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배우 손승원 인터뷰. Young&Mature

스물여섯의 철없음과, 스물여섯의 성숙함
Young&Mature배우 손승원 

다 떨어지고 기사회생으로 붙은 대학에 입학하며 손승원은 생각했다. ‘힘들게 들어왔으니 동기들 중에선 무조건 1등이 돼야지.’ 그래서 1등이 된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씩 웃는다. “뭐, 최연소 헤드윅이니까?” 그렇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잘생긴 청년은 스물네 살에 꿈의 무대에 선 ‘최연소 헤드윅’이고, 이제 <헤드윅> 이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칠 때마다 친구들과 놀아버리고 싶은 스물여섯의 철없음과, 쉬지 않고 내공을 쌓고 싶은 스물여섯의 성숙함을 품고.


공연 끝난 직후에는 ‘드디어 끝났다’ 싶은데 한 달쯤 지나면 그립거든요.

 

헤드윅 너머   

모처럼 햇볕이 따뜻하네요. 이렇게 날 좋은 오후엔 주로 뭘 하세요? 
몇 주 전까진 <달콤한 비밀>을 찍었죠. 촬영하고 바로 다음 주에 방영되는 스케줄이라 되게 빡빡했어요. 처음에는 <힐러>까지 같이 하고 있어서 더 그랬고요.  

<달콤한 비밀>에서 주인공의 동생 역할이었는데, 노래 부르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오더라고요. 뮤지컬 배우를 제대로 써먹는 느낌이랄까.(웃음) 아무래도 캐스팅할 때 그 점을 보시지 않았을까요? 
‘진우’가 집 안에서는 성실해 보이지만, 음악을 하고 싶어 밖으로 도는 캐릭터니까요. 노래 하나는 자신 있게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엔 누나도 상황이 안 좋고 어머니도 아프시다보니 효자 캐릭터가 부각됐지만요.  

여전히 ‘손승원’ 하면 ‘최연소 헤드윅’이란 수식어가 먼저 붙어요. 스물네 살에 헤드윅이 됐는데, 처음 섭외가 왔을 땐 장난 전화인 줄 아셨다면서요? 
친구랑 기차 여행을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헤드윅> 캐스팅 때문에 전화했대서 당연히 다른 역할인 줄 알았죠. 어떤 역할이냐고 물어보니까 “당연히 헤드윅이죠!” 이러더라고요. 순간 장난 전화인 줄 알고 말을 아꼈어요. 그 뒤로는 여행에 하나도 집중 못 하고 헤드윅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송창의, 조승우 같은 쟁쟁한 분들과 비교될 거란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떨쳐냈나요?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어요.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고, 잘해야 본전이고 못 하면 완전 깨지는 거니까요. 그런데 주변에서 부딪치라는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사실 그때 캐스팅이 송창의, 조승우 형이 아니라 제 또래의 같은 신인이었으면 안 했을 거예요. 제가 그분들보다 잘할 수는 없지만 뭐라도 배울 순 있으니까 도전한 거죠. 그리고 어차피 어리니까 손해 볼 거 없다는 생각?(웃음) 제가 유명했다면 이것밖에 안 되냐는 소리를 들을 텐데 생판 신인이니까요.  

<쓰릴 미>와 <트레이스 유>에서는 동성애 연기를 보여줬고, <헤드윅>에선 트랜스젠더 역할이었어요. 이처럼 뮤지컬에선 중성적인 역할을 많이 했는데, 브라운관 데뷔작 <다르게 운다>에선 망나니 오빠 캐릭터였죠. <힐러>에서는 과묵한 악역이었고요. 뮤지컬과 TV에서 승원씨의 캐릭터를 보는 시선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뮤지컬에서 유약한 트랜스젠더나 게이 역할을 많이 하다보니, 너무 그런 이미지로만 굳어질까봐 겁이 나더라고요. 저는 상남자 느낌의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데…. 그래서 방송 할 때는 일부러 반항아나 악역을 많이 맡으려고 노력했어요.  

개인적으로 궁금했는데, <힐러>에서 출세를 위해 친구를 버리는 김문식 역할이었잖아요. 본인도 인스타그램에 ‘나쁜 놈’이라고 적어놨더라고요. 그의 감정선은 어떻게 이해하면서 연기했나요? 
김문식의 궁극적 목표는 권력이 아니라 사랑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무슨 짓이든 벌일 수 있다는 것에 타당성을 부여했어요. 그러니까 김문식 입장에서 자기는 나쁜 놈이 아닌 거죠.  

단막극에서 미니시리즈, 일일드라마로 차근차근 출연작의 볼륨을 키워가고 있는데, 승원씨의 템포와 가장 잘 맞는 건 뭐였나요? 
단막극이요. 영화처럼 몰아서 찍으니까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시간에 구애를 덜 받아서 감독님과 대화할 시간도 많았고요. <힐러>는 아역이다 보니 분량은 적은데, 임팩트는 강한 캐릭터라서 어려웠어요.  

