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오늘 한 아르바이트생이 잘렸다

같이 일하던 언니가 잘렸을 때도 왜냐고 묻지 못했다.

한 달간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날,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언니 한 명이 잘렸다. 일을 못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내 메신저로 구성원에게 필요한 서류 요청을 하는데 쪽지 두 통을 잘못 보냈고, 엑셀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점이 걸린다고 한다.  

내가 당한 일이 아닌데도 당황스러웠다. 종종 아르바이트를 해왔지만 큰 사고를 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갑자기 잘리는 경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에서. 하지만 왜냐고 묻지 못했다. 언니에게는 미안해서 묻지 못했고, 회사에는 내가 잘릴까봐 무서워 묻지 못했다.  

함께 일하면서는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었기에 머릿속엔 갖은 시나리오가 다 써졌다. 나도 잘리지 않을까? 손바닥 뒤집듯 나오지 말라 하는데, 근로계약서의 계약 기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계약서 내용들이 머리에 둥둥 떠다녔다.   같이 일하는 다른 친구는 아침에 30분 일찍 오고, 퇴근은 10분 더 있다가 한다. 거기에 싹싹하기까지 하니 구성원들이 예뻐할 수밖에 없다. 조금 의식적인 행동들이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닌 시급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학교 선배에게 말하니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렇지 뭐” 하는 답변이 돌아온다.

하긴, 이 아르바이트 하나에도 3명 뽑는 자리에 30-4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방학 동안 하는 한 달짜리 아르바이트에 경쟁률이 10대 1을 우습게 넘어간다. 특히 대기업이라면 취업에도 도움이 되겠지싶어 더 간절해 진다. 그래서 시키지도 않은 초과 근무를 하고, 눈에 들려고 애쓰는 거겠지만.
  
 한편으론 ‘나도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친구보다 나이 많은 취업이 급한 취준생이니까. 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도 마치 면접장 안의 지원자가 된 것 같아서. 결국 채용이 전제되지 않은 한 달간의 면접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하는 행동들이 불편하고,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말이다.  

채용 전환형 인턴을 하며 세 달 내내 면접 보는 것처럼 일하다 결국 불합격 통보를 받은 친구의 일도 떠올랐다. 조금 눈치가 보이더라도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원칙을 고수하고 내 할 일을 잘하기로 마음먹었다. 잘리면 뭐, 어쩔 수 없지.

아르바이트라는 ‘을’의 입장으로 조직 생활을 경험하면서, 나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받아야 하는 근로계약서를 받지 못해도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 했다. 같이 일하던 언니가 갑자기 잘렸을 때도 왜냐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조직의 요구에 순응할 뿐.  

사실 많은 취준생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는 정규직이 되어도 딱히 다를 건 없을 것 같다. 그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을이니까. 퇴근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다들 이렇게 바보가 되어가며 회사를 다니나보다 생각한다.  

최근 읽은 어떤 책에 따르면 일은 ‘나다움의 표현’이라는데, 우리 사회에서 나다움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다 지금의 나에겐 생각마저 사치인 것 같아 애써 그 연결 고리를 끊어본다.

 *20대가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에세이 기고는 '글 쓰는 20대' 카테고리로

[862호 - 20's voice]

WRITER 다미 psdswsh@naver.com 완전한 바보가 되어가는 사회 초년생
#아르바이트#인턴#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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