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빛나는 청춘 같은 건 없더라
청춘의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한숨 쉬는 6인의 이야기.
모든 것이 푸른 봄처럼 빛나는 시기, 청춘(靑春). 우리 모두 이때를 기다려왔다. 십 대 시절 내내, 성인이 되면 마치 천국이라도 올 것처럼 어른들이 이야기하곤 했으니까. 세상은 청춘의 삶을 달콤한 말들로 꾸며내곤 했다. 꿈과 자유, 희망 같은. 하지만 막상 우리가 도착한 청춘은 기대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청춘의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한숨 쉬는 6인의 이야기.

환상 청춘은 꿈을 찾는다? 현실 꿈은 없고 쉼을 원할 뿐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 A의 경우
나는 어려서부터 시키는 건 뭐든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IMF로 아버지 사업이 무너져 형편이 어려워진 이후론, 더 그랬다. 이런 내게 어른들은 늘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면 길이 열릴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믿었고, 진짜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대학, 가장 관심 있었던 홍보 관련 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 와서도 나는 여전히 좋은 성과를 냈다. 학점 평균은 4.3에 장학금을 받고, 공모전, 자격증, 동아리 활동 등으로 다양한 스펙을 쌓았다. 그런데 좋은 성과를 낼수록 정신이 피폐해져갔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심해져 일을 조금이라도 망치면 못 견디게 화가 났다. 그런 내가 너무도 혐오스럽고 미웠다. 꿈은 찾았냐고? 아니, 홍보 관련 스펙은 많이 쌓았지만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턴가 이 길을 선택하면 쉰 살이 되어서도 무언가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되리란 게 막연하게 느껴졌다. 여유도 없이 항상 쫓기듯 사는 삶, 그 끝에서 죽기 직전에 후회하며 스스로를 원망하겠지. 왜 진작 멈추지 않았느냐고. 지금 나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여유 있는 삶’이 지금 나의 꿈이니까.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한다. 나를 돌볼 시간이 있는 직장에 다니고 싶다. 그뿐이다. 어른들은 “젊은이가 어디 열정도 없이 편하게만 살려고 하냐”며 공시생을 부정적으로 말한다. 참 웃기는 일이다. 19살까지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했으면서, 20살이 되니까 갑자기 거창한 꿈 하나 없냐고 나무라는 게.

환상 빛나는 연애를 한다? 현실 좋은 사람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외롭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B의 경우
왜 청춘 드라마 보면, 사건사고를 달고 다니는 주인공도 언젠가부터 자신을 아껴주는 연인과 함께 다니잖아?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과 웃으며 거리를 거닐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나도 성인이 되면 그럴 줄 알았다. 10대에는 연애를 해본 적 없었다. 여고라서 남자를 만날 기회도 적었을 뿐 아니라, 설사 기회가 생기더라도 크게 내키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고, 연애는 대학 가서 얼마든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대학에 오니까 다르긴 달랐다. 사람 만날 자리가 많았다. 학회, 동아리, 미팅까지 빠지지 않고 나갔고, 그 속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쉽게 올 줄 알았던 사랑은 결코 오지 않았다. 수없이 참여했던 미팅은 그날의 술자리로 끝이었고, 주변 남자사람 친구들은 정말 남동생 같기만 했다. 늘 연애하고 싶다고 난리 치지만, 막상 누가 자리를 만들어준다고 하면 걷어차버리는 모순적인 나. 나도 이런 내 마음을 모르겠다. 아무나 하고 만나지 않으려다 아무도 못 만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마음을 너무 닫고 있는 탓일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참 외롭다. 하지만 어떻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설사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젊은 날의 잊지 못할 사랑? 과연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

환상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다? 현실 부모님이 나한테 의지하기 시작했다
입원한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는 C의 경우
대학 가서 첫 알바를 했다. 내 힘으로 돈을 벌고, 돈 관리까지 하니까 어른의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았다. ‘이렇게 돈을 조금씩 모으면, 언젠가 혼자 서는 날도 오겠지?’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엄마가 아프기 전까지는. 이따금씩 두통을 호소하던 엄마가 어느 날 머리가 아프다며 엉엉 우셨다. 깜짝 놀라 큰 병원에 가보니 엄마가 앓고 있던 것은 두통이 아니라 희귀병이란다. 뇌에 피가 안 통해 혈류가 마르는 병. 의사는 신속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권했다. 그렇게 엄마는 꽤 오랫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다. 아빠는 매일 엄마 곁을 지키러 갔고, 집에 남은 나는 동생 둘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이 되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나에겐 나보다 챙기고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친구들이 수업 후 동아리 모임이나 술자리에 갈 때, 나는 곧장 집으로 왔다. 예민한 사춘기 동생들의 끼니를 챙기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우리 딸은 항상 잘하니 걱정 없어. 그치, 잘 하고 있지?”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입을 다물게 했고, 어깨를 무겁게 했다. 그래서 나는 늘 “괜찮아”라고 답했다. 빛나야 했던 스무 살에 ‘나’는 없었다. 밖에선 친구들에게 맞춰주고, 집에선 부모님 눈치를 봤다. 남 신경 쓰기에 바빠 내 생활이 없었다. 극심한 우울감에 젖어 학교 상담 센터까지 알아보고 상담을 받았다. “다 떠안고 아파하지 않아도 돼. 좀 더 어리광 부려도 돼. 참지 않고 울어도 돼.” 상담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한 시간 동안 목 놓아 울었다.

