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형식 속에서 자유롭다
나는 백지 앞에서 그냥 백치가 되어버리는 인간

자유와 형식. 뭔가 한 문장 안에 넣기 어색한 조합이다. 으레 ‘형식’이란 ‘자유’와 반대 진영의 것으로 느껴진다.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형식이고, 형식 속에선 도무지 자유롭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십 몇 년을 살면서 깨달은바,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형식 속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책, 영화, 드라마, 많은 이야기들에 유난히 감동받았고 나아가 그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흥미를 느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 멋지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야기뿐 아니라 음악, 미술, 그 어떤 예술 창작의 영역이든 모두 그랬다.
나는 창의적인 일을 신격화했고, 선망했다.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좌절스럽게도,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달랐다. 내가 생각한 창의적 인간이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창조주였는데, 나는 백지 앞에서 그냥 백치가 되어버리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런 고민을 듣는 모든 카운셀러와 자기계발서, 각종 청춘 멘토들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냥 하면 되잖아? 잘하든 못하든 신경 쓰지 말고 일단 해! 그러나 이런 조언들은 내 문제 위로 붕 떠 있었다. 나는 첫 삽에 로마를 세우는 허황된 성취를 꿈꾸지도 않았다. 시작도 못 하겠는 감각을 아시는지? 기분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리적인 불가능이었다. 나에게 시작이란 수영 못 하는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일 뿐, 10m든 50m든 결코 결승점에는 닿지 못하는 행위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창의적인 일을 하고픈 욕구와 성능 떨어지는 하드웨어 간의 괴리에 좌절하고 있을 때. 정말 우연히도 나는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어찌나 두렵고 무서웠는지. 크리에이티브의 상징인 광고회사 아닌가. 매일매일 언제쯤 내 결여된 창의성이 뽀록나게 될지 카운트다운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뜻밖에, 광고는 ‘나의 생각보다’ 창의적인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새롭고, 번뜩이고, 자유로운 일일 것 같던 통념과 달리, 광고는 ‘형식’에 철저히 구애 받는 일이었다. 광고는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른 규격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일은 형식에 맞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지. 형식을 앞에 둔 순간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내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소스들은 목적과 형식에 맞추어 적절히 활용되었고, 그를 영감 삼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었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었다.
자유 속에서 그토록 찾던 자유. 우습게도 내가 자유를 느낀 건 딱딱한 형식 안에서였다. 이제 나는 형식과 자유의 관계를 긍정한다. 나는 형식 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웠으니. 이유는 모른다. 오랜 한국식 교육제도의 폐해인지, 내가 FM적인 인간이기 때문인지. 결국 내가 ‘진짜’ 창의적 인간은 아닌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분명한 건, 형식이 늘 자유를 제약하는 건 아니며 어떤 인간은 형식 속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무한한 자유는 내게 또 다른 속박이다. 나는 형식 속에서 자유롭고, 형식 속에서 행복하고, 형식 속에서 편안하다.
[853호 - 20's voice]
WRITER 삼성동일개미 20110026@hanmail.net 창조적 삶을 꿈꾸는 흔한 광고회사 일개미
#20대#20대 에세이#8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