벽히 외향적인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완벽하게 외향적이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외향적이어야 할 때 외향적이고 내성적이어야 할 때 내성적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타인들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을 열어 보일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외향성이다. 혼자 있을 때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을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내향성이다. 아무튼 이렇게 이상한 성격으로도 배짱을 부리며 살 수 있게 된 것도 내가 나이 들며 배운 일 중의 하나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도 썩 괜찮은 일 같다.
[850호 - think]
Writer 한수희 kazmikgirl@naver.com 책 『온전히 나답게』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저자illustrator 키미앤일이
#850호#850호 think#850호 대학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