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제대후 복학을 걱정하는 말년 병장에게

제대하면 걱정이 된다고? 걱정할 게 1도 없어요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인생의 약 1.5%를 군 생활에 바친다. 폐쇄된 공간에서 1년 8개월 동안 갇혀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말년이 되면 다가오는 제대일을 기대하면서도 "막상 사회에 나가면 어쩌지?" 싶은 걱정에 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   곧 제대를 앞둔, 싸지방에서 굳이 대학내일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 몇 가지 위안을 전하려 한다.
 

걱정 1. 제대하면 혼자서 학교에 다녀야 하나?

 복학생+혼밥러+아싸 = ㅠㅠ 당장 칼 복학할 복학생 중에는 누구와 학교에 다녀야 할지 고민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입대 초까지만 해도 항상 편지를 보내주던 여자 동기들은 이제 졸업반 내지는 취준생이 되어 있다. 호주에 워홀을 가 있고, 지난달에 입대했다던 앞날이 안 보이는 동기 소식도 듣는다. 와 이제 난 누구랑 학교에 다니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비슷한 타이밍에 복학하는 남자 동기들이다. 하지만 이것도 미필 시절 핵인싸였던 친구들 얘기다. 일반적으로 대학생들은 3~4명 정도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이게 미필 시절 인간관계의 전부였던 아싸 혹은 어중간한 인싸들에게는 딱히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 생활을 새로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편하다. 신기하게도 낯선 얼굴들과 당신을 이어 줄, 온라인 게임 NPC 같은 핵인싸 인물이 꼭 한 명씩은 있다. 이들과 다시 커뮤니티를 이루다 보면 위아래로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아직 서먹하다고 느껴지는 제대한 다른 동기들도 챙기자. 이러다 보면 1, 2학년까지 아싸생활을 하다 제대 후 핵인싸 생활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걱정 2. 제대하면 머리가 굳는다던데, 공부는 어떻게 하지?

아니 복학생인 오빠가 저보다 점수가 낮다구욬ㅋㅋㅋㅋ? 

 

가장 쓸데없는 걱정을 꼽는다면 이거다. 이건 거의 종신형 선고받고 주택청약 걱정하는 꼴이다. 약 2세대 전 옛 성인들의 비과학적 통념에서 비롯된 듯하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뇌 가소성 이론'을 주장하며 "인간의 두뇌는 20세 이후에도 환경, 경험, 신체 상태에 따라 발달할 여지가 있다"고 반박한다.

그리하여 "두뇌 수준은 개개인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미필과 군필 간 차이가 없다"는 전제를 얻었다.(제대 후 공부가 잘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혹시 입대 전에는 공부를 잘했었는지 되새겨 보자) 자, 이제 공부하는 사람들의 심적 부담감만이 변수로 남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복학생이 상대적으로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입대 전 평균 평점이 3점 간당간당한 복학생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졸업 평점을 4점대로 끌어올리려면 주리를 틀어가며 공부해야 할 판이다. 취업과 졸업에 대한 부담감은 대학 생활을 시한부 인생처럼 만든다. 시험 기간 밤, 도서관 매점에서 캔커피에 줄담배 피우며 롤챔스 얘기하는 미필들은 사실 당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도서관에서 미필 후배의 이런 답 없는 모습을 본다면 속으로 맘껏 비울어주자 

 

하지만 이걸 반대로 말하면 당신은 절박함 말고는 유리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나는 복학생이니까 잘하겠지'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경계하라. 복학생이 전부 공부를 잘 하는 건 아니며, 공부를 잘하는 건 전적으로 의지의 문제다.  

머리가 굳었다고 생각하는 복학생들은 종종 무식한 공부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일단 무작정 쓰며 암기하는 거다. 거의 본고사 시절 공부방법이다. 내가 미필이었을 때 복학생 형 노트를 보고 "와, 이 형 진짜 무식하게 공부한닼ㅋㅋㅋ"했는데 그 형이 그 수업에서 유일하게 만점을 받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걱정 3. 연애 세포가 죽었는데, 연애할 수 있을까?