뮤지컬은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는 반면 드라마는 편집하고 방송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방송만 하다보니 무대 위에서의 해소감이 그립겠어요. 
그렇죠. 드라마 촬영장은 대기 시간이 길어서 처져 있는 시간도 많아요. 그런데 공연은 2시간 내내 무대 위에 있으니까 해소감이 크죠. 뭔가를 해낸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연기하잖아요. 늘 하던 걸 갑자기 안하면 공허함도 크죠.  

공허함이 느껴질 땐 어떻게 달래나요?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인데요. 대본이나 제가 나오는 영상을 다시 봐요. 공연 끝난 직후에는 ‘드디어 끝났다’ 싶은데 한 달쯤 지나면 그립거든요.

이제 프로잖아요. 욕심이 생기죠. 잊혀지고 싶지 않다는.

 

애와 어른 사이   

잊으려고 하기보단 되새김질하는 타입이군요. 집에서는 뭘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세요? 
강아지 끌어안고 누워서 TV 보고 영화 보고…. 그럴 때 있잖아요. 혼자 있다가 갑자기 확 외로워지는 순간. 그래서 강아지를 분양 받았어요.  

강아지 이름이 ‘토미’죠? <헤드윅>의 토미인가요? 
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고, 제 인생에서 제일 뜻깊고 선물 같은 작품이라서 이름을 따왔어요.  

애니메이션과 피규어, 히어로 물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컬렉션 자랑 좀 해주세요. 
일단 <원피스> 좋아하고요. 히어로 물을 되게 좋아해요. <아이언맨>, <배트맨> 피규어가 많아요. 한 30~40개? 그렇다고 그 피규어들을 맨날 닦고 정리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소유욕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죠?(웃음) 히어로 물은 왜 좋아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만화들은 다 철학이 있는 것 같아요. 대사 하나하나가 교훈을 준달까. 예를 들면 히어로 물은 아니지만, <원피스> 보세요? 검사 캐릭터가 있는데 악당이랑 싸우다 졌어요. 마지막에 한 방을 맞고 죽는 순간, 검사가 앞을 내주는 거예요. 왜 도망가지 않느냐고 하니까 대답해요. “검사의 등에 있는 상처는 수치다.” 아….(감격)  

하하. 그나저나 인스타그램에 근황을 꾸준히 올리던데요. 살갑게 “오늘은 뭘 했어요~” 하는 건 아닌데, 묵묵히 팬들을 위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뮤지컬은, 끝나면 팬들이랑 인사도 하고 사인도 주고받거든요. 지금은 공연을 안 하니까 뮤지컬 팬 분들이 아쉬워하실 것 같아서요. 매일 사진이라도 올리고 있어요.  

실제로 연애할 때도 그런 스타일이에요? 
무뚝뚝한데 뒤에서 위해주는 츤데레 같은. 좀 그런 것 같아요.  

로맨틱 코미디에서 잘 먹히는 배역이잖아요. 로코를 찍는다면 누구랑 호흡을 맞춰보고 싶어요? 
딱히 누구라기보단 연상이랑 해보고 싶어요. 제가 애늙은이라서 연상이랑 코드가 잘 맞거든요. 실제로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을 좋아해서 연상을 주로 만났어요. 저보다 바쁘고, 뭐든 대화로 풀 수 있는 사람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많은 인터뷰에서 “엄마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이유가 있군요. 그럼 스스로 생각할 때, 승원씨는 연애하기 좋은 남자인가요? 
전 한 번에 두 가지를 못 해요. 아무것도 없을 땐 여자친구한테만 집중하는데 다른 걸 해야 될 땐, 일률도 떨어지고 연애도 제대로 못 하고…. 네, 제가 바쁠 때는 저랑 연애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하하.  

아직은 대중에게 남자보단 배우로 인식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네, 조급해요. 쉬지 않고 바로 다음 작품 들어가고 싶어요. 중간에 쉬면 기껏 몸에 익혀놓은 게 사라지잖아요. 작품을 이어가다보면 적응이 빨라지고 내공이 쌓이는 것 같아요. 쪽 대본을 받아서 바로 외우고 들어가도 티가 안 나는 내공이요.  

스물여섯이면 자기 객관화가 꽤 이루어지는 나이잖아요. 그래서 더 조급한 걸까요? 
맞아요. 전 이것밖에 못 할 것 같거든요. 옛날에는 연기를 하면서도 ‘난 어린데 일하고 있어’라는 생각 때문에 큰 부담이 없었어요. 벌써 공연도 하고,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으니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스물여섯쯤 되니까 이곳에 제 또래도 너무 많고 경쟁 상대도 많아요. 그리고 이제 프로잖아요. 욕심이 생기죠. 잊혀지고 싶지 않다는.  

Editor 김슬 dew@univ.me
Photographer 임민철 Studio Zip
#732호#궁서체다#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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