환상 새 친구를 많이 사귄다? 현실 새 친구는커녕 있는 친구 보기도 어려워진다
과제로 일상이 점철된 D의 경우
나는 지난 10여 년간 같은 친구들을 봐왔다. 지역별로 학교가 배정됐기에 똑같은 친구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사는 곳도, 학교도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는 캠퍼스 라이프가 더욱 기대됐다. 대학교는 만남의 광장이 아니던가! 대학에 오자마자 기대감을 잔뜩 안고, 평소 관심 있던 동아리에 지원했다. 서류도 내고, 면접도 보고, 어렵게 그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동아리 모임 첫날부터 지각하고 말았다. 전날 과제로 밤을 새다가 결국 늦잠을 자고 말았던 것.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진 건 단순히 기분 탓이었을까? 그래도 새로 가입한 동아리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기대했던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그들과 함께하는 활동들도 유익했다. 앞으로 열심히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 동시에 좋은 인연도 많이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너무도 큰 바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불길한 징조가 현실이 된 것일까. 나는 이후 동아리를 잇달아 불참해야 했다. 디자인과여서 과제가 너무 많았던 탓이다. 온종일 시간을 쏟지 않고서는 해낼 수가 없는 분량이었다. 드물게 과제가 없어 동아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 날엔 또 팀플 모임이 잡혔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새로운 친구는커녕, 각자 바쁜 생활 탓에 자주 만나던 10년 지기 친구들도 석 달째 보지 못했다. ‘학교 끝나면 과제 받고 집, 집에서 과제 다 하면 학교 출발’이 일상이 된 내게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이미 사치가 된 지 오래다.

환상 청춘은 자유다? 현실 자유로울 돈이 없다
공강 시간이면 근로하러 가는 E의 경우
매일 정해진 급식을 먹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는 대학생이 너무 부러웠다. 공강 시간에 여유롭게 카페 가서 맛있는 차 한 잔, 수업 후엔 삼삼오오 모여 술 한잔, 방학에는 자유 여행. 나 역시 대학에 가면 그 누구보다 멋지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내가 꿈꿨던 그 모든 것들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에 와서 나에겐 그것들이 정말 ‘꿈’에 불과하단 걸 알게 됐다. 나에겐 둘 중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한 주 5일 20시간 도서관 근로. 공강 시간이 근로로 꽉 채워진 탓에 친구들이 카페에 갈 때, 나는 근로를 하러 가야 했다. 아침 9시부터 근로와 수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갈 때면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한 끼에 8000원씩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고 나선 2500원짜리 라면을 파는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까지 해도 재정적인 여유가 없을 땐, 친구들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끼니를 걸렀다. 방학엔 사정이 좀 다를까 기대했다. 해외여행은 못 가더라도, 지금 모은 돈으로 ‘내일로’ 국내 여행 정도는 가능할 거 같아서. 하지만 내가 가려고 했던 당시 내일로는 5일권 티켓밖에 없었고(최근 3일권이 나왔지만), 알바를 5일 빼는 건 불가능했다. 이러나저러나 발목 잡히는 현실에 나는 참 많이 위축됐고, 서글퍼졌다. 청춘이 자유라고? 정말 꿈 같은 소리.

환상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행복하게 지낸다? 현실 일은 일일 뿐, 재미없고 남루한 하루를 버틴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지만 오늘도 퇴사를 고민하는 F의 경우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라! 그럼 삶이 달라진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 말인가. 세상은 이런 달콤한 얘기로 우릴 혹하게 만든다. TV에서도, 책에서도, 강연에서도.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말을 믿는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 위해 몸을 던진다. 그 길의 끝에 막연히 좋은 게 있을 거라 믿으면서. 나도 그중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은 뚜렷했다. 바로, 그림. 유아기 시절부터 종이랑 펜만 있으면 즐거웠다. 계속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리는 일이 너무 재밌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이 내 그림을 보려고 몰려들고, 미술 선생님도 미술에 열정을 갖고 있는 나를 예뻐하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내 꿈은 디자이너였고,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았다. 그래서 살면서 이 길을 한 번도 벗어나본 적 없다. 그만큼 스스로 자신이 있었고, 확신이 있었던 거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나는 미대를 졸업해 지금 디자인팀에서 일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것=회사에서 하는 일’의 공식은 완전히 틀렸다. 좋아하는 일과 직업 사이의 간극은 실로 엄청나다. 분명 회사에서 하는 일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정말 미미하다. 100% 중에서 5% 정도? 나머지는 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다. 거기다가 한 일에 비해 쥐똥만 한 급여로 내 능력이 가치 절하되는 기분은 덤이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산다는 건, 사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버텨나가야 하는 잔인한 일이다. 나는 지금 그 남루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857호 - 20's life]
학생 에디터 김혜원 ganwlrog@naver.com
#20대 고민#20대 이야기#20대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