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것

PLAY 피와 씨앗

PLAY <피와 씨앗> GRAIN IN THE BLOOD

일시 2018.5.8~6.2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착하게 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라왔다. 지루한 ‘도덕’과 ‘윤리’ 수업 시간에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거듭 강요받기도 했다. 그런데 착한 삶, 착한 행동이란 대체 뭘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남을 돕는 행동’인 걸까? 예를 들자면, 버스 안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처럼.

          

말로만 들으면 굉장히 단순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만약 남을 돕기 위해 좋은 뜻으로 한 행동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 해가 된다면? 그때도 다른 사람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극 <피와 씨앗>은 이 어려운 질문을 ‘장기이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준다. 극 중 주인공인 ‘어텀’은 12살 소녀로 신장 이식 수술이 필요한 상태다.

          

어느 날, 어텀이 전직 수의사인 할머니 소피아와 이모 바이올렛과 사는 집으로 한 남자가 찾아온다. 이 남자의 이름은 아이작. 어른들은 어텀에게 그를 ‘너를 살려줄 사람’이라고 소개하지만, 어텀은 이미 알고 있다. 아이작은 의사가 아니라 자신에게 신장을 주기 위해 왔다는 것을.

          

          

한편으로는 어텀이 보지 못하는 다툼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사실 아이작은 어텀의 엄마인 썸머를 죽게 만든 살인자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 죄수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작은 불안에 떨며 장기이식을 계속해 망설이고 있다. 소피아와 바이올렛은 아이작을 설득할 수 없을 경우 억지로라도 수술을 감행하려 한다.

          

연극은 90분 동안 고요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한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는 없다. 아이작을 감시하는 소피아와 바이올렛, 그리고 보호감찰관인 버트의 ‘지켜만 보겠다’는 냉정한 태도,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아이작의 죄책감과 장기이식에 대한 두려움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망설임 끝에 아이작은 결국 장기이식을 결정하지만, 어텀의 귓속말을 듣고 갑자기 그 결정을 번복하면서 긴장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난 상관없어. 그건 원하지 않아.” 답을 찾고 싶었는데 오히려 공연이 끝난 뒤, 더 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명확하게 ‘예’라고 답할 수 있었던 질문까지 망설이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사람의 생명이 다른 사람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다고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살인과 같이 끔찍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의 생명은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지는 걸까?

          

          

설사 죽는다고 해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장기이식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 그러나 죽음처럼 중요한 문제가 그것도 가까운 사람에게 닥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성을 잃고 섣부르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하고 만다.

          

아마 ‘나라면 이렇게 하고 싶을 거야’라며 ‘나’를 기준으로 세우는 사람도 수두룩할 것이다. 하지만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아이작, 장기이식으로 생명을 이어가길 원하지 않는 어텀, 억지로 장기이식을 받게 하려는 소피아와 바이올렛….

          

이 가운데 대체 누가 옳고 그름을 쉽게 구별할 수 있을까? 무엇이 이타심이고 이기심인지는 또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불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고민해봐야 한다. 어쩌면 남을 위한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나’를 위한 행동,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은 아니었을지.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더 큰 비극을 불러올지도 모르므로.


# 진짜 ‘이타주의’가 뭔지 궁금해졌다면?

          

LECTURE <두산인문극장 2018: 이타주의자>

‘이 시대의 진정한 이타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라는 질문에 8명의 학자들이 답한다. 두산아트센터에서는 인문학, 생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강연자를 초청하여 ‘이 시대가 바라는 이타주의’에 대해 들어본다. 7월까지 총 8회의 강연이 이어진다.

          

          

EXHIBITION <THE SHOW MUST GO ON>

예술가는 작품으로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네 명의 젊은 작가 강기석·오용석·이성미·이우성이 ‘나와 남’ 사이의 거리를 관찰하고 회화·영상·설치로 풀어냈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소리들을 담은 이번 전시를 무료로 만나볼 수 있다.

          

          

PLAY <애도하는 사람 悼む人>

죽은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갑자기 직장을 버리고 전국을 떠도는 시즈토. 이 특이한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죽음과 상실에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제140회 나오키 상 수상작인 텐도 아라타의 장편 소설이 원작이다.


[852호 - culture guide]

writer 박세현 두산인문극장 2018 학생 에디터 janesopy@naver.com
#852호#852호 culture guide#852호 대학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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