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경험은 잘못이 아니잖아요 <애니>

내가 해봐서 아는데?

요 몇 년간 가장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경험’의 힘이다. 훈장질에 지친 우리는 언젠가부터 경험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의 유행어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그 정점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생생한 조언으로 받아들일 법도 한데, 사람들은 이 말에 치를 떤다. 안쓰러움(얼마나 시달렸으면…)과 안타까움(경험은 죄가 없는데…)이 동시다발적으로 고개를 든다. 나쁜 훈장에 대한 비판은 지겨울 정도로 들었으니, 꼭꼭 숨어 있는 좋은 훈장 얘기를 해보자.
   

<애니>는 ‘헬렌 켈러’의 인간 승리를 옆에서 도왔던 설리번 선생님의 이름이다. 애니의 유년기도 헬렌처럼 불행했다. 가난한 부모와 동생 지미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겨진 애니는 눈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시력까지 잃는다. 불안은 타인에 대한 공격적 성향으로 표출되어 특수학교에서도 자주 말썽을 일으켰다. 그러나 무어 선생님의 한결같은 다정함이 그녀를 조금씩 변화시켰고, 애니는 결국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헬렌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제멋대로인 헬렌을 보며 애니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헬렌의 과격한 행동이 ‘원래 성격이 그래서’가 아니라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애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대개 경험자들은 해결책을 제시할 때 실수를 범한다. 본인의 경험을 타인들의 고민에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애니도 그랬다면, 본인보다 더 거세게 저항하는 헬렌을 다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니는 상황의 차이를 인식했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헬렌을 응석받이로 키운 부모와 떨어져 단둘이 지내겠다고 제안한 것. 판단은 적중했고 헬렌은 거짓말처럼 ‘애니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었다. 애니가 경험 없이 헬렌을 도울 수 있었을까? 경험은 죄가 없다. 죄는 숱하게 경험을 오용해 온 그 사람들에게 묻자.
#문화#애니#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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