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힙찔이는 친구가 필요해

Album - NOTHANKYOU.
 

Artist Marteen

삐빅. 버스 카드를 찍고 눈으로 곧장 뒤쪽 창가를 빠르게 훑는다.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는다. 이내 둔탁한 드럼과 스네어가 휘몰아친다. 음악은 강의실에 도착해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다. 타인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한 힙찔이의 하루는 래퍼의 소리를 듣는 일로 가득 차 있다. 힙합에 입문한 건 고등학생 때다.

에픽하이 4집 수록곡 ‘Mr. Doctor’에서 타블로의 영어 랩에 충격을 받은 이후 힙합 음악을 찾아 들었다. 당시 비주류였던 힙합을 즐긴다는 건 뭐랄까… 정도가 아닐지라도 취향과 소신이 확실한 힙스터처럼 느껴졌다. 가요에선 들을 수 없던 솔직한 자기과시도 통쾌했다. 대리 만족하는 기분이었달까. 몇 년이 지나니 한국 힙합을 섭렵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작년 즈음 우쭐거리며 힙합 커뮤니티에 접속했더니 켄드릭 뭐시기가 신보를 발매했다거나 요상한 2017 해외 힙합 베스트를 뽑았다는 글이 가득했다. 덧붙여 한국 힙합은 미국 트렌드 따라 하기에 불과하단다. 국뽕에 취해 자존심이 상했다.   

   

‘가사도 못 알아듣는 음악이 뭐가 좋다고 듣는 거야?’ 하며 추천 외국 힙합 몇 곡을 재생했다. 이내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X쩌는데?’ 범죄영화 BGM으로 등장할 법한 음산한 비트에 묵직한 드럼과 날렵한 스네어의 세련된 조합! 무심한 듯 마디마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찰진 라임과 추임새까지. 문화 사대주의자가 된 듯한 자괴감이 들었지만 좋은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좋은 음악을 알게 되니 ‘콩 한 쪽도 나눠 먹어라!’는 선조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다시 국뽕으로 돌아왔다. 그래. 난 기회주의자야) 콩도 나눠 먹는데 노래라고 안 될 이유는 뭐냐! 과거의 나처럼 아직 신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핫한 외국 힙합 몇 곡을 추천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았다. “마X퍼X같이 욕만 나오는 노래를 왜 듣냐?” “힙합은 쇼미 아님? 비와이 짱!”   

   

…외롭다. 힙찔이는 여전히 혼자다. 힙합은 대체로 다크하고 자극적이란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다만 무지막지한 돈 자랑이나 갱스터 랩 외에 공감 가능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도 있다고! 마침 최근 외힙에 대한 편견을 극복시킬 신예를 발견했다. “난 언젠가 내 도요타를 벤츠로 바꿀 거야. 돈을 뿌릴 만큼 버는 거지.  

그렇지만 지금도 괜찮아. 아직 가진 건 없지만 우린 충분히 멋진걸” 17살 미국의 뮤지션 마틴(Marteen)이다. 그의 자기과시 방법은 기존 힙합의 머니 스웨그와 결이 좀 다르다. 돈을 대하는 목표는 뚜렷하지만 뽐내는 방식이 다르달까. 곡 ‘We Cool’에서 마틴은 결국 돈 따위가 나를 조종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지금 백만장자가 아니더라도 우린 충분히 멋져. 이러니 네가 반할 수밖에 없지” 하는 자랑 아닌 자랑(?)을 뽐낸다.   

   

또 가상의 적을 향한 날 선 음악보다 자신이 애정하는 사람과의 순간을 노래한다. 마틴의 대표곡이자 발표 후 이례적으로 한국 10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Sriracha’에선 일상적 소재를 이용해 뜨거운 사랑과 당돌함을 담았다. ‘Left to Right’는 또 어떤가. 댄스홀에서 만난 그녀와 사랑에 빠져 밤새 음악을 즐기는 젊음의 순간을 표현했다.  
사실 마틴이 매력적인 이유는 가사보다 멜로디다. 음악은 결국 소리로 감정을 전달하는 콘텐츠다. 특히 외국 노래는 영어 능력자가 아니고서야 그들의 정서를 공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마틴은 언어를 뛰어넘어 중독성 강한 바이브를 그리는 데 탁월하다. 게다가 힙합, 알앤비, 팝의 묘한 경계에서 활동하며 ‘랩 같은 노래’ ‘노래 같은 랩’을 미끄러지듯 부른다.  

특정 장르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노래하니 모든 이의 귀를 가리지 않고 유혹할 수밖에. 어때! 외힙에 대한 편견을 좀 덜었나? 심심풀이 노래 추천인 것 같지만 사실 ‘이 노래가 좋아서 너랑 같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힙찔이식 애정 표현이다. 그러니 친구들아, 가끔은 내 음악 추천을 무시 말고 들어줘….   


외힙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 줄 곡들 +  
Lil Dicky <Freaky Friday>  코미디언 래퍼 릴 디키의 최신곡으로, 영화 <프리키 프라이데이>(2004)를 모티프로 했다. 원작 영화의 내용처럼 릴 디키가 슈퍼스타인 크리스 브라운과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뒤바뀐다는 콘셉트의 가사와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다. 다소 황당한 내용이지만 이 음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Love Myself.’
   
Drake <Nice For What>  미국의 정상급 힙합 아티스트 드레이크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곡이다. 답답하고 불안한 이 시대의 청춘들을 다독이는 의미를 풍성한 비트 속에 담았다. “인생은 몹시 짧아.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즐겨버려. 남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마.”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레트로한 보컬 사운드 역시 매력적이다.
   
Lil Uzi Vert <The Way Life Goes>  찌질하고 구슬픈 머니 스웨그(Money Swag)도 있다. 릴 우지 버트는 이별의 슬픔을 성공으로 승화시키려 애쓴다. ‘나랑 헤어지고 고작 그런 놈을 만나냐? 나도 멋진 여자친구가 생겼어. 돈도 엄청 많이 벌었지. 근데… 나 아직 널 못 잊은 것 같아’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전하는 외침은 사실 자신을 향한 것일지도. “너무 슬퍼 말고 네 삶을 이어가.”


[856호 - culture guide]

학생 에디터 권용범 ksi915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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