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나는 커닝을 극혐하는 20대입니다

커닝이 자랑할 일은 아니잖아요?

   
얼마 전 <뉴스룸>에서 손석희 아저씨가 커닝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왔다고 하더라고요. 과연 민족 문화가 맞는 것 같아요. 대학에 와서 커닝이 대학생이라면 꼭 해봐야 하는 필수 교양처럼 여겨지는 현장을 여러 차례 목격했거든요. 첫 시험 기간, 동기들 중 70~80%가 커닝페이퍼를 만들더라고요. 안 만드는 제가 이상하게 느껴질 지경이었어요. 심지어 오픈 북 시험에서도 굳이 커닝을 하는 거예요. 이쯤 되면 커닝 중독이라고 봐도 좋지 않나요?  

방법이랄 건 없어요. 사실상 대놓고 하니까. 누가 봐도 수상하게 맨 뒷자리에 다닥다닥 붙어서 자기들끼리 열심히 답을 공유하거나, 손가락에 써서 슬쩍 보는 거죠. 옆자리 친구들 눈이 무섭지 않냐고요? 다들 보이니 보겠지만, 어차피 그 친구들도 같이 하고 있는 걸요. 그나마 요새는 음료수나 필통에 쓰는 건 너무 일차원적이라 걸릴까봐 안 하더라고요. 대신 펜이나 지우개 포장지에 쓰는 거예요. 3포인트 깨알 글씨로. 아… 환멸. 이 정도 정성을 들일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하겠어요.  

물론 커닝이 발각되면 바로 시험지를 찢고 F를 주는 교수님도 계세요. 각 과에 한 분 정도밖에 안 계시다는 게 함정이지만. 커닝을 일상적으로 하는 친구들 덕분에 학교 커뮤니티에는 이런 교수 평가가 공유되기도 해요. ‘시험감독 안 철저하심.’ 그걸 노리고 수강신청 하는 애들도 많고요. 교수님 성향이 당장 1학기 만에 바뀌진 않을 테니까. 하긴 매 학기 커닝이 성황리에 이뤄지는 것도 다 교수님들 덕분이죠.  

귀찮음에 아예 조교를 시험감독으로 섭외조차 안 하시는 것도 문제이지만, 커닝 한 번에도 학점 변별력이 사라지도록 시험을 대충 내시는 것도 큰 문제죠. 오픈 북을 해도 쉽게 쓰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내신다면, 커닝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썼던 시험지 매년 다시 쓰는 건 기본이고, 시험 검수가 오래 걸리니 객관식으로 많이 내야겠다는 말씀도 서슴지 않으시죠. 대체 뭐가 그리 힘드신 건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조교들이 검수하는 거 다 아는데.   학생들의 저열한 윤리 의식과 교수님의 무관심 컬래버는 경악할 만한 커닝 사건을 만들어 내기도 해요. 대나무 숲에도 올라온 적 있는데요. 논문 마감일이라 엄청 바쁘셨던 교수님이 “난 너희를 믿겠다”며 시험 시간에 나가버리신 거예요.
      
마흔 명의 수강생 중에 한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오픈 북 커닝을 했죠. 하필 제가 그 두 명 중 하나였고요. 공론화가 됐는데도, ‘다시 시험지 만들기 힘들다’는 이유로 재시험은 없었어요. 양심을 지켜 시험 본 애들만 망한 거죠. 성적의 80%를 결정할 중요한 시험이었고, 전 C+을 받았네요. 필수 교양이지만 재수강은 안 하려고요. 너무 상처받아서요.  
문제 제기를 해봤자 교수님에게는 귀여운 투정 정도로 보이나 봐요. 쪽지 시험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다른 수업이었어요. 제 옆에 앉은 친구가 대놓고 커닝을 하더라고요. 두 번까지도 그냥 넘어갔지만, 세 번째에는 도저히 못 참겠어서 교수님께 메일을 드렸죠.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몰랐다. 앞으로 주의해서 보겠다”. 물론 네 번째 쪽지 시험에 그 친구는 또 커닝을 했고, 저도 다시 메일을 드렸죠. 그랬더니 교수님의 대답은? “나는 못 봤다.” 그러곤 바로 다음 수업 때, 임의로 ‘쎈 캐’들만 모았다며 저를 포함해 조를 묶어주시더라고요.  

이러니 정의가 실현될 거란 기대 자체를 안 할 수밖에요. 저한테 최선은 일부러 깐깐한 교수님 수업만 골라 듣는 거예요. 어차피 성적이 안 나올 거라면 시험이라도 공정하게 치르는 게 낫죠. 간혹 시험 기간에 “너희 시계도 보지 마. 내가 10분마다 칠판에 써줄 테니까.” 이런 유니콘 같은 교수님 만나면 너무 설레요.  

아무리 쓴소리를 해도 커닝 할 사람은 계속 하겠죠. 2학년 때였나, 친한 친구가 커닝하고 성적을 잘 받아서 괜히 민망했나봐요. “나 커닝했는데 학점 4.0 넘었다!”고 자랑하더라고요. 너무 열 받았지만 웃으면서 “그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아?”라고 좋게 말했는데요. 주변 친구들까지 분위기가 싸해지더군요. 다들 커닝에서 자유롭지 않으니까. 저만 바른 척하는 ‘진지충’이 되어버린 거죠.(웃음)  

근데 정말 부탁할게요. 커닝 할 거면 최소한 본인의 죄를 가볍게 포장하지는 마요. 공으로 학점을 가져갔으면, 죄책감은 가져야죠. 고등학교 내신보다야 덜 중요하니까, 아직 저학년이라 취업이 중요하지 않으니까. 자기 합리화도 그만해요. 사기 쳐서 받은 4.0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전 평점은 낮아도 스스로한테는 떳떳해요. 그래서 님들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꾸준히 공식적인 루트로 고발하려고요. 부디 앞으로도 되도록 내 눈에 띄지 말아요.
  

[870호 - 20's but]

졸업할 때까지 양심적으로 시험을 치르겠다는 20대와의 인터뷰를 옮겼습니다 
#커닝#부정행위#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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