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힘든 걸까?
부모와 감정을 교류하는 대화를 할 수 없어서 힘들단 사람이 있었어. 예를 들어 부모에게 “집 앞에 새로 연 빵집 좋던데요” 같은 말을 하면 “어떤 빵이 제일 맛있어?” “나도 가봐야겠네” 같은 말이 아니라 “근데 그 집 여자 성형한 티가 너무 나더라” “네 입에 안 맛있는 게 어디 있겠니” 같은 식의 험담이 무조건 이어진대. 어떤 말을 꺼내더라도 험담과 비난, 질타, 무시로 이어진다는 거야.
그 사람의 진짜 고민은 이거였어. 집에서 그런 식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을 모르겠다는 거야.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아가는 법을 모르니까 남들과 있을 땐 자꾸 입을 다물게 된다는 거지. 말을 꺼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부모님 말투가 튀어나온대. 그때마다 분위기가 싸해지는 걸 경험했기에 아예 말하지 않는 걸 택한 건데, 이 때문에 주변에 오해를 사고 있다고 했어.
그 이야길 듣고 마음이 아프더라. 왜냐하면 나도 예전에 그랬거든. 어릴 때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면 항상 도망쳤어. 내가 어떤 말을 해서 상대를 설득하거나 갈등 상황이 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던 거지. 사람들은 직접 본 것에 대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으니까.
내가 알고 있던 대화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한쪽은 듣는 거였어. 커가며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자 고민이 되더라. 다른 사람들은 말하는 걸 나처럼 어려워하지도 않는 것 같고,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법한 말도 잘 꺼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힘든 걸까?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싶었어. 특히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어. 그래서 말을 잘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호감을 주면서도 남을 잘 설득하는 사람들을 많이 관찰했어. 그렇게 열심히 본 뒤에는 대본 쓰듯 할 말들을 적어서 외우기도 했지.
그런 연습들을 많이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말하는 게 무섭지 않게 됐어. 말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이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표도 거의 사라졌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방법들이 있어. 제일 중요한 건, 내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을 줄여야 한다는 거야.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말해봤자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는 데서 오거든. 친구들과는 수다스럽던 사람이 부모 앞에서는 말을 잘 하지 않는 것처럼.
이건 경험에서 오는 확신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지레짐작하고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을 거라 느끼는 게 습관이 돼버리면 입을 다물게 될 일만 남는 것 같아. 물론 누군가에게는 내 의견이 중요치 않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내 말을 듣고 싶어 할 수도 있는 거야. 이 당연한 생각을 오랫동안 못 했어.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사실은 다 속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거란 가정을 버려야 한다는 거야. 부정적인 이야기가 평소 자기를 둘러싸고 있다면, 점점 다른 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말조차 위선처럼 들리게 돼. 그러면 사람들이 가식적이라는 생각에 “솔직히 말해서 말이야… ” 하면서 수위 넘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아.
현실의 사람들은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처럼 말하지 않아. 그걸 잊으면 사람들이 뒤에서 다들 남을 욕하고 있고, 위선을 떨고 있다고 느끼게 돼. 솔직하게 말하겠단 생각으로 수위 높은 비난을 하고 싶어질 때 속으로 ‘잠시 멈춤’을 눌러야 해.
마지막으로, 대화란 서로 공을 주고받듯 반응을 나누는 상호작용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혼자 주절주절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아.
