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일단 흙길에 꽃을 심자 꽃길만 걸으려면

고생해서 대학 가면 분명 무언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대학에 들어와 1학년 새내기 생활의 후반부로 달려가고 있는 지금. 나는(어쩌면 나와 비슷한 또래라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마치 한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짙은 안개가 자욱한 벌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고등학교 3년에 추가로 재수 1년까지. 수능시험이라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커다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내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면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야!’ 하지만 그 관문을 무사히 뚫고 들어온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무언가는 역시 없는 것 같다. 이럴 수가! 그것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목표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꿈은 대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중에 어느 것도 명확히 대답할 수 없는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정말 너무 황당하고 허무하고 어떤 부정적인 형용사를 다 가져다 붙여도 부족할 정도로 우울한 상황이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고등학교 동창 종명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맨 정신에 생각해보면 너무나 부끄러운 통화 내용이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종명아, 나는 정말 재밌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도대체 모르겠어, 그걸 찾고 싶은데 못 찾고 있고… 게다가 나는 재수도 했고, 남들한테 뒤처지는 것만 같은데 어떡하지?” 이런 얘기를 엉엉 울어가며 코를 찔찔 흘려가며 토로했다.  

나의 고민에 친구는 이렇게 답해줬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원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래. 네가 지금 부러워하는 친구들 인생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일 거야. 그리고 너, 시간 많아! 겨우 스물한 살밖에 안 됐어.” 별말 아니었지만 취한 와중에도 아, 이건 내 찌질함이 그대로 남는 통화임에도 불구하고 녹음해둬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처럼 그 통화로 마음속에 쌓아둔 고민들이 속 시원히 풀어졌다. 친구는 그외에도 여러 말을 해주었다. “우리 20대는 처음 살아보잖아. 여러 책에서나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 뭐 ‘열정을 쏟아부어라!’, ‘꿈을 위해 노력해라!’ 이런 말들? 야, 뭘 좀 구체적으로 알려주기라도 하고 그러라고 해라. 처음 살아보는 20대인데, 어떻게 다 완벽하게 잘할 수가 있겠어.”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마음에 정확히 와 닿는 말이었다.  

어쩌면 내 고민들은 내 욕심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보란 듯이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고, 그 길이 꽃길이기만을 바랐던 거. 실은 어쩌면 처음엔 다 흙길이고, 그 길에 내가 좋아하는 꽃, 나에게 어울리는 꽃이 무엇인지는 한번 심어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꽃길이란 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닐까?  

지금은 다만, 좀 더 여유를 갖고 그 흙길을 차분히 걸어봐야 하는 시기겠지. 스물한 살이란 나이는 여러 꽃들을 골라도 보고 또 심어도 보고 바라봐도 되는 시기라는 깨달음을 준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아마 나처럼 지난 시간 내내 수험 공부만 하며 달려와서,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못한, 그래서 지금 방황하고 있을 모두에게 전해주고 싶다.  

우리는 아직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고. 아직 자기 길을 못 찾았어도, 무얼 하고 싶은지 몰라도,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다고. 우리는 다 20대를 처음 살아보는 건데 어떻게 완벽할 수가 있겠냐고. 어떻게든 끝까지 해봐서, 자신만의 꽃길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그 말을,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감히 전해주고 싶다.

[869호 - 20's voice]

Writer 김찬혁 instagram @coldhyuk 좋아하는 것, 재밌는 것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경험하는 중인 TMT
#20대#꽃길#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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