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귀향을 부추기는 편백나무 방향제
내 고향을 서울 자취방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ITEM 편백나무 방향제
Price 1봉지(100g) 1400원
제주가 싫었다. 사방을 에워싼 바다는 답답했고, 소똥 내 나는 어둑한 골목들과 낡아 해진 버스 정류소들은 부끄러웠다. 행여 결항 될 정도로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하염없이 택배를 기다리는 일이나 한 다리 건너면 내 유년 시절을 조사할 수 있는 좁은 관계들도 지긋지긋해 스물이 되자마자 서울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서울은 뭐든지 빠르고 다양했으며, 제주라면 한 반에 다섯 명은 있을 내 성이 희귀했다.(제주엔 ‘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래서 월정리 캔들이나 유채 향수처럼 고향 생각이 나는 물건들은 하나도 사지 않았다. 혹시라도 제주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런데 올해 초부터 그 즐겁던 서울 생활에 천천히 균열이 생겼다.
정보 없이 무작정 도전한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더니 하루 전날 부당해고로 뻥 차였을 때, 서울에 대한 애정도 뚝 떨어졌다. 처음으로 서울에 거부감이 든 나는 다음 날 옷 몇가지만을 구겨 넣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나 싫어했던 제주였는데, 이상하리 만큼 반가웠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날 부르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온 건 처음이었다. 평소라면 고향 친구들을 만나 식당과 옷 가게가 몰려 있는 시내로 갔겠지만, 이번엔 자비로 버스비를 내 오름이나 숲길, 해안도로를 다녀왔다. 가장 좋았던 건 <늑대소년> 촬영지로 유명한 물영아리 오름이었는데, 편백나무가 울창하게 솟은 숲을 걸으며 처음으로 제주가 좋구나 싶었다.
왕복으로 끊었던 비행기 표를 네 차례나 미루고 나서야 돌아온 난 서울을 포기하고 싶어질까 마음을 잡았다. 양귀비꽃이 만발한 렛츠런 팜이나 람사르 습지에서 본 노루는 잊고, 서울에서 취업한 날 그리면서. 그러다 우연히 SNS에서 ‘편백나무 방향제’를 발견했다. 직접 나무를 넣어 만든 자연 방향제라는 말에 솔깃해 총 열한 봉지를 샀다.(무려 1kg) 과연 물영아리 오름의 편백나무 숲 향이 날지 궁금하기도 해서.
지금은 화장실, 부엌, 책상 위, 침대와 커튼까지 방 이곳저곳에 총 일곱 봉지(700g)를 매달아 놨다(그래도 만원이 안 된다). 하나 아쉬운 건 급하게 사느라 디자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거다…. 웬 형광 핑크와 형광 초록 봉지가 와서 걸어두니 모기장 같다. 만일 사고 싶다면 형광은 꼭 피하길. 처음 일주일간은 집에 오자마자 편백향이 솔솔 풍겼는데 이젠 따로 구매한 편백수 스프레이를 뿌려줘야 살아난다.
그런데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오랜만에 푹 잤다며 편백나무 방향제 열개를 샀다고 후기를 보냈다. 그… 런가? 그러고 보면 잠이 좀 온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형광 봉지에 담긴 편백나무 방향제, 인테리어완 영 멀어 보여도 기분은 좋다. 제주와 관련된 물건을 방에 들이고 흐뭇해하는 걸 보면, 이러다 오 년 안에 귀향하는 거 아닌지.
서울은 뭐든지 빠르고 다양했으며, 제주라면 한 반에 다섯 명은 있을 내 성이 희귀했다.(제주엔 ‘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래서 월정리 캔들이나 유채 향수처럼 고향 생각이 나는 물건들은 하나도 사지 않았다. 혹시라도 제주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런데 올해 초부터 그 즐겁던 서울 생활에 천천히 균열이 생겼다.
정보 없이 무작정 도전한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더니 하루 전날 부당해고로 뻥 차였을 때, 서울에 대한 애정도 뚝 떨어졌다. 처음으로 서울에 거부감이 든 나는 다음 날 옷 몇가지만을 구겨 넣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나 싫어했던 제주였는데, 이상하리 만큼 반가웠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날 부르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온 건 처음이었다. 평소라면 고향 친구들을 만나 식당과 옷 가게가 몰려 있는 시내로 갔겠지만, 이번엔 자비로 버스비를 내 오름이나 숲길, 해안도로를 다녀왔다. 가장 좋았던 건 <늑대소년> 촬영지로 유명한 물영아리 오름이었는데, 편백나무가 울창하게 솟은 숲을 걸으며 처음으로 제주가 좋구나 싶었다.

왕복으로 끊었던 비행기 표를 네 차례나 미루고 나서야 돌아온 난 서울을 포기하고 싶어질까 마음을 잡았다. 양귀비꽃이 만발한 렛츠런 팜이나 람사르 습지에서 본 노루는 잊고, 서울에서 취업한 날 그리면서. 그러다 우연히 SNS에서 ‘편백나무 방향제’를 발견했다. 직접 나무를 넣어 만든 자연 방향제라는 말에 솔깃해 총 열한 봉지를 샀다.(무려 1kg) 과연 물영아리 오름의 편백나무 숲 향이 날지 궁금하기도 해서.
지금은 화장실, 부엌, 책상 위, 침대와 커튼까지 방 이곳저곳에 총 일곱 봉지(700g)를 매달아 놨다(그래도 만원이 안 된다). 하나 아쉬운 건 급하게 사느라 디자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거다…. 웬 형광 핑크와 형광 초록 봉지가 와서 걸어두니 모기장 같다. 만일 사고 싶다면 형광은 꼭 피하길. 처음 일주일간은 집에 오자마자 편백향이 솔솔 풍겼는데 이젠 따로 구매한 편백수 스프레이를 뿌려줘야 살아난다.
그런데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오랜만에 푹 잤다며 편백나무 방향제 열개를 샀다고 후기를 보냈다. 그… 런가? 그러고 보면 잠이 좀 온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형광 봉지에 담긴 편백나무 방향제, 인테리어완 영 멀어 보여도 기분은 좋다. 제주와 관련된 물건을 방에 들이고 흐뭇해하는 걸 보면, 이러다 오 년 안에 귀향하는 거 아닌지.
[860호 - 주간가심비]
#가심비#소비#편백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