그런데 말의 분량이 중요한 게 아냐. 상대의 반응을 보며 감정을 공유하는 게 핵심이지. 여기 익숙해지면 표정변화 같은 비언어적 표현도 곧바로 포착할 수 있게 돼. 이걸 안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꼭 상대를 원망해. “그때 왜 싫다고 정확히 말하지 않았어?”하면서. 또 정보의 양은 친분에 따라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데, 빨리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몇 번 보지 않은 사이임에도 자기의 큰 약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어. 그런데 그건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 진심이라고 해서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 그건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선물처럼 난감하거든.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는 일은, 의지할 곳 없는 이 세상에서 영혼을 치유 받는 정말 멋진 경험이야. 말하는 게 부담되고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연습하면 좋겠어. 이건 나를 표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사람과 깊이 교류하게 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니까. 신을 믿는 것만이 구원은 아니야. 내 상태를 솔직히 말해도 비난받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드는 사람이 인생에서 딱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
그 사람의 진짜 고민은 이거였어. 집에서 그런 식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을 모르겠다는 거야.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아가는 법을 모르니까 남들과 있을 땐 자꾸 입을 다물게 된다는 거지. 말을 꺼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부모님 말투가 튀어나온대. 그때마다 분위기가 싸해지는 걸 경험했기에 아예 말하지 않는 걸 택한 건데, 이 때문에 주변에 오해를 사고 있다고 했어.
그 이야길 듣고 마음이 아프더라. 왜냐하면 나도 예전에 그랬거든. 어릴 때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면 항상 도망쳤어. 내가 어떤 말을 해서 상대를 설득하거나 갈등 상황이 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던 거지. 사람들은 직접 본 것에 대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으니까.
내가 알고 있던 대화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한쪽은 듣는 거였어. 커가며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자 고민이 되더라. 다른 사람들은 말하는 걸 나처럼 어려워하지도 않는 것 같고,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법한 말도 잘 꺼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힘든 걸까?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싶었어. 특히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어. 그래서 말을 잘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호감을 주면서도 남을 잘 설득하는 사람들을 많이 관찰했어. 그렇게 열심히 본 뒤에는 대본 쓰듯 할 말들을 적어서 외우기도 했지.
그런 연습들을 많이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말하는 게 무섭지 않게 됐어. 말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이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표도 거의 사라졌고.

이건 경험에서 오는 확신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지레짐작하고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을 거라 느끼는 게 습관이 돼버리면 입을 다물게 될 일만 남는 것 같아. 물론 누군가에게는 내 의견이 중요치 않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내 말을 듣고 싶어 할 수도 있는 거야. 이 당연한 생각을 오랫동안 못 했어.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사실은 다 속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거란 가정을 버려야 한다는 거야. 부정적인 이야기가 평소 자기를 둘러싸고 있다면, 점점 다른 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말조차 위선처럼 들리게 돼. 그러면 사람들이 가식적이라는 생각에 “솔직히 말해서 말이야… ” 하면서 수위 넘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아.
현실의 사람들은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처럼 말하지 않아. 그걸 잊으면 사람들이 뒤에서 다들 남을 욕하고 있고, 위선을 떨고 있다고 느끼게 돼. 솔직하게 말하겠단 생각으로 수위 높은 비난을 하고 싶어질 때 속으로 ‘잠시 멈춤’을 눌러야 해.
마지막으로, 대화란 서로 공을 주고받듯 반응을 나누는 상호작용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혼자 주절주절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아.
그런데 말의 분량이 중요한 게 아냐. 상대의 반응을 보며 감정을 공유하는 게 핵심이지. 여기 익숙해지면 표정변화 같은 비언어적 표현도 곧바로 포착할 수 있게 돼. 이걸 안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꼭 상대를 원망해. “그때 왜 싫다고 정확히 말하지 않았어?”하면서. 또 정보의 양은 친분에 따라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데, 빨리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몇 번 보지 않은 사이임에도 자기의 큰 약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어. 그런데 그건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 진심이라고 해서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 그건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선물처럼 난감하거든.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는 일은, 의지할 곳 없는 이 세상에서 영혼을 치유 받는 정말 멋진 경험이야. 말하는 게 부담되고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연습하면 좋겠어. 이건 나를 표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사람과 깊이 교류하게 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니까. 신을 믿는 것만이 구원은 아니야. 내 상태를 솔직히 말해도 비난받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드는 사람이 인생에서 딱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
[859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인간관계#소통#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