복학생이 연애하려면 일단 카라티 깃부터 내려야 한다 

 

'연서복(연애에 서툰 복학생)'이라는 SNS 캐릭터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후배들에게 들이대는 비호감 복학생 캐릭터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복학생들에게 오해와 위안을 심어주었으니, 바로 "내가 연애를 못 하는 건 다 복학생인 탓이야!"라는 이상한 믿음이었다.  

팩트로 경추를 꺾어버리자면, 사실 "복학생이라서 연애하기 힘들다"라고 호소하는 이들은 원래 연애를 못 하는 팔자 혹은 타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연애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스펙이 있다고 치자. 보통 외모, 성격, 매너, 패션 센스 정도로 꼽아 볼 수 있겠다. 연애를 하려면 이 항목들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 만약 군대 항목을 추가한다면 '미필'이 점수가 높을까, 아니면 '군필'이 점수가 높을까? 정답은 '아무 상관없다'이다. 복학생 차은우와 에릭남이 과연 연애를 못 할까? 미필인 원빈과 강동원이 연애를 못 할까?

뭐야 복학생은 다 이렇게 생긴 거 아니었어?

 

에디터가 대학생이었던 그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연애 못 하는 형들은 끝까지 못 했다. 잘하는 형들은 입대 2주 전에 사귀기도 하고(와 완전 양아...아닙니다), 제대하자마자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복학생들이 종종 미필 남 후배들의 괜한 미움을 받기도 한다.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다. 만약 여학생이 석 달 후 입대하는 동기와 군필자 오빠 두 명에게 같은 수준으로 호감을 느낀다면, 누구를 택하겠는가.  

당신이 정말 괜찮은 남자라면, 복학생 스펙은 당신에게 개이득이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걱정 4. 취업은 어떻게 하지? 취업할 때가 됐는데...

 불합격하지만 죄송하셨습니다. 감사해주셔서 지원합니다.

 

그나마 네 가지 걱정 중 가장 합리적인 걱정이라면 이것이 아닐까 싶다. 보통 제대 시기, 제대 후 학년에 따라 고민의 정도가 다르다. "일찍 군대에 가라"는 얘기는 어쩌면 심리적 안정감 차원에서, 제대 후 남은 대학 생활을 좀 여유 있게 하라는 충고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에디터는 좀 남다른 선택을 했다. 무려 3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대했을 땐 상황이 영 쉽지 않았다. 제대하자마자 연애도 시작했고(자랑) 알바도 열심히 했으며, 학교생활에도 충실했다. 계절학기를 들으며 모자란 학점을 충당하고, 재수강으로 평점을 높이기도 했다.  

정말 할 건 다 하는 복학생이었지만, 두려울 게 없었다 

 

제대 후 4학년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였지만, 그리 조급하지 않았다. 주변에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서로 응원해 준 덕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학교 후문 카페에 모여 종일 자소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했다. 취업을 고민하는 사람이 갓 제대한 나뿐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 1년 반. 여름학기 졸업을 하고 이듬해 상반기에 취업했다.  

취업을 준비할 땐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소모전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사람에겐 각자 인생의 페이스가 있다고 생각하자. "남들은 다 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라는 상실감은 오히려 포기를 낳는다. 조바심과 긴장감을 조절할 줄 안다면 반은 성공한 거다. 그러니 3~4학년에 제대를 한다면 조금 여유를 갖도록 노력하고, 2학년 복학생은 약간의 긴장감을 갖추자. "나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라는 마음으로 안일하게 생활하다 보면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기 쉽다. 밤새워 술 마시고 자체휴강을 밥 먹듯이 하던 1학년 그때로 말이다.  

될놈될이지만 되면 돼

그래서 제대하는 당신이 지금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장 제대를 기뻐할 시간도 부족한데 걱정할 시간이 어디 있어.  

그래도 걱정된다면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자신을 믿어보자.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엉망으로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멀쩡하게 잘살고 있잖아. 인생의 짐 하나를 덜어냈으니, 지금부터는 예전보다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군대#연애#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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