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사는 게 내 맘 같지 않은 당신에게

영화감독 이경미의 에세이집 <잘 돼가? 무엇이든>

잘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 아르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데, 남들은 다 답을 알고 사는 것 같을 때가 있다(물론 큰 오해다). 이 길이 맞나 싶을 때도,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때도 있다. 어쩔 수 없다. 그게 다 우리가 인생을 처음 살아봐서 그런 거니까. 두 번째 사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엉터리로 살진 않겠지.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번 생의 당연한 삽질을 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다.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를 만든 이경미 감독의 첫 번째 에세이집은 그렇게 이번 생에서 나만 삽질하는 게 아니었구나, 싶은 위로를 준다. 한예종 졸업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에서 따왔다는 제목, <잘돼가? 무엇이든>도 내용과 착 붙는다.  

리뷰를 쓰겠다고 각을 잡고 앉아, 귀퉁이를 접어둔 페이지들을 후루룩 넘겨보다가 빵 터졌다. 다른 책에서라면 무언가 근사한 말이 적힌 페이지를 접어두었을 텐데,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큼지막하게 접어둔 페이지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 매일 다짐해야겠다. 쓰레기를 쓰겠어! 2010. 07. 29.’

시나리오를 한 줄도 쓰지 못하던 영화감독의 이런 다짐을 본받으니 마감 원고도 써지긴 써지더라.  

이번 생에서 내가 바라는 내가 되려면,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를 거 같은데 그렇다고 뭐 어쩌겠는가. 이번 생을 살긴 살아야 하는데. 그럴 땐 몸에서도 맘에서도 좀 힘을 빼고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다. 쓰레기를 쓰겠어! 게다가 이경미 감독의 다음과 같은 말은 전국의 20대가 책상 앞에 붙여 놓아 마땅하다.

“막상 서른 살이 됐을 땐 어찌나 신나던지, 서른 살은 삼십 대의 시작이니까 이십 대에 다 망친 거 없다 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단 말이다.”

과연 그렇습니다.
사는 게 내 맘 같지 않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친구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860호 - culture letter]

#이경미#에세이#잘돼가?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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