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여행지에서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에게

소설가 김연수의 여행 산문집『언젠가, 아마도』

TRAVEL ESSAY 『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 컬처그라퍼

 

 


카메라 없이 여행한 게 언제였더라? 스마트폰을 쓰게 된 뒤론 오히려 카메라 한 번, 휴대폰 한 번, 두 번이나 사진을 찍게 됐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눈앞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두려 애쓰고, 그것이 휘발되기라도 할세라 서둘러 SNS에 업로드한다.

드물게 행복했던 내 모습도 박제시켜둔다. 그러고는, 아니 어쩌면 그래서 여행의 기억은 쉽게 잊혀진다. 언제든 SNS만 열면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제때 찍어두고 남겨두었으니 ‘다’ 기억하는 것 같지만, 그게 정말 여행을 ‘잘’ 기억하는 일일까?

이런 시대에 소설가 김연수는 여행 사진 한 장 없는 여행 산문집을 냈다. ‘낙수(落穗)’라는 건 추수한 뒤 땅에 떨어져 있는 이삭 혹은 어떤 일이 끝난 뒤에 남은 이야기를 비유하는 말인데, 그는 이 책에 ‘여행의 낙수’를 담은 글들을 모았다.

그리고 좀처럼 사진을 찍지 않는 여행에 대해 말한다. 사진으로 남은 기억은 너무 날카로워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나 어디선가 풍기던 냄새 혹은 여행지의 전반적 느낌 같은 건 송두리째 기억에서 잘려나간다’고. 어쩌면 내가 기억한다고 여긴 것은 여행이 아니라, 단지 사진 속 풍경이 아니었을까?

그의 담담한 여행기 덕분에 카메라를 내려놓는 여행을, 무엇보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여행이 진짜 끝나기를 기다릴 줄 아는 그런 여행에 대해 생각한다. 다시 보지 못할 풍경이라면, 그걸 기억해야 하는 건 카메라가 아니라 나여야 할 테니까.


[863호 - culture letter]

#김연수#언젠가#아마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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