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우울을 처음 겪는 그대들에게 드리는 편지

재수를 마치자마자 우울증 상담을 받게 됐다

우리가 말을 할 줄 알게 됐을 때부터 들어 온 말이 있다. “어머, 우리 애는 천재야!” 옹알이부터 시작해서 엄마 아빠 부르기, 뒤집기, 걸음마, 기타 등등을 어설프게 보여줄 때마다 평범한 가정의 아기라면 반복해서 들었을 말.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날 때부터 평범했던 건지 평범한 양육 방침으로 평범하게 자란 건지 알 순 없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는 몹시 평범하게 졸업했다.  

내가 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토양이 좋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환경과 조건이 동일하다고 해도 모두가 같은 결과 값을 낼 수 없다. 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같은 범위의 시험공부를 했지만, 그 결과로 누구는 아침마다 대학교에 가고 누구는 그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거지꼴을 하고 빵을 입에 문 채 재수학원으로 뛰어간다.   동생과 한 살 터울인 나는 동생이 고3 수험생이던 시절 재수생이었기에 꼰대처럼 조언질을 쉬지 않고 해댔다. 동생은 그런 언니가 불쌍했던지 대부분을 대답 없이 무시해주었다. 어쩌면 동생은 지금쯤 일 년 내내 그런 소리를 들어야 했던 자신이 불쌍하다고 어디서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동생은 새내기가 되었고, 나는 학원 탓을 하며 삼순이(엄마가 당시 날 부르던 극혐 호칭)가 되었다. 누구나 인생에서 최소 한 번쯤은 절망적인 시기가 찾아온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그게 반복되면 급기야 모든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린다. 이러한 우울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정해놓고 성공한 사람들의 일상을 부러워하며, 노력을 기울일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 시기는 대부분 우울을 처음 겪을 때 오게 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입시에 한 번에 성공한 동생과 낙방한 나를 끊임없이 비교했고, 재수를 마치자마자 우울증 상담을 받게 됐다. 남들이 정해놓은 우울에 빠지게 되면 실제로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조차 어렵게만 느껴진다. 세수 한 번 할라치면 눈물이 비져나와 십 분 이십 분이 걸리기도 했고, 내 모습이 한심스러워서 거울을 볼 수 없었으며 밥 한 숟갈 뜨는 것마저 어려웠다. 그때 만났던 의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그해 수능도 또 실패했으리라.  

처음엔 ‘아무 의미도 없는 이 행동들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의심으로 치료를 시작했지만, 일 년 동안 병원에 다니며 배우게 된 것들이 있다. 대학 3학년이 된 지금,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리 거창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지금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가?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면, 지금 먹고 있는 간장계란밥에 참기름을 조금 더 부어라. 과장 한 줌 보태서 내 학점이 샤프심인데 살아 있어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런 마음도 결국은 삶에 대한 애착에서 나온다는 걸 기억하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누군가와 나누어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어라. 나의 경우엔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입맛이 비슷하다 못해 찰떡인 엄마와 광장시장에 가서 육회비빔밥 하나씩 시켜놓고 소주 한 잔에 탕탕이를 먹곤 했다. 비록 내 삶의 질이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으로 인해 바닥을 부수고 지하 오백 층까지 뚫고 들어갔다고 할지라도, 순간순간의 행복은 우연이 아닌 나의 선택에 의해 나올 수 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깊이를 모르는 이 우울감은 나의 나약함 탓이 아니며 잘못된 것도 아니다. 삶이 너무나 버겁고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 시절 내가 사용한 마법의 주문을 부디 따라 해보시길. ‘그럴 수도 있지.’  

"20대가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글 쓰는 20대> 카테고리에서 에세이를 작성해주세요" 


[866호 - 20's voice]

WRITER 이주연 instagram@forever_yeon 안녕하세요, 취업 꿈나무입니다
#에세이#글 쓰는 20대#우울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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