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움츠린 달팽이의 셰어하우스 적응기

나는 만나자마자 친해지는 부류가 아니다.

나는 셰어하우스에 산다. 셰어하우스는 두 가지 극단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청춘시대>처럼 흥미로운 사건과 우정이 가득한 이미지와, 피곤에 쩐 현대인들이 겨우 한 몸 뉘이며 사는 이미지.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오히려 더 단순하고 명쾌한 이미지로 기억되나 보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것들은 양극단보단 주로 그 사이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있는 편이고 내가 사는 셰어하우스 역시 그렇다. 이곳은 다행히 긍정적인 공간에 더 가깝다. 꽤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하메들 사이를 다크 템플러처럼 기웃거리는 애가 나다.  

나는 무리에 처음 떨궈지면 더듬이를 건드린 달팽이처럼 급격히 위축된다. 다시 더듬이를 펴기까지도 지난한 시간이 걸린다. 움츠린 달팽이 상태일 때 내 행동거지는 아주 거지 같은데, 먼저 거실 같은 공용 공간에선 진화가 덜 된 호모 사피엔스처럼 걷는다. 팔을 살짝 구부리고 손은 먹이를 찾는 짐승의 앞발처럼 들고 다닌다.  

나는 이걸 티라노 자세라고 부른다. 냉장고를 터는 좀도둑처럼 뒤꿈치를 살포시 들면 완성. 이 티라노는 신중하기까지 해서 물 한 잔이 마시고 싶을 때도 세 번은 생각한 후에야 움직인다.  

대화를 할 땐 작고 감미롭게 말하는 편이다. 너무 감미로워서 주어와 목적어만 들리고 서술어는 녹아버린다. “빵떡씨 이거 드실래요?” “아뇨 저는 배가 불ㄹㅓㅅ….” “네?” “배가 부르ㄷㅏㄱㅇ….” 문장은 비 오는 날 우산을 두고 온 사람처럼 목구멍 밖으로 나섰다 후딱 다시 기어 들어간다. 물론 이런 일은 이제 익숙하기 때문에 결여된 사회성에 새삼스럽게 마음 아파하며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진 않는다. 하지만 무리에 어울리고 싶은 소망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해 빙빙 겉도는 것이다.    
  지난 주말엔 본가에 갔다. 티라노는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에 감동하며 TV를 봤다. 채널을 돌리다 <세.나.개>에서 멈췄다.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가 나왔다. 편의상 그레이라고 부르자. 그레이는 엄청나게 짖는 강아지다.

개에게든 닝겐에게든 적대심을 디폴트 값으로 갖고 있다. 어쩌다 다른 개들이 다가오면 기를 쓰고 도망쳐 친구도 없다. 그레이가 이러는 이유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데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더 요란하게 짖고 다른 개들을 피하는 거라고.

이런 개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번쩍 안아서 다른 개 옆에 데려갈 때가 있는데, 왜 그거 있지 않은가, 주인들이 개 앞발을 잡고 흔들면서 낭낭한 목소리로 “안녕↗ 난 그레이야↗ 만나서 반가워어↗” 하는 거. 그러다 주인끼리 머쓱해지는 그거 말이다. 그런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강형욱은 대신 내성적인 개들을 위한 처방을 내려줬는데 바로 ‘평행 산책’이다. 다른 개들과 같이 산책 시키되 인사도 시키지 말고 일부러 같이 놀게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나란히 걷게 하는 방법이다. 아무 교류 없이 같은 공간에 존재만 하는 거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미세한 속도로 친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평행 산책이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추천하는 방법처럼 느껴졌다. 나는 개로 치면 만나자마자 서로 냄새를 맡고 원반 물어 오기 놀이를 하는 부류가 아니다. 원반을 물어오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부류다. 한 공간 안에서 그저 함께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핸드폰을 하는 내 옆에서 얘는 유튜브를 보고 쟤는 빨래를 널고 걔는 머리를 말리는 시간. 떨어져 있어도 호르몬을 주고 받는 나무들처럼,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며 친근감 호르몬(?)을 주고받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들은 좋은 습관 같아서 어느새 몸에 배어 있곤 한다. 혹시 나와 친해지고 싶은 분들을 위해 꿀팁(?)을 드리자면, 내 옆에서 아무 일이나 하시길 추천한다. 말 걸 필요도 없고 그냥 존재해 달라. 꽤나 귀찮은 일이지만 조금만 참아 달라. 내가 유난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원래 사람을 사귀는 건 아주 큰 일이라 그렇다.  

*"20대가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글 쓰는 20대> 카테고리에서 에세이를 작성해주세요."


 

[863호 - 20's voice]

WRITER 빵떡씨 @choihj906 하메들 좋아합니다♡ 
#셰어하우스#내향인#강